나는 그대들을 믿을 수 없다.
나는 그대들을 믿을 수 없다.
  • 박충구
  • 승인 2019.02.03 03: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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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를 믿어달라고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면 이 나라 사법부를 믿을 수 있을까? 과연 어떤 사법부인가? 법관으로 오랜 기간 재직해온 사람이라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판결로 국민의 생명까지 합법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이 나라 사법부는 지난 시간 권력의 시녀 노릇을 충실히 수행했던 전력이 화려하다. 이 집단은 과연 무수한 판결을 통하여 이 나라의 정의와 평등을 세워왔던가? 아니면 권력의 시종 노릇을 하며 무수한 이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던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공안 검사들에 의하여 조작된 문서의 진위도 밝히지 못하고 선량하고 죄 없는 이에게 사형을 선고하여 죽이기까지 했던 사법부다. 천인이 공로할 일이다. 누구나 기억하고 있는 사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판사들은 과연 어떤 자들이었나? 민주화된 세계가 되었어도 그 더러운 폐습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판사-검사 카르텔을 형성하여 서로서로 전관 예우하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세간에 떠돌게 하는 자들이 그 누군가? 이 나라 판결권을 독점하고 이를 오용했던 이런 악질적 사법부의 판결을 무조건 믿어달라고?

바로 엊그제만 해도 양승태 사법 농단 사건으로 예정되었던 판결이 무한 미뤄지고, 일제 징용으로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는 요구를 외면했던 집단이 그대들이 아니었던가? 박근혜 앞에서 히죽거리며 권력의 요구를 수주받아온 양승태 같은 자가 득세하여 수장이 되는 세계가 우리나라 사법부다. 이런 범죄를 은폐하고 있었던 대법원이 우리에게 법관의 판결 엄정성과 중립성과 진실성을 믿어달라고 한다. 과거의 오류를 스스로 비판하고 수정할 능력이 없는 집단은 믿어주고 싶어도 믿기 어렵다.

혹자는 삼권분립 운운하며 법관의 판결을 존중하고 간섭하면 안 된다고 주절거린다. 삼권분립이 법관에게 절대권력을 허용 살인면허라도 주라는 제도인가? 삼권분립의 근본 의도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법관의 자의와 정치적 성향을 법치의 수단으로 삼도록 지켜주라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성직자는 하나님의 종이니 성직자를 비판하지 말라 하는 수작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성직자는 성서를 바르게 해석해야 진실한 성직자고 법관이라면 헌법과 법률과 올바른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진정한 법관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들은 성직자나 법관이 아니라 양아치다. 양아치의 판결은 삼권분립 운운할 가치도 없다.

양아치들은 인권을 존중할 능력도 없고 민주주의를 모르기에 양아치다. 이런 자들이 이 나라 법치를 책임질 수 있는가? 법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다. 법치가 돈과 권력과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면 민주주의는 파괴되고, 파괴된 민주주의는 국민의 존엄한 권리를 지켜낼 능력이 없는 훼손된 민주주의가 된다. 이 나라 법관들은 사사로움을 드러내지 말라는 의미에서 법복을 입고 있지만, 상당수가 법복 속에 사리사욕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 진실성의 보루가 아니라, 오히려 탐욕의 화신이 되어 우리 사회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갉아먹는 쥐새끼같은 삶을 살아간다. 이런 자들의 판결을 믿으라고 하는 자들은 과연 누군가?

3심제도가 있다고? 아니다. 3심제도를 사법부 그대들이 스스로 오염시켜왔기 때문에 국민은 부패하고 타락한 법관들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대들의 공정성과 진실성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3심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법관들이 장악했던 역사를 국민은 잊지 않고 있다. 성직자들의 언설은 깬 시민의 분석과 비판의 대상이고, 법관의 판결 역시 국민의 판단과 비판에서 면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대들의 은밀한 거래와 탐욕이 보장되던 세계는 이제 지나갔다. 입법부는 법관 탄핵으로, 행정부는 법관 탄핵 발의로 사법적 농간을 근절시켜야 한다. 억울한 죽음을 3심으로 완성했던 그들의 부정한 악습을 근절하지 않는 이상 이 땅에서 정의의 실현은 요원하다.

사법부의 갱신과 변화를 그렇게 소원하고 있건만, 이전의 수장은 권력의 시녀를 자초했고, 현재의 수장은 무능하기 짝이 없다. 5년 정권의 힘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집단을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깬 시민은 더는 권력에 지배받는 백성이 아니다. 시민은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그 권리를 침해받지 않기 위하여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옳고 그름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사는 이가 존중을 받고, 특권 없는 세상이야말로 공정한 사회의 기본 틀이다. 과연 이 틀을 이 나라 법관들이 그동안 지켜왔던가? 이제는 성의를 입은 성직자의 세계도, 법의를 입은 법관들의 세계도 그들만의 은밀한 특권을 보장받을 수 없다.

박충구 교수 / 전 감신대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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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0 2019-02-03 20:37:27
명박 근혜 유죄 선고는 공정한 법의 심판이고,
희정, 경수 유죄 선고는 불공정한 법의 심판이라는 이중 잣대는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