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 목사, 중립 가장한 편들기 정치 선보이다
릭 워렌 목사, 중립 가장한 편들기 정치 선보이다
  • 박문규
  • 승인 2008.09.03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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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새들백교회서 열린 'Civil Forum'에 대한 주관적 분석

릭 워렌 목사의 주선으로 새들백교회에서 미국 대선 후보 정치 포럼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심 반가웠다. 기독교는 정당을 이루거나 정권을 잡으려고 노력해서는 안 되지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워렌 목사의 말대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어야 하겠지만, 종교와 정치는 민주 사회에서 분리하기 힘들다. 종교란 사람들의 세계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지난 8월 16일 새들백교회에서 열린 대선 후보 포럼에 대한 주관적인 감상문이다.

▲ 누군가의 말처럼 이 포럼에서 가장 많이 얻은 자는 릭 워렌이고, 가장 많이 잃은 자는 오바마다.
워렌 목사와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

릭 워렌은 남침례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남침례교회 계통의 대학교와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전형적인 보수 복음주의 목사다. 침례교회는 남북전쟁 때 노예제도에 대한 견해차로 남침례교회와 북침례교회로 나뉘었다. 얼마 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가 스스로 남침례교에서 탈퇴했는데, '인종 문제에 대한 남침례교회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어서 내린 결단'이라고 지미 카터는 고백했다.

우선 남침례교단에 속한 새들백교회가 이번 포럼의 주최자로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새들백교회 교인 중 90% 이상이 백인들이고, 인종 문제가 정치 이슈가 되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미국 사회에 형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포럼을 성사시킨 것은 릭 워렌 목사의 탁월한 정치력이다. 남침례교단은 1980년 이래 미국의 큰 정치 세력인 보수 복음주의의 중심 세력을 이루고,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부자가 대통령이 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을 지지했던 케네디 행정부에 반발한 것이 보수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정치학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더 이상 인종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가지고 나올 수 없는 오늘의 상황에서 이들은 낙태․동성애․마약․공립학교에서의 기도 허락 등을 정치 이슈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이들의 지지 없는 미국의 보수주의 정치를 생각할 수 없게 됐다.

지난 공화당 예비 선거에서 복음주의자들의 표는 남침례교의 목사인 마이크 허카비 후보에게로 모아진 반면, 신앙 노선도 확인되지 않은 채 공화당의 야생마로 불리는 매케인 후보에 대해서 아직 복음주의자들은 관망하는 상태에 있었다. 매케인은 이번 릭 워렌 포럼이 복음주의자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을 것이다.

반면에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고 동성애 반대에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는 오바마는 얻을 것이 많지 않은 포럼이었다. 오바마는 자기가 다니던 교회의 라이트 목사가 '갓 뎀 아메리카' 라는 원색적인 언어로 미국 사회를 비판한 것이 구설수에 올랐기에 이 기회에 신앙심과 애국심을 부각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워렌 목사에 의해 편집된 두 대선 후보의 모습

포럼은 두 후보가 직접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짜여졌다. 물론 질문할 토픽과 질문의 내용도 워렌 목사가 결정했다. 두 후보를 직접 붙여놓다가는 언쟁이 지나쳐 토론이 상대방의 비난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형식을 취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후보자들의 차이점은 워렌 목사와의 대담을 통해서만 부각될 수가 있었고, 토론의 방향도 워렌 목사가 마음대로 정했다. 좀 악의적으로 말하자면 청취자들에게 두 후보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보여주기보다 워렌 목사가 보여주고 싶은 두 후보의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보여주고, 워렌 목사 스스로를 미국 청중에게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구성된 포럼이다.

후보들의 구원관에 관한 워렌 목사의 질문에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죄 사함이 구원의 핵심'이라며 교리상의 '정답'을 대답했다. 오바마는 말로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삶을 통해 실천하는 믿음을 이야기했다. 그가 시카고에서의 벌였던 빈민 활동을 예로 들었더라면 훨씬 감동적이었겠지만 오바마는 원론적인 이야기만을 하고 말았다.

반면에 매케인은 베트남에 포로로 잡혀있을 때 자기를 지키던 간수 한 명이 모래에다 십자가를 그려서 간수와 함께 예배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 청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워렌 목사는 두 후보에게 '생애에 도덕적인 최대의 실패는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았는데, 오바마는 어린 시절 마약에 손을 댔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들에겐 별로 특이할 것 없는 이야기다.

한편 매케인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이혼한 경험을 말했다. 매케인은 교통사고를 당해 병중에서 신음하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억만장자와 결혼했다는 점에서 일반인의 이혼과 다르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워렌 목사는 짓궂은 언론인들과는 다르게 이 문제를 잡고 늘어지지 않는 신사성을 보였다. 그 덕에 매케인은 상당히 많은 여성들에게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업에 대해서 면죄부를 얻은 것이다.

