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선아, 사랑해. 요즘 어떻게 지내?
옅어지는 흉터, 짙어지는 하나님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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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이가 궁금했다. 공부하러 보스턴으로 떠난 지 2년, 어떻게 지내는지. 한국에 방문했다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뉴욕에 들른 지선이를 만났다. 다행히(?) 항공사 직원의 실수로 비행기를 놓쳐 좀더 길게 지선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공항에서 나온 지선이는 비행기를 놓친 이유를 설명하며 식식댔다. “그 많은 얘기를 다 영어로 했어? 영어 잘하네” 하니까 “뭐 똑같은 말만 계속했죠” 하면서 씩 웃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고, 기다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연신 생글생글 웃음을 흘린다. 그러면서 비행기에서 옆에 앉았던 어떤 목사님 얘기를 해준다.
▲ 지선이가 비행기를 놓친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뉴스앤조이 박지호 | ||
지선이는 여전히 유쾌했다. 지선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건 2000년 7월이다. 한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지선이가 타고 있던 차에 불이 나서 지선이는 전신 55%의 화상을 입고 의사들도 포기해버린 중상 환자가 되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무릎 위로 화상을 입어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선이는 ‘홀라당 탄 여자’, ‘화상둥이’라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는 당당함과 유쾌함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이후 치료만큼 재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선이는 2005년 9월, 보스턴대학교에서 재활상담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서 보스턴으로 떠났다. 오래전부터 찜했던 학교에, 그것도 장학금 받고 가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공부는 재밌니?” 하고 물었더니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는 듯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음, 처음 1년 동안은 내가 여기 왜 왔나 싶었죠. 재미도 없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수업 시간마다 투명인간처럼 멍하니 앉아 있다 나오고 하니까 힘들었어요. 공부하러 간다고 하고 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호호호. 근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이제 조금씩 알겠어요. 이젠 재밌어요.”
재활상담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한국에서 건너와 재활상담가가 뭐하는 일인지도 모르고 공부를 시작했던 지선이. 유학 생활 초기의 피해갈 수 없는 고통을 특유의 유쾌함으로 바꿔갔다.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이다.
“머리에 쥐가 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소리는 들리는데, 알아듣지는 못하는 말들…. 그걸 눈치로라도 끼워 맞춰서 이해해보려니 혈액 부족으로 뇌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수업 시간 내내 도통 무슨 말인지…. 영어 단어들이 슝슝 날아다닙니다. 참 큰일입니다.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연기 수업. 알아듣는 척 연기는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재활상담 전공으로 입학했지만 현재까지 지선이는 연극영화과 전공 모드로 수업에 임하고 있답니다. 하핫.”
요즘 지선이는 인턴 활동에 여념이 없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재활상담은 실제 경험 없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인턴 활동이 중요하다. 석사를 마친 후 재활상담가 자격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자격증을 가진 재활상담가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 한단다. 매사추세츠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재활상담 에이전시 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된 지선이는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상담을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인턴 활동은 어떠냐”고 물었다.
“클라이언트를 만나 상담하면서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할 때도 있지만 처음보다는 덜 두려워졌어요. 각기 저마다의 사연과 인생이 있는 클라이언트들의 얘기를 듣는 것도 너무 재밌고요. 인턴을 하고 있긴 한데 제가 상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들이 절 상담해줘요.”
지난해 12월엔 한국의 환경재단에서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지선이가 포함되었다. 지선이는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세상의 빛으로 부르셨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소식”이라며 기뻐했다.
요즘 교회 청년부 소그룹 조장까지 맡아서 더 바빠졌다는 지선이. 공부하랴 일하랴 교회 후배들까지 챙기며 그렇게 부지런히 보스턴 땅을 누비고 있다. 말랑말랑한 새살이 올라오길 기도한다는 지선이의 영혼은 이미 예쁘고 건강한 새살이 늘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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