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브레아 나침반교회, '교회 분립 및 건물 매각' 부결
O.C. 브레아 나침반교회, '교회 분립 및 건물 매각' 부결
  • Michael Oh
  • 승인 2019.10.04 00:17
  • 댓글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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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2020-02-20 03:28:40
2-16-20
사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플 때 그 증상에만 관심이 있고 그저 통증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증상의 근원인 병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이미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는 것은 나사로에게 이미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런 시체를 향하여 예수님은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시고 무덤에서 나오게 하심으로..[M]

나침반 내홍의 근원을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에 그 뿌리를 파헤쳐보니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기복신앙을 가진 교인들 덕분에 오랫동안 숨겨져있던 온갖 추태가 들어났는데도 회개가 없는 희망이 없는 상태임을 낱낱히 보여준다. 그런 삵꾼을 향하여 예수님은 “삯꾼아 교회를 나가라’고 외치신다

독후감 2020-02-12 03:51:08
한국교회 목사는 만 70세가 정년이지만 일반적으로 65세를 자원 은퇴 연령이란다.옥한흠목사님은 5년 일찍 65세에 조기은퇴하며 “인간적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교회를 우선순위에 놓고 생각하면 지금 물러나는 것이 사랑의 교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반적으로 65세 은퇴지만 사회보장 연금을 받을수 있는 62세부터 은퇴를 하기도 한다. 교인에게 고소를 당하고 비리에 연루된 목사에게 교회는 조용히 조기 은퇴를 권하며 모든걸 덮고 은퇴목사로 모시겠다고 했다.하지만 교회를 우선 순위에 두지 않고 교인들의 영혼을 보살피지 않는 목사는 단1명의 교인이 남을 때까지 담임목사 자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담임목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중 하나는 양떼를 잘 돌보고 보호하는 일인데. 임무는 없고 자리만 중한듯

독후감 2020-02-12 02:47:53
‘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 내용중에서 (계속)
- 사실 목회자만큼 위선자가 되기 쉬운 직업도 없습니다. 목회자만큼 위선자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위선이 악습으로 몸에 배면 양심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얼마나 무서운 벼랑끝에 서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고난과 고통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 목회는 목회자 자신만큼 발전하게 되어있습니다. 평신도 수준도 전적으로 목회자의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옥한흠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생각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독후감 2020-02-12 02:29:29
후배들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목양일념>의 길을 갈 거라고 옥한흠목사님 영전에 바친 본인의 추모사 내용을 생각하며 ‘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 책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하고싶다.

‘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 내용중에서
- 하나님을 속이지 마십시오. 결국은 심은 대로 거두기 마련입니다
- 성도들에게 ‘나를 본 받으라’고 말 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사역자가 되십시오
- 식으면 변명이 많아집니다.변명이 많은 사역자는 하나님과 함께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사역의 제로순위가 누군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과 함께 있다면 제대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반대에 있다면 변질된 목회자입니다.

독후감 2020-02-11 03:53:45
2-9-2020 주보
-페이먼트헌금: 유명, 무명
-1,2부: $/ 1.5부: $ 총 계 : $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비싼 종이에 프린트된 공적문서 주보에 아주 작게 적힌 예배시간으로 분리된 헌금 금액이 눈에 확 띈다.현금자 명단 공개로 신앙인의 기본을 가르치겠다는 목회 철학이 아닌, 연보의 본래 목적인 구제를 철저히 배제한 성전 운영만을 위해 거둬들이기겠다는 꼼수가 보인다.
철저한 십일조생활을 했던 바리새인들이 칭찬받지 못한 이유는 헌신의 표시가 아닌 자기 의의 표출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예배시간에 각종 헌금 봉투에 쓰여진 거룩한 이름들의 시적향연이 시작되는건 아닌지.
그런데 ‘페이먼트 헌금’은 목회자 사택 페이먼트인가? 구린 냄새가 확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