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 캠페인에 목매지 말고, 연구에 집중해라"
"대중적 캠페인에 목매지 말고, 연구에 집중해라"
  • 박지호
  • 승인 2008.10.06 23: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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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양승훈 교수, "혹독한 지적(知的) 고문 속에 수없는 날밤 지샜다"

최근 창조과학회와 '창조론'으로 대립했던 양승훈 교수. 그는 스스로를 돈키호테라 비유했다. "한때 창조과학회의 핵심인 '젊은 지구론'과 '단일격변설'을 사도신경처럼 신봉하면서 돈키호테처럼 '창'을 꼬나 매고 온 세상을 쫓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찔러댔다"고 고백했다.

한국창조과학회를 창립하는 일을 주도했고, 부회장까지 맡았던 양 교수는 훗날 '한 창조론자의 회개'라는 글을 통해 일종의 양심선언을 했다. 창조과학에 대한 자신의 주장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하고 입장을 수정했다. 양 교수는 당시에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이렇게 토로했다.

"'젊은 연대'와 '오랜 연대'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정말 혹독한 지적 고문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젊은 연대와 오랜 연대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날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렇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젊은 연대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밤잠을 제대로 잤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했겠지요."

양 교수의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회개인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사과였다. 과거에 틀린 주장을 한 것에 대한 회개라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창조론 연구에 성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이자, 진지하게 연구하지도 않았으면서 전문 학자의 연구 결과를 쓰레기 취급한 것에 대한 반성이었으며, 학문성도 없는 대중적인 문헌들을 근거로 수많은 강연을 하러 다닌 것에 대한 사과라고 양 교수는 설명했다.

양 교수는 창조과학과 신앙을 붙들고 밤낮으로 씨름하던 끝에 '다중격변'이라는 모델을 붙잡고 불가지론의 늪에서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다중격변에 대한 연구를 거듭해 <창조와 격변>(예영, 2006)을 통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담아냈다.

▲ 양승훈 교수는 "'다중격변론'을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회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닌,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를 자유롭게 만든 다중격변론은 오히려 창조과학회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창조과학회의 핵심인 단일격변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양 교수에게는 창조론의  대안이었지만, 창조과학회는 진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창조과학회는 양 교수를 향해 자진 탈퇴하지 않으면 제명하겠다고 했고, 양 교수는 결국 탈퇴를 선택했다.

양 교수는 자신의 탈퇴가 분열과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반성과 창조과학의 신학적 전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적어도 복음주의 계열의 전문 학자들의 얘기에는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도 전하면서 창조과학회가 대중적 캠페인에만 목을 매지 말고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창조론에 대한 입장이 변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과학계와 복음주의권에서 창조과학회의 위상이 어떤지, 이번 창조론 논쟁으로 창조과학회와 한국 교회가 배웠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지 양 교수에게 물었다. 인터뷰는 전화 통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창조과학회를 강요에 의해 탈퇴한 셈이지만, 조직의 방향이나 신학에 동의하지 않으면 떠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러나 젊은 지구론을 선호했던 한국창조과학회지만 그것을 신조로 채택하거나 회원들에게 강제하지는 않았다. 몇 년 전에 '6,000년 창조 연대'(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6,000이라는 주장)를 신조로 채택하자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지만, 여러 사람들이 반대해서 채택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한 지금도 창조과학회 내에는 '6,000년 우주 연대'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이번에 나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니까 창조과학회에서 이사들에게 6,000년 창조 연대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개 선서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나는 회원들이나 리더들에게 6,000년 창조 연대를 신조나 정관 등을 통해 강제한다면 그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련 없이 창조과학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창조과학회의 핵심 주장에 대해 '이건 아니다' 하고 결론짓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달라.

