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선 놓는 데 마을 주민 7,000명 중 2,700명 서명
전화선 놓는 데 마을 주민 7,000명 중 2,700명 서명
  • 김종희
  • 승인 2008.07.1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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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의 멕시코 유카탄 반도 카칼첸 선교 이야기

단기선교의 계절이 왔다. 교회마다 단기선교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버지니아에 있는 와싱톤한인교회(담임 김영봉 목사)도 7월 4일부터 11일까지 일주일 동안 멕시코 동쪽 유카탄 반도에 있는 메리다의 작은 마을 카칼첸에서 선교 사역을 했다. 기자는 일주일간 치아파스 코미탄에 있는 익투스선교센터를 취재한 다음 메리다로 넘어가서 다시 일주일간 이 교회의 선교 활동을 지켜봤다.

내용은 여느 교회의 단기선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나다나엘 선교센터를 베이스캠프 삼아 30여 명의 멤버들은 각자 맡은 역할대로 움직였다. 가난한 마을에서 잘 먹지 못해 영양이 부족하니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질병을 몸에 단 채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의사들은 아픈 곳을 치료해주고 약을 나눠주었다.

▲ 겉은 건강해 보이지만 영양 상태가 부실한 아이들의 속은 허약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의 건상 상태를 체크하고 그에 알맞는 약을 주고 있다.
▲ 침술은 인기가 가장 높았다.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인데다가, 눈앞에서 금세 나타나는 효과에 깜짝 놀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2세 혹은 1·5세 청년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영어와 성경, 율동을 가르쳐주었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은 언니 오빠들을 볼 때마다 달려들어 안겼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는 기자에게도 아이들은 마구잡이로 달려들어 안겼다.

▲ 아이들은 영어 배우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리고 배운 것을 한번 써먹어보려는지 낯선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건다.
▲ 사랑과 정에 굶주린 탓일까. 아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쉽게 다가와서 안겼다. 멀리서 사진만 찍는 기자에게도 달려야 안기곤 했다.
작렬하는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농사를 짓기에 시력이 매우 상했지만 안경 하나 살 돈 없는 이들에게 각자 시력에 맞게 안경을 나눠주었다. 미용 기술을 가진 이는 머리를 깎아주었다. 굵은 침이 몸속 이곳저곳으로 쑥쑥 들어갈 때마다 얼굴을 찌푸리더니 금세 효과가 나타나는 침술의 마력을 본 주민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반신불수로 수년을 살던 사람이 며칠 동안 꾸준히 침을 맞고는, 조금은 부자연스럽지만 이리 저리 몸을 움직이면서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저녁에는 마을의 중심에 있는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아이들은 청년들에게 배운 율동을 선보였다. 하루는 현지인 목사가, 하루는 와싱톤한인교회 전도사가 설교했다. 마지막 전날 밤에는 세족식을 했다. 슬리퍼만 신고 거칠게 생활하느라 상처투성이에다가 딱딱하게 굳은 때로 찌든 사람들의 발을 씻겨줄 때는 감동도 컸다. 저마다 귀한 자식으로 곱게 자란 아이들이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발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 발을 내 손으로 씻겨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 이들의 발 모양은 미국에서 흔히 보는 깨끗한 발이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고 시커멓게 때가 낀 발을 씻고 닦아주는 일이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다.

▲ 세족식이 끝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헤어지기에는 일주일 동안 쌓인 정이 너무 깊었다. 그래서 다 같이 손을 잡고 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이별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애를 썼다.
아름다운 섬김과 나눔과 봉사의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를 저마다 체험했다. 일주일간의 짧은 사역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청년도 있었고, 한 달 지내기로 했다가 한 달 더 연장한 청년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짧고 바쁜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버지니아로 돌아갔다.

이런 사역은 참가자에게 큰 보람과 감동을 안겨준다.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더 성실하게 살아갈 각오도 다진다. 이러한 단기선교는 참가자들에게 큰 의미를 주지만, 기자가 굳이 일주일의 시간을 쪼개서 취재할 만한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안 하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 단기선교를 가면 누구나 저마다 그런 비슷한 경험을 통한 감동과 은혜를 맛보기 마련이다. 그럼 굳이 왜 이곳을 취재했을까.

선교한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살지요

와싱톤한인교회가 카칼첸에서 하는 선교는 단기선교팀이 돌아간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거꾸로, 단기 사역은 이 교회 본래 선교 사역을 일 년에 한 번씩 결산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선교팀은 돌아가고 현지에는 장태전 선교사 부부만 남았다. 마치 일 년에 한 번 명절 때 온 가족이 모처럼 모여 왁자지껄하다가 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나면 더 외롭고 허전해지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덩치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호탕하게 웃는 모습 뒤에 감춰진 외로움이 전해졌다.

장태전 선교사는 와싱톤한인교회에서 파송된 평신도 선교사다. 전문인 사역자는 아니다. 오랫동안 미국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조금 일찍 은퇴한 다음 3년 전에 이곳에 와서 살고 있다. 의사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건축사도 아니다. 보험회사에서 일한 경험은 웬만한 선교지에서 그리 유용하지가 않다. 게다가 선교에 대한 훈련을 따로 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 다들 떠난 이곳에 남아 둘은 무얼 하고 있을까.