▲ 매케인은 베트남에 포로로 잡혀있을 때 자기를 지키던 간수 한 명이 모래에다 십자가를 그려서 간수와 함께 예배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기독 청중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낙태와 동성애가 세계관의 전부?

이른바 세계관이라는 항목에서 워렌 목사는 후보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분석하고 있느냐'는 질문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낙태와 동성애에 할애하면서 결정적으로 오바마를 궁지에 몰아버렸다.

릭 워렌 목사는 낙태에 대한 질문을 '생명을 정의하라'는 물음으로 대신했다. 수태 순간부터 생명이라는 낙태 절대불가론자의 입장에 서버린 셈이다. 수태한 이후에도 낙태할 수밖에 없는 갖가지 이유를 참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애초부터 차단하는 질문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 매케인은 단호하게 낙태 반대를 이야기함으로써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반면에 오바마는 낙태를 허용하되 낙태율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매케인의 이혼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너그러웠던 워렌 목사는 오바마의 낙태관에 대해서는 집요했다. '낙태율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고 질문하면서 오바마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워렌 목사는 '결혼을 정의하라'는 질문으로 동성애 문제에 대한 대선 주자들의 견해를 듣기 원했다. 동성애 간의 결혼도 결혼일 수 있느냐고 물어본 셈이어서 동성애자란 이유로 차별을 당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평등주의자들의 도덕성은 설 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물론 매케인은 동성애에 대한 확고한 반대를 표명함으로 청중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지만, 오바마는 자기는 결혼이 남녀의 결합이라고 믿지만 동성 커플들을 차별하고 싶지 않고 동성 결혼을 금지하는 헌법 개정에도 반대한다고 말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일관성 없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국제 문제는 오바마가 자기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기독교 정신과 반대되는 살육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워렌 목사는 미국인들이 외국에서 피 흘리고 죽을 만한 위대한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때 오바마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마 인터뷰를 듣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그러면 미국인이 이라크에서 자유를 위해 죽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바마는 이때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서의 패권, 오일 비즈니스, 전쟁상인을 위한 명분 없는 살육이지 결코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웬일인지 미국의 무력 사용에 국제적 공조가 있어야 한다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렸다.

워렌 목사는 대량 학살을 이야기할 때 미국의 이라크 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에 주목했다. 결국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대치 상태도 불사해야 한다는 매케인의 강경 노선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워렌 목사는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세금 문제에 국한했다. 결과적으로 공화당 정부의 경제 실패에 대해서는 언급을 차단하고 세금을 한 푼도 올리지 않겠다는 매케인을 돋보이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연간 25만 불 이상 버는 부유층의 세금 부담을 약간 늘림으로써 교육과 건강보험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오바마의 의견은 중산층 이상의 청중들 때문인지 이러다 할 반응을 얻지 못했다.

매케인은 경쟁을 강화해 국민들의 선택의 폭을 넓히고 이것을 교육이나 세금 문제에도 반영하겠다고 밝혀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사립학교를 보낼 수 없는 대다수의 보통 시민들에게는 이런 교육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공립학교의 자원을 고갈시켜 교육의 불평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측면은 지적하지 않았다.

▲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서의 패권, 오일 비즈니스, 전쟁상인을 위한 명분 없는 살육이지 결코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웬일인지 미국의 무력 사용에 국제적 공조가 있어야 한다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써버렸다.
최대 수혜자는 릭 워렌, 최대 피해자는 오바마

기독교인이 선거에 있어서 항상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이번 선거에서는 오바마 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릭 워렌 목사는 포럼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아무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두 후보에게 공정하게 똑같은 질문을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매케인에게 유리한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워렌 목사가 편파적이었다기보다 애당초 그의 세계관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의식적으로 계획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그는 두 후보에 대한 보수주의자의 평가만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작업에서 성공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포럼에서 가장 많이 얻은 자는 릭 워렌이고, 가장 많이 잃은 자는 오바마다. 매케인은 이 포럼을 통해 미국 복음주의자들을 안심시켰다. 반면에 오바마는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인임을 재확인시켰다. 어차피 그들은 오바마를 지지할 가능성이 없었지만 오바마는 그가 정치적으로 미숙하다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이다. 나는 워렌 목사의 정치적 노회함에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실망한 것은 편파적일 것이 뻔히 보이는 포럼에 참가한 오바마 진영의 판단착오다.

박문규 / 캘리포니아인터내셔날대학 학장․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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