창세기와 과학의 양립 가능성의 도전을 받고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엄청난 확신 속에서 창조과학운동에 참여했다. 이 운동은 틀릴 수 없고 틀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인생을 걸겠다고 결심했다. 한 때 공부하고 있던 물리학 박사과정을 집어치우고 창조과학으로 박사를 하러 미국엘 갈까 생각하기도 했다.

창조과학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6,000년 우주 연대와 단일격변설에 대해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다. 당시 시카고대학 물리학과에서 박사 후 연수 과정을 할 때였는데, 아내가 공부하던 위튼대학 교수들과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복음주의의 바티칸이라 불리는 위튼대학 교수들이 하나같이 창조과학회의 주장에 대해 비성경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반대하는 게 아닌가. 당시 창조과학 열정으로 충만해 있던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성경을 믿는다는 사람이 창조과학도 안 믿다니. 이 사람들이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 맞아?' 나는 분노했다. 그래서 당시 신학과 원로 교수를 찾아가서 따지기도 했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트리니티복음주의신학교 구약학 교수들도 창조과학은 비성경적이라고 반대하는 것 아닌가. 당시 정말 황당했다.

그 후에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전하던 것들이 아마추어들의 향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전문적으로 파고들 형편은 되지 못했다. 그래서 1991년, 대학에 휴직을 신청하고 위스콘신대학(Madison) 과학사학과에 입학해 창조론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탄소 연대를 두고 어떻게 분열했는가'를 추적하는 연구를 석사 논문으로 제출했고, 이 논문은 후에 <J. of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에 전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미국에 과학사를 공부하러 오긴 했지만 물리학자로서 정체성을 버릴 수 없었기에 과학사와 더불어 방사성동위원소 연대 측정에 대한 전문적인 문헌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당 분야의 논문과 전문 서적들을 읽어나가면서 깜짝 놀랐다. 여러 해 동안 창조과학 강연에서 사용하던 아마추어 문헌들과는 달리 방사능 연대 측정법은 매우 치밀하게 고안된 방법이고, 내가 비판했던 방사능 연대의 여러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어 큰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방사능 연대 측정법은 다른 연대 측정법들에 의해 상호 검증이 되는 등 믿을 만한 방법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증거가 나오더라도 6,000년 우주 연대는 절대 틀릴 수 없다는 확신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끙끙거리기만 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7년, 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을 설립하는 일을 위해 대학을 사직하고 캐나다 밴쿠버로 가게 되었고, 창조론 연구를 전업으로 삼게 되었다. 연구실에서 창조론 연구에 전념하면서 다양한 문헌 연구와 탐사 여행을 겸하기 시작했다. 창조론 탐사 여행은 나의 창조론 공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수십 차례의 주요한 야외 탐사를 비롯해 미국과 세계 14개국에 있는 세계적으로 주요한 고생물학 및 고고학 박물관을 30여 개 이상 돌아다녔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6,000년 창조 연대와 단일격변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증거들이 쌓여갔다.

다중격변설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 계기는.

2003년 중반쯤이다. 프랑스 최고의 창조론자 퀴비에가 1829년에 출간한 <지면의 격변들에 관한 강의>라는 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다중격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대 최고의 고생물학자였던 파리과학원의 퀴비에 역시 처음에는 노아의 홍수라는 단일격변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역시 연구를 진행하면서 단일격변만으로는 도저히 지구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 <창조와격변>은 양승훈 교수가 혹독한 지적(知的) 고문 속에 수없는 날밤 지샌 뒤 얻은 결과물이다.
그는 결국 노아의 홍수 이전에도 여러 차례 홍수가 있었다는 가정을 하지 않고는 빠리 분지에서 발견되는 지층과 화석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질학이라는 학문이 막 생겨났고, 천문학적인 증거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모델을 다듬을 수 있는 데이터가 별로 없었다. 때문에 퀴비에는 다중격변론을 하나의 개념으로만 제시해놓았다.

