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우리 고향입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에 사는 은퇴 선교사들의 이야기
▲ 플라워스 린튼(왼쪽) 씨는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동안 결핵을 퇴치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플라워스 린튼은 유진벨 외손자 휴 린튼의 아내다. | ||
하지만 린튼 씨는 1년여가 지나서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직 전쟁의 화염이 가시지 않은 한국 땅은 위험하다며, UN군이 이들의 입국을 막았기 때문이다. 린튼 씨에게 발전한 한국을 보며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더니, 연신 '원더풀'이라며, 너무 좋다고 했다.
린튼 씨는 한국에 들어와 순천 기독교 진료소에서 결핵을 퇴치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도 그럴 것이 1960년대 남한 지역의 결핵 환자 수는 200만 명에 달했다. 세계 제일의 결핵 왕국 중 하나였을 정도였다. 결핵은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을 때 걸리는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다. 린튼 씨는 당시 한국이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고 말했다. 린튼 씨는 35년 동안 결핵 퇴치 운동을 벌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996년 호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린튼 씨는 1986년 은퇴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블랙마운틴 지역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린튼 씨 집에는 남한 사람이나 북한 사람들이 자주 드나든다. 그녀의 셋째 아들 제임스 린튼 씨가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린튼 씨는 6월 달에도 북한을 방문해 협력 사업을 진행한다.
제임스 린튼 씨의 고향은 대한민국 군산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말도 유창했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다. 제임스 린튼 씨는 친구들과 뛰놀며 고구마를 구워 먹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옛날 일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었던 제임스 린튼 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많은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해준 까닭에 지금 한국은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한 나라가 됐는데,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을 한 직후였다.
▲ 플라워스 린튼의 셋째 아들 제임스 린튼(왼쪽) 씨가 아내 마가렛 린튼 씨와 함께 블랙마운틴장로교회를 방문했다. 제임스 린튼은 북한의 지하수 개발을 돕고 있다. | ||
클로이스 메리 씨는 1961년부터 1991년까지 서울과 대전, 부산 등지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고등학교 때부터 선교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을 선교지로 선택했다. 그녀의 남편 역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를 했다.
클로이스 메리 씨는 선교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인물이 누구냐고 묻자 갑자기 눈시울을 붉혔다.
▲ 메리(맨 오른쪽) 씨는 남편 클로이스(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함께 서울과 부산 등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선교를 했다. 찰스(맨 왼쪽)와 마리(왼쪽에서 두 번째) 씨 역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 ||
올해 87세인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씨는 자신의 고향을 광주라고 소개했다. 프로보스트 씨는 전주예수병원과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녀는 한국 전쟁 당시에도 한국을 떠나지 않고, 환자와 전쟁고아를 돌봤다.
▲ 프로보스트 씨는 한국 전쟁 중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부상자와 전쟁고아를 돌봤다. | ||
노스캐롤라이나 블랙마운틴에는 이들 외에도 한국에 복음을 전한 선교사 20여 명이 살고 있다. 한국 최초로 기독 의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우리나라 의료 발전에 앞장선 메리 씰(84세) 씨, 장로교신학대학원 기독교 교육원을 설립한 기독교 교육 전문가 메리 안네 멜로즈(86세) 씨 등도 한 동네 식구다.
이들은 미국남장로교 교단에 속한 선교사들로 195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서 활동했다.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을 많이 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미국 교단들이 선교 구역을 나눴기 때문이다. 미국남장로교 교단은 전라도 지역을 담당했었다. 이들이 블랙마운틴에 모여 사는 이유는 이 지역이 미국남장로교 교단의 본거지이기도 하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고 루스 그레이엄 여사가 고향인 이곳에 은퇴 선교사들이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 점도 작용했다. 약 100명 정도가 모여 살았지만, 이제는 20여 명이 모여 살고 있다.
▲ 마포삼열 목사의 아들 사무엘 머핏 목사(왼쪽)가 한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 ||
한국이 발전한 모습을 보고는 고맙고 자랑스럽다는 뜻을 밝혔다. 마치 자식이 훌륭하게 성장한 느낌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