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치아파스에서 풍겨나는 희망의 커피 내음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풍겨나는 희망의 커피 내음
  • 김종희
  • 승인 2008.07.27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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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공정무역 인증 유기농 커피 열매 '아라베' 생산 마을

▲ '아바레'는 치아파스의 습한 고지대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커피 열매다. 농약을 일체 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에서 잘 자라도록 농부들은 곁에서 보살펴주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과 스위스로 수출되고 있다.
치아파스의 공정무역 인증 커피 '아라베'

비가 쏟아지던 7월 어느 날, 멕시코 치아파스에 있는 한 커피 농가를 찾아 나섰다. 스페인이 지배했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관광지 산크리스토발에서도 2시간 넘게 북쪽으로 올라갔으니, 차로 4시간 이상은 달린 셈이다. 비가 오는 탓에 높은 지대로 올라갈수록 하얀 구름이 산허리를 두텁게 휘감고 있다. 반정부 세력인 사파티스타가 지배하는 아티알이라는 마을이다.

이곳에 ‘마야 비닉’(MAYA VINIC)이라고 하는 공정무역 인증 커피 생산협동조합이 있다. ‘마야 비닉’은 ‘마야 사람’이라는 뜻이다. 가구가 커피 열매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들이 딴 커피 열매를 모아서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규모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는 안토니오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마야 비닉에 대해서 소개해주었다.

90년대 중반 커피 값이 킬로그램 당 5페소로 급락했다. 넓은 밭에서 농약을 뿌려가며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질 낮은 커피 열매들이 시장에 싼 값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니 깊은 산골에서 이슬 먹으면서 온갖 벌레들과 알아서 싸우면서 자라난 커피 열매들은 질이 아무리 좋다 해도 가격 경쟁에서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정상적인 유통 구조도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산자들은 중개상이 정해주는 가격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커피를 생산하는 것은 우리가 쌀농사를 짓는 의미와 비슷하다. 따라서 커피 값의 폭락은 이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일이다. 이때 살아남기 위해서 다각도로 시장 조사를 했다. 하지만 길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모니카라는 미국인 여자가 이곳을 찾아왔다. 모니카는 ‘공정무역’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는 미국에 있는 자기 회사를 통해서 이곳의 커피 열매를 수입해갔다.

마야 비닉은 2002년에 정식으로 수출하는 회사로 등록했고, 이들이 생산하는 커피 열매 ‘아라베’는 공정무역 제품으로 인증을 받았다. 그해부터 미국·스위스·일본에 수출했다. 2005년에는 유기농 커피로 인증을 받았다. 아라베는 이곳 사람들의 조상들이 대대로 생산한 커피 열매다. 오랜 세월 동안 농약 하나 먹지 않고도 스스로 병충해와 싸우면서 자랐기에 저절로 유기농 제품이 된 셈이다.

하지만 부자 나라로 수출하는 커피 열매는 질이 좋아야 한다. 열매를 따기 전까지도 정성껏 돌보아주어야 하지만, 열매를 딴 다음에도 크기나 상태가 일정하게 잘 고르는 작업도 중요하다. 처음에는 커피의 질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 일본이 수입을 거절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같은 크기와 상태의 열매를 잘 고르는 기계를 갖추는 등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했다. 그래서 작년 일본과의 거래가 재개되었다. 하지만 생산 물량이 부족해서 수출은 내년부터 하기로 했다.

‘아라베’라는 이름의 커피 열매는 이들이 조상 대대로 키워왔다. 보통 12월에 시작해서 3월에 수확한다. 우리가 갔을 때는 파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것이 제대로 익으면 예쁜 빨간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금년에는 119톤을 생산해서 올해 미국에 53톤, 스위스에 16톤을 수출했다. 질이 조금 떨어지는 나머지 50톤은 국내 시장으로 보냈다.

기자는 전부터 공정무역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그 현장 중에 한 곳을 취재해보고 싶어서 이곳을 들렀다. 그렇다면 익투스선교센터 사람들은 왜 이 이곳에 찾아왔을까.

▲ 마야 비닉이라는 생산협동조합 창고. 이곳에 커피 열매를 모은 다음 열매의 크기가 일정하게 골라내는 작업을 한다. 지금은 창고 규모를 넓히고 도로를 정비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익투스, 현지 주민 삶의 질 개선 위해 공정무역 동참
 
익투스선교센터는 비즈니스 모델 중 하나로 ‘아라베’를 한국으로 수출할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정무역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생겨나는 것은 좋은 징조다. 최근에는 대형 백화점에도 공정무역 인증 제품 코너도 따로 만들 정도다. 익투스선교센터의 한국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무역회사 JS Global Inc.(대표 김병수)를 통해서 내년에 20~30톤 정도를 한국으로 수출하려고 한다.

이 일은 비즈니스 모델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익투스선교센터에 실질적인 이익을 주지는 않는다. 산골에서 커피를 생산하는 이들에게 수출 판로 중에 하나를 더 연결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지인들의 경제 구조를 개선해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익투스선교센터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익투스선교센터 자체의 수익이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 고유의 생산 방식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것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판로만 넓혀주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는 더 있다.

이곳 커피 열매의 수출 가격은 1킬로그램 당 3.26달러다. 여기에 공정무역 및 유기농 제품 인증을 위한 비용과 생산지 개발비가 조금 추가되어서 1킬로그램 당 약 4달러가 된다. 수출 지역의 운송료까지 포함된다. 추가 비용은 공정무역의 원칙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특히 생산지 개발비는 도로를 놓거나 고치거나, 마을 학교와 병원을 짓거나 하는 데 투입된다.

생산자가 번 돈 중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어서 그 여력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병원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아예 그러한 비용까지 포함해서 상품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공정’(Fair) 무역이다. 가격과 품질은 어떨까. 김병수 사장은 “공정무역 제품이면서 유기농 제품인 것을 감안하면 일반 커피와 비교할 때 가격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 낯선 외부인, 그것도 동양인은 처음 대하는 듯 아이들은 매우 수줍어했다. 이들이 입은 옷처럼 자신들의 삶의 형태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을 공정무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커피 열매를 선적하기 두 달 전에 전체 금액의 60%를 미리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 생산자들에게 곧바로 현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통업자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장 목돈을 준비한다는 것이 부담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멕시코 사람들은 일단 돈을 먼저 받으면 그 다음에는 약속을 잘 안 지킨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5년이 넘도록 다른 나라와 거래를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문제들도 잘 극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개인이나 공동체의 ‘생존이 보장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과 ‘도덕성이 되살아나는 것’은 수레바퀴와 같은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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