그는 여기서 ‘사역한다’기보다는 그냥 ‘살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동네의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이웃이 되는 것이 전부다. 이제 3년 정도 되었지만 여전히 짧은 스페인어보다는 그저 표정으로 사귀는 것이 훨씬 편하고 빠르다.

그래도 교회에서 마련해준 센터에서 그저 이렇게 지낼 수만은 없는 법.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마을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도 엑셀이나 워드프로세서나 파워포인트나, 이런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장 선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딱 하나, 키보드 제대로 치기다. 그는 “하나님이 손가락을 열 개를 만들어주셨는데 왜 손가락 두 개만 써서 타자를 치냐”면서, 자신은 다른 것은 일체 안 가르치고 열 손가락을 다 써서 제대로 키보드 치는 것만 가르친다고 했다. (실제로 공항에서 발권하는 일을 하는 직원들의 손놀림을 보니까 모두가 하나 같이 딱 두 개의 손가락만을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숙제할 때 인터넷 검색을 빨리 할 수 있도록 하려고 이것을 가르쳤는데, 가만히 보니까 잘 하면 취업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집중적으로 이것을 하고 있다. 1분에 150타, 오타율 5% 이하를 목표로 삼고 있다.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서 매일 진행하는데, 200명 조금 넘는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또 하나는 영어다.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와싱톤한인교회 멕시코 선교팀에서 수준별로 6등급으로 나눠 만든 교재로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도 재미있어 한다.

골목을 걷고 있는데 대여섯 살짜리 꼬마가 쑥 튀어나와 이름이 뭐냐고 영어로 묻는다. 이름을 알려주니, 몇 살이냐고 묻기에 나이를 가르쳐주었다. 더 궁금한 것이 없는지, 더 배운 것이 없는지, 아이는 말이 통하는 것이 그저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듯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웃기만 한다. 아직 초급 과정에 머물고 있는 아이인가 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 몇 마디의 영어로 말을 거는 것을 즐겼다. 장 선교사는 이곳에서 제일 필요한 것은 6개월이나 1년 정도 지내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사람이라고 했다.

▲ 아이들 점심 식사용으로 만든 햄버거를 하나씩 포장하고 있다.
▲ 이들은 특별하고 커다란 사역을 하기보다는 그저 함께 살아가는 선교의 모델을 만들어보고 싶어한다. 지친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런 마음이 통할 것 같다.
사역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선교

이 교회도 10년가량 유카탄 반도로 단기선교를 왔다. 처음에는 거점 없이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했다. 그러다가 카칼첸을 거점으로 정했다. 교회의 선교 방침은 현지인들이 자립하고 자치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교회를 세우거나 개종 중심의 전통적인 방식은 처음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현지에 있는 교회들을 도우면서, 지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시 정부와 대학과 교회가 합작을 해서 생산성 있는 농업을 할 수 있는 농장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모델 농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워나갔다. 그리고 그 일을 실제로 진행시키기 위해서 장 선교사가 온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시에서 다른 소리를 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고 결국은 무산됐다.

교회는 당초 계획은 좌절됐지만 ‘사역’보다는 ‘사람’이라는 대원칙을 지켜나가기로 했다. 현장에 파송 받은 선교사가 졸지에 할 일이 없어졌지만 일을 하기보다는 사람을 사귀는 일을 하기에는 장 선교사의 호탕하고 호방한 성격이 적합했다. 집집마다 방문해서 인사하고 사귀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차츰 어린이들에게 컴퓨터와 영어를 가르치게 된 것이다.

고작 이 정도의 일을 하는 데 교회가 건물을 짓고 선교사의 생활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은 낭비라고 여겨질 만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결실이 더 크고 값지다는 것을 와싱톤한인교회 교인들은 체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인내가 어떤 결실을 맺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스런 사건을 경험했다.

선교 센터를 지어 놓았는데, 전화선이 그곳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못 하고 인터넷도 못 하니 불편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장 선교사는 전화선을 놓아달라고 몇 년 동안 요청했는데, 주정부에서는 늘 알았다는 대답만 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 참다못해 얼마 전에 탄원서를 써서 주정부에 보냈다. 놀라운 일은 7,000명 정도 되는 마을 주민 중에 2,700명 정도가 자발적으로 서명을 한 것이다. 3분의 1의 서명이 첨부됐으니 장 선교사도 놀랐고 주정부도 놀랐다.

이번에 단기선교팀이 사역하는 동안 동네에 전봇대가 하나 둘 세워지더니, 마지막 날 전봇대 위에 선이 길게 연결되는 것을 모두들 직접 목격하고 돌아갔다. 동네에 세워진 전봇대와 전화선은 장 선교사 부부의 ‘사역’ 아닌 ‘삶’에 대한 카칼첸 주민들의 보답인 셈이다.

얼마 전에는 지금 센터 뒤편의 땅을 샀다. 아직 무엇을 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운동장이 될지, 교육 시설을 늘릴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더 깊이 어울려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들의 필요가 발견될 것이고, 그럼 그걸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된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한다는 원칙만 지키면 된다. 

개종과 회심을 목표로 열심을 내다가 물의를 빚기보다, 그저 현지인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개종과 회심이라는 선물을 주시는 선교의 묘미를 이들은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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