퀴비에의 다중격변설을 처음 접하면서 '어쩌면 이 이론을 다듬게 되면 지금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지금은 퀴비에가 살았던 20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질학, 천문학, 우주론 등의 분야의 증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구와 달은 물론 수성·금성·화성 등 태양계 내의 행성들에 무수히 남아 있는 대규모 운석 충돌의 흔적들은 내게 다중격변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다중격변설은 하나의 모델이요 가설일 뿐이다. 제안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분명한 듯이 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허점이 많을 것이다. 6,000년 우주 연대나 단일격변설이 틀린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이지만 다중격변설 역시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이론일 것이다. 이 이론이 확정 혹은 반증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창조론의 교과서라 불리는 <창조론 대강좌>(CUP, 1996)를 본인이 직접 펴냈다. 출간된 시기를 되짚어보면 보면 한창 창조론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그때는 왜 그런 언급을 안 했는가.  

부끄럽지만 나는 젊은 연대와 오랜 연대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젊은 연대 문헌들을 보면 그게 맞는 듯 하고, 오랜 우주 문헌을 보면 그게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창조론 대강좌>를 쓰면서, 특히 연대 부분을 쓰면서 젊은 연대의 증거들과 오랜 연대의 증거들을 동시에 제시한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젊은 연대 쪽으로 기울어지게 쓰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느 것도 확실하게 얘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책을 낸 후 2003년까지 정말 혹독한 지적 고문 속에서 지냈다. 젊은 연대와 오랜 연대의 틈바구니에서 수많은 날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젊은 연대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사정없이 허물어지는 기가 막힌 상황에서 밤잠을 제대로 잤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불가지론의 늪에서 나를 구해낸 것이 바로 다중격변 모델이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먼저 자기반성을 하는 것이 순서 아닌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몇 해 전에 책과 인터넷 등을 통해 '한 창조론자의 회개'라는 회개문을 발표했다. 그 회개문은 내가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쓴 것이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글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회개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사과이기도 하다. 그 글의 핵심은 그동안 내가 틀린 주장을 한 것에 대한 회개가 아니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틀린 지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나의 회개는 일차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창조론 연구에 성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었다.

그 사과는 또 나와 의견이 다른 전문 창조론자들에 대한 무례한 언사와 행동에 대한 사과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진지한 진화론 학자들에 대한 사과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창조론 논쟁을 했던 분들에 대한 학자로서의 무례한 언행을 사과한 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성실하게, 진지하게 연구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들의 연구 결과를 쓰레기 취급한 것을 반성했다. 지금까지도 학문성도 별로 없는, 대중적인 문헌들을 근거로 많은 강연을 하러 다닌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오랜 지구·우주론'과 '다중격변론'을 주장하는 것이 창조과학회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닌,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6,000년 우주·지구 연대와 노아 홍수로 지구상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단일격변설은 신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전혀 방어할 수 없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적어도 천문학 분야에서 6,000년 우주 연대를 주장하게 되면 천동설이나 평면지구설 지지자 취급을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 6,000년 우주 연대를 주장하는 것은 400여 년 전 유럽에서 천동설을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당시는 지동설도 천동설에 비해 그렇게 우월한 증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주 연대 논쟁은 그런 차원의 논쟁이 아니다. 창조과학에서 제시하는 6,000년 우주 연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량적이고 많은 증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여기서 일일이 그 증거들을 제시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6,000년 우주 연대와 단일격변설은 적어도 학문적으로는 단칼에 날아가는 주장이다. 그 이론들은 전문 신학자들의 모임이나 전문 과학자들 모임에 가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솔직히 2003년에 다중격변론을 처음 구상할 때 나는 이 이론이 창조과학회의 단일격변설을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론을 처음 구상했던 2003년부터 발표할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저는 문헌 연구와 더불어 저의 모델이 맞는지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탐사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연구를 하면 할수록 점점 다중격변설이 진화론자들의 동일과정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격변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확신이 굳어지고 있다. 즉 노아의 홍수를 부인하지 않지 않으면서, 격변설의 신조들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자연선택의 횡포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현재의 지층과 화석들의 존재를 설명하려면 다중격변설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과학계와 복음주의권에서 한국창조과학회의 모태인 미국 창조과학연구소(ICR)의 위상은.

