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할머니가 한국 아이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이유
백인 할머니가 한국 아이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이유
  • 김종희
  • 승인 2008.08.22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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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애드리언 레슬리, 한국인과 한국 드라마 소재로 첫 번째 소설 출간

▲ 뉴욕의 공립학교에서 읽기 과목을 오랫동안 가르쳤던 애드리언 레슬리(Adrienne Leslie)는 최근 한국인과 한국 드라마를 소재로 한 장편 소설 < Bird and Fish >를 출간했다. 소설은 미술가를 꿈꾸던 한국인 남자와 드라마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미국인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가 15년 전부터 흠뻑 빠져들었던 한국 드라마 속의 여러 얘기들도 담겨 있다.
뉴욕 퀸즈에 있는 Living Faith Community Church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가 열리고 있다. 아이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일손들은 대개 젊은 한국인이나 중국인 주부들이다. 이들 틈에 끼어서 점심을 만들고 있는 애드리언 레슬리(Adrienne Leslie)는 백인인데다가 한국 나이로 환갑을 맞은 할머니다. 이 교회에 자기 손자나 손녀가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 교회 교인들은 거의 아시아-아메리카, 다시 말해서 아시아권 2세들로 구성되어 있다. 20대에서 30대 연령층이 가장 두터운 젊은 교회다. 애드리언은 얼굴 색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이 교회 교인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올해 2월부터 이 교회를 출석하더니 지금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애드리언은 작년에 한국인들이 모이는 교회를 찾았었다. '교회'를 찾았다기보다는 '한국인이 정기적으로 모여 교제하는 곳'을 찾았다는 것이 적절하겠다. 한국인들의 종교적 열심을 잘 아는 애드리언이 교회를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그러나 수많은 한인 교회가 있다 해도 언어의 문제만은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영어를 하는 한국인이 많이 모이는 이 교회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주일 예배는 물론이고 주중에 가정에서 진행되는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도 참여하면서 한국인 2세들과의 교제는 깊어졌다.

애드리언은 "하나님은 결국 한국인들을 통해 나를 부르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주 어릴 때 교회를 다녔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교회와 상관없이 살았는데, 한국인들을 만나기 위해 교회로 돌아온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요즘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깊은 행복감에 젖어 있다. 한국인을 만나는 즐거움에 하나님을 만나는 행복이 겹쳐 있다. 여름 캠프에서 아이들 점심을 만들어주는 오늘이 자신의 책 출판 기념회가 열리는 내일보다 더 신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애드리언이 처음으로 쓴 장편 소설 출판 기념 및 저자 사인회가 8월 22일 저녁 맨해튼에서 열렸다. 교인과 동호회 회원과 같은 지인들, 이미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와서 축하해주었다.
그가 처음으로 쓴 장편 소설 <Bird and Fish> 출판 기념 및 저자 사인회가 8월 22일 저녁 맨해튼에서 열렸다. 교인과 동호회 회원과 같은 지인들, 이미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와서 축하해주었다.

소설 <Bird and Fish>는 미술가를 꿈꾸던 한국인 남자와 드라마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미국인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가 15년 전부터 흠뻑 빠져들었던 한국 드라마 속의 여러 얘기들도 담겨 있다. 재미있는 것은 군데군데 등장하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표기했다는 것이다. 가령, "아자, 아자, 파이팅!" 하는 걸 "Aja, Aja, Fighting!" 하는 식이다. 중학교에서 오랜 세월 읽기 과목을 가르쳤던 애드리언은 미국 사람들이 눈으로는 "Aja, Aja, Fighting!"의 뜻을 파악하지 못할지라도 문장이나 단락 전체 흐름 속에서 그 의미와 느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학습법을 적용했다.

두 번째 작품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내년 출간을 앞두고 최종적으로 손질하느라 바쁘다. 제목은 <Sea and Sky>. 첫 번째 작품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과 뉴욕이 배경이라고 했다. 두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야구팀 OB Bears에 대해서도 알았단다.

▲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 '한국무리' 멤버들이 뉴저지와 필라델피아에서도 와서 첫 번째 소설 출간을 함께 기뻐했다.
그는 왜 한국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고, 한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하고, 한국 드라마의 얘기를 담은 소설을 썼을까.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네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쓰라"고 조언했는데, 자신도 그 조언을 따른 것이다. 글을 쓰기에 자신 있는 분야가 한국인, 한국 드라마였다는 말이다.

그의 부모가 한국인이거나 남편이 한국인은 아니다. 그의 부모는 유럽에서 건너왔다. 친인척 중에 한국인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과의 인연은 매우 단순하고 간단한 데에서 출발한다. 그는 오랜 세월 퀸즈의 공립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런데 15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의 숫자가 매우 많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이다.

▲ 그는 왜 한국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고, 한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하고, 한국 드라마의 얘기를 담은 소설을 썼을까.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칠 때 "네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쓰라"고 조언했는데, 자신도 그 조언을 따른 것이다. 글을 쓰기에 자신 있는 분야가 한국인, 한국 드라마였다는 말이다.
그는 그때부터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어느 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한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데,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빠져 들었다. 지금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한국무리'라는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각 나라 문화와 전통을 알리는 행사를 학교에서 한 적이 있었다. 중국인 교사는 숫자가 많아서 준비를 열심히 하는데 한국을 소개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애드리언이 그 일을 도왔다.

한국 학부모들이 감동 받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침 주미 한국 대사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가 애드리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2003년 뉴욕의 교사를 대표해서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다. 드라마 속의 한국 사람들이 친자식과 입양아에 대해서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혈통' 또는 '피'라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는 있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른들, 특히 선생님에 대해서 유난히 존경심을 표하고 순종하는 태도에 대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학교에 있을 때나 학교를 떠나서나 한국인들과의 교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민 온 한국 아이들만 모아서 학교가 끝난 다음 어려운 점 상담하고 도와주는 일을 1년 동안 한 적이 있었다. 한국 전래 동화를 영어 시나리오로 만들어서 한국 아이들이 연극을 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의 한인 라디오방송에 고정 출연해서 미국 사람이 보는 한국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기도 하고,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번은 추석 잔치에 나가서 노래를 불러 텔레비전을 상으로 받았다. 애드리언의 남편은 그에게 "노래를 잘 불러서 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애국가를 불렀기 때문에 상을 받은 거 아냐?" 하고 농담을 했단다. 이번 올림픽 역도 경기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따서 애국가가 울릴 때 같이 부르기도 했단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교회로까지 왔으니, 그가 한국 사람들 덕분에 하나님을 만났다는 얘기를 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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