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광풍 거스르는 '공정무역' 미풍 불고 있다
'자유무역' 광풍 거스르는 '공정무역' 미풍 불고 있다
  • 김종희
  • 승인 2008.07.27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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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한국 교회, 신자유주의 우상 포기하고 대안 모색해야

▲ 자유무역 체제 아래에서는 온갖 농약을 잔뜩 먹은 질 낮은 커피가 대량으로 공급되고 동시에 생산자의 삶의 질도 덩달아 낮아진다. 질 좋은 커피는 농약이 아니라 시원한 그늘에서 촉촉한 물기를 먹고 자란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공정하게 거래되어야 생산자의 삶의 질도 촉촉해진다.
자유무역 외에는 정말 대안이 있나?

자유무역(Free Trade)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의 광풍(狂風)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휩쓸고 있다. 1940년대 자유무역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80년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 인해 자유무역은 대세가 되었고, 93년 우루과이라운드, 95년 세계무역기구(WTO)를 거치면서 전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수많은 개발도상국이 이 그물망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무역 지지자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만, 자유무역이 활발해질수록 빈익빈 부익부, 경제 양극화 현상은 심화된다. 한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두 나라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유익한 것일까. 두 나라 모두 이익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로 나뉜다. 그래서 같은 미국 대통령 후보이면서도 버락 오바마는 한미 FTA를 반대하고, 존 매케인은 찬성하는 것이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미 FTA 때문에 손해를 보고, 매케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익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볼 때도 이미 부자가 된 나라는 FTA를 통해 이익을 얻지만 가난한 나라는 손해를 본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책에서, “엄청난 무역 자유화에도 불구하고 - 아니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바로 이 사실 때문에 - 이 기간 동안 개발도상국들의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이 자유무역 이후로 성장 실적이 나빠진 사례들을 이 책에서 낱낱이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세인데, 대안이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패배주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대안’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마음을 열고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면 ‘대안’을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미풍(微風)은 미풍(美風)이기도 하다. 광풍(光風)을 이길 미풍(美風)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착한 소비’라고도 불리는 공정무역(Fair Trade)이 그 중 하나다.

생산자 살리는 '착한 소비'

▲ 우리가 월드컵 경기는 신나게 보지만, 선수들이 차는 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32개의 가죽 조각을 700번 꿰매야 하나가 완성되는 축구공은 파키스탄의 어린이 노예 노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는 축구공도 공정무역 제품이 되어 한국에서도 저렴하게 팔리고 있다.
공정무역 미풍은 195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약 60개 나라에서 600개 이상의 생산자 집단에서 100만 명이 넘는 농민과 노동자들이 2,000개가 넘는 공정무역 인증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작년에는 규모를 보면 미국과 영국, 두 나라가 7억 유로를 조금 넘는 규모에서 공정무역 거래를 주도하고 있다.

공정무역의 가치는 대개 다음과 같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임금과 교육 기회와 의사결정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어린이 노예 노동을 하지 않는다, 정직한 무역 거래를 한다, 생산자에게 최소 가격을 보장한다, 세계 주변부의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여러 기술을 나누고 개발한다, 더 좋은 품질과 능력을 배양한다, 환경을 소중히 여긴다 등등.’ 이 정도면 신앙 양심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경제 행위가 제법 가능해 보인다.

97년 만들어진 국제공정무역상표기구(FLO)는 일정한 기준에 맞는 상품을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해준다. 이 기준에 부합하려면 상품의 질이 낮으면 곤란하다. 멕시코의 유기농 커피 농장 기사에서도 다뤘듯이, 상품의 질이 떨어지면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질은 확실해야 한다.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을 받으면 생산자들은 최소한의 가격을 보장받는다. 자유무역 체제에서는 생산을 하면 할수록 생산자의 삶이 피폐해지지만, 공정무역 체제에서는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가령, 세계 시장 가격이 최소 가격보다 올라가면 현재의 세계 시장 가격대로 지불한다. 그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강제하고 감독하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통 구조를 최소화해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의 많은 부분을 생산자에게 지불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상품에는 사회간접자본의 개발을 위해서 일정액을 생산자에게 추가 지불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사회적 초과 이익’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생산 기술을 개발하거나, 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세우거나, 도로를 포장하거나, 마을 센터를 짓거나, 상수도 시설과 전기 시설을 구축한다. 어떤 곳은 연금 제도를 만들어서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들의 노후를 보장해주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따라서 가격이 일반 제품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그것을 골라드는 것, 그래서 ‘영악한 소비’가 아니라 ‘착한 소비’다. 착한 소비자들 덕분에 농촌의 가정이 생산 활동을 유지할 수 있고, 아이들이 학교와 병원을 갈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어디서든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 세계공정무역의 날에 일본 공정무역 매장이 유기농 상품을 진열하고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공정무역 제품들이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형 백화점에 전문 코너가 생기고, 전문 매장, 전문 카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불고 있는 공정무역 바람

앞에서도 썼듯이 요즘 한국은 FTA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세는 FTA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미풍(美風)은 불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와 같은 시민단체나 생활협동조합 차원에서 미풍(微風)처럼 불던 공정무역운동 바람이 점점 세지고 있다. 얼마 전 현대백화점이 압구정동과 무역센터 매장에 공정무역 상품 코너를 개설했다. 안국동에는 공정무역 전문 매장도 생겼다. 종로·신사동·홍대 부근에도 공정무역 인증 커피를 파는 카페들이 늘고 있다.

물론 공정무역이 사회 안의 양극화라든지 강자와 약자 사이의 약육강식과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주의라는 죄성을 갖고 있으며, 그 죄성은 제도와 구조로 온전하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답게 살도록,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공정무역은 제공해준다. 이런 점에서 공정무역은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만한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세계적으로 공정무역에 참여하는 교단과 교회들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 영국과 미국에서만 약 3,000개 가까운 교회들이 모임에서 공정무역 커피나 차, 다과를 즐기고 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목사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으며, 자유무역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면서 포교 활동을 맹렬히 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휘몰아치고 있는 광풍(狂風)을 거스르고 있는 미풍(美風)을 감지할 만한 영적·도덕적 감수성을 한국의 목사들이 회복할 수는 없을까. 그러면 한국 교회가 한층 성숙해져서 세상에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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