ICR은 미국 남부의 근본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을 뿐 전체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은 복음주의 과학자들이나 신학자들의 모임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러 해 전에 북미주의 대표적인 복음주의 과학자들 모임에서 포스터 세션(Poster Session) 발표를 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ICR 주장을 언급했더니 미시간에서 온 어떤 생물학자는 단호하게 “Wrong Science, Bad Theology”란 말로 자신의 입장을 요약했다. 일반 성도들 수준에서는 ICR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세계 최대의 복음주의 기독교대학 연합체인 CCCU(Council for Christian Colleges and Universities)에서 대학 교재로 제작한 <믿음의 눈으로 본 시리즈>(한국에서는 IVP에서 번역, 출간했음)도 ICR의 창조과학을 거부하고 있다. 참고로 CCCU에는 북미주에서 위튼대학·메시아대학·칼빈대학 등 110개 주요 기독교대학들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으며, 명지대·한동대·한남대를 포함하여 전 세계 24개국의 76개 협력 대학들(Affiliated institutions)이 참여하고 있다.

미국창조과학회(ICR) 내에도 전문 과학자들이나 논문이 상당하던데. 

물론 ICR에서도 나름대로 연구를 하고 있다. 근래 미국 창조과학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창조과학 역사상 최대의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름하여 ‘방사성 동위원소와 지구 연대’(Radioisotopes and the Age of The Earth: RATE)라는 프로젝트다. 이것은 10여 명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여러 해에 걸쳐 진행한 연구이며, 연구비만도 120만 불이 넘는다. 창조과학 프로젝트로서 이 정도의 연구비를 사용한 적이 없음을 감안할 때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연구 결과들은 포스터 세션으로 전문 학회에 한 번 발표된 것을 제외하고는 아직 제대로 된 전문 학회지에는 한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못했다(내가 아는 한). 막대한 성도들의 헌금을 모아서 진행한 연구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발표회를 교회나 일반 대중들을 모아놓고 하는 수준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 학회지를 통해서는 한편의 논문도 발표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ICR의 현실이다.  

▲ 양승훈 교수는 "미국창조과학회(ICR)가 미국 남부의 근본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을 뿐 전체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출처 : 미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 캡쳐)
복음주의 신학자들 중에 오랜 지구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로 안다.

복음주의자들 중에 오랜 우주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많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된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중에서도 특히 창세기를 전공하는 구약학자들 중에는 6,000년 우주 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꼽아보라. 적어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6,000년 우주 연대는 극소수 근본주의 진영의 의견이다. 나는 아직까지 복음주의 진영의 구약학자들이나 해당 분야 전문 과학자들 중에 6,000년 우주 연대를 지지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주류 신학계와 과학계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그토록 담대하게 주장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창조과학회 내부에 수많은 석·박사가 있는 것으로 안다. 그들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신학적 기초의 부족이다. 즉 창조과학회는 이공계 학자들 중심이어서(정회원의 자격을 이공계 석사 학위 이상으로 제한) 신학적 반성의 기회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창조과학은 강력한 신학적 배경을 깔고 있는 운동인데, 주요 창조과학 지도자들이 신학적 훈련을 받지 않아서 자신들의 주장이 어떤 신학을 대변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신학자들이 아무리 창조과학의 현재 주장들이 신학적 근본주의, 성경해석학적 문자주의, 종말론적 세대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고 현재의 주장들이 성경을 과학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이고, 성경무오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창조론운동이 건강한 신학적 기초 위에 세워지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둘째는 아마추어리즘 때문이다. 창조과학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들이며 훌륭한 과학자들이다. 하지만 창조-진화 논쟁, 특히 우주·지구의 연대나 지사학과 구체적으로 관련된 분야에서는 아마추어라는 말이다.

창조-진화 논쟁과 같이 기초과학 영역에 해당하는 연구에서 어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오랜 시간과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 이런 분야에서 현대 과학의 결과(해석이 아닌)와 전혀 다른 주장을 할 때는 신중함과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학문적이지 않은, 다시 말해 신뢰하기 어려운 문헌들이 현 창조과학의 학문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과학사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창조과학을 과학이 아닌 '유사 과학' 혹은 '사이비 과학'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Pseudo-Science”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연대 문제만 해도 그렇다. 현재 6,000년 우주 연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있는 분들은 지구나 우주 연대, 지질학과 관련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미국 창조과학회가 지구 연대 분야의 전문가라고 내세우는 오스틴이나 스넬링, 모리스조차도 지구 연대와 관련하여 제대로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창조과학자들만의 잡지가 아닌, 해당 분야의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적이 없다. 이들이 그처럼 틀렸다고 비판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들도 본인들의 전문 분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대중 강연에서 전체 연대 측정 결과의 2% 미만인 소수의 부정확한 결과들을 가지고 전체 방사능 연대가 틀린 것처럼 강의하고 있다. 참고로 소수의 부정확한 연구결과들은 대부분 연구자의 실험적 오류가 아니면 전문 학술지의 데이터들을 잘못 해석한 것임이 명백히 밝혀져 있다.

우주 연대도 마찬가지다. 지난 번 본인의 제명 문제가 불거졌을 때 창조과학회에서는 저의 제명 문건을 작성하고, 거기에 우주가 젊었다는 것을 증거한다는 문건을 30여 개 정도 첨부하여 지도자들에게 내부적으로 회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문건들의 국내외 저자들 중에 우주 연대 분야에서 연구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천문학자조차 한 사람도 없었다. 그 문헌을 모으면서 편집했던 사람도 어느 대학 웹디자인학과 교수였다.

전문가들에게 귀를 기울이자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과학은 매우 전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 전문 분야에서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은데 하물며 자신의 전문 분야와 전혀 동떨어진 분야에서 잘 증명된 사실들조차 엉터리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학문적 만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일을 통해서 창조과학회가 배웠으면 하는 바는?

창조과학회 내에 자신의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 업적을 내고 있는 학자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적 순전함이나 인격적 진정성에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직접적인 연구 분야와 관련하여 쓴 책이나 대중강연 등은 대체로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사실 창조과학회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창조과학회 외에 딱히 그리스도인 과학자들의 공동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창조과학의 신학적 입장이나 과학적 주장에 대해(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창조론운동의 교회 내외적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좀 더 진지하게 다른 의견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현대 생물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이 건강 문제로 일평생 고통 가운데 살았으면서도 매일 하루에 세 시간 이상 꾸준히 자신의 연구에 집중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지금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다윈보다 더 진지하게, 더 많이 공부하지도 않으면서 그의 주장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죄송함을 느낀다.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본인이 창조론 운동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고 대중적 캠페인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창조과학운동의 또 하나의 문제는 잘못된 주장이 아니라 그 주장을 하는 태도라고 본다.  어차피 우리는 전지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조차 후에 보면 오류인 것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어도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진지하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이 전투적이고 흑백논리적인 태도로는 학문적 토론에서 생산적이고 건강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 우선 다양한 의견을 가진 창조론자들과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고, 반대 입장에 있는 진화론자들이나 심지어 기독교 안티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 그들이 창조과학을 비판하는지, 그 비판하는 바가 무엇이며,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럴 때 창조론을 위한 더 나은 전략들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해당 분야 전문 과학자들이나 신학자들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게 어렵다면 책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기 때문이다."(잠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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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yachudjh 2011-09-22 12: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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