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우리 손에 쥐이기까지

윌리엄 틴데일의 '피 묻은 성경'

2009-06-17     최용준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500년 전만 해도 이것은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럽에는 4세기에 제롬(Jerome)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만 사용되어 성직자들과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윌리엄 틴데일. 벨기에에서 사역하는 필자는 틴데일이 빌보드에서 순교한 사실을 발견하고 더욱 그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마틴 루터와 같이 영국의 위대한 종교개혁가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c.1495-1536)도 모든 평신도들이 성경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마침내 42세의 젊은 나이에 벨기에의 빌보드(Vilvoorde)에서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벨기에에서 사역하는 필자는 틴데일이 빌보드에서 순교한 사실을 발견하고 더욱 그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틴데일은 영국의 명문인 맥댈런·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는 외국어 실력이 탁월하여 모국어인 영어 외에 불어·독일어·이태리어·라틴어·스페인어 그리고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하여 원어 성경을 읽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은혜를 일반 성도들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국왕인 헨리8세는 이것을 금지하였고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틴데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다면 쟁기를 가는 소년이 당신들보다 더 성경을 알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If God spare my life, ere many years, I will cause a boy that driveth the plow to know more of the Scriptures than thou dost.)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자 결국 틴데일은 루터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개신교에 관용적이던 독일의 함부르크와 비텐베르크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영국 가톨릭 주교들은 그곳까지 첩자들을 파송하여 그의 성경 번역과 출판을 계속 방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틴데일은 이에 굴하지 않고 루터의 도움을 받아 계속 번역한 후 다시 쾰른으로 옮겨 최초의 영문판 신약성경 번역을 완성하여 마침내 1525년에 출판합니다.

그러나 한 인쇄공이 이것을 밀고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낀 틴데일은 다시 보름스(Worms)로 피신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다시 영문 신약성경 3,000부를 출판하여 비밀리에 영국으로 반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 성경들 중 발각된 것은 즉시 불태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성경이 계속 반입되어 나중에는 관리들도 그것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가 됩니다. 그때 인쇄된 것은 모두 18,000부였으며 그중 2부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후 틴데일은 1529년부터 벨기에의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머물면서 1534년 신약성경 개정 번역판을 냈으며, 이어 구약성경 번역에도 착수하여 2년 후 모세오경과 요나서가 출판됩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역대하를 번역했을 때, 그의 친구였으나, 실제로는 스파이였던 헨리 필립스에 의해 배신당해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브뤼셀 근처 빌보드 성에 있던 감옥에 투옥됩니다. 당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탈옥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환경이 열악한 감옥에서도 그의 의연하고 고매한 인격에 감동을 받아 간수들이 그를 존경하여 개신교인이 될 정도였습니다. 투옥된 지 2년이 되던 1536년 10월 6일, 틴데일은 이단으로 몰려 화형을 당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소서" 기도한 후 순교의 제물이 됩니다. 그래서 틴데일을 깊이 연구한 한 학자는 그가 번역한 성경을 '순교의 피가 묻은 성경(The Bible in blood)"이라고 부르며 그는 '영어 성경의 아버지(Father of the English Bible)'라고 불립니다.

   
 
  ▲ 화형당하는 윌리엄 틴데일.  
 
틴데일이 번역한 성경은 원어 성경을 대본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쇄된 영어 성경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틴데일이 헬라어 원전 신약성경을 영역한 것은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가 헬라어 성경을 출판한 지 불과 9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번역하면서 지금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당시 영어에 없던 새로운 단어들(가령 Passover, atonement, scapegoat, Jehovah 등)을 만들어 내었고 구어적이고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영문으로 영어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그의 공헌은 윌리엄 셰익스피어보다 더 크다고까지 말합니다.

그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가 화형대에서 드린 마지막 기도 또한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응답되었습니다. 그를 화형에 처한 헨리8세는 3년 후 틴데일 성경을 기초로 소위 <Great Bible>을 출판하였으며 이후 스튜어트 가문의 초대 왕인 제임스1세는 틴데일이 죽은 지 75년 만인 1611년에 그의 성경을 90%나 사용한 '킹 제임스 성경'(흠정역)을 발행한 것입니다.

그를 기념하여 전 세계적으로 많은 대학과 신학원이 세워졌습니다. 그중 영국 케임브리지에 있는 틴데일 하우스,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틴데일대학교 및 신학대학원 그리고 미국 텍사스에 있는 틴데일신학대학원이 유명하며 유럽에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근교 받후버도르프 (Badhoeverdorp)에 있는 틴데일신학대학원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을 복음의 일군으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가 순교한 벨기에의 빌보드에는 그를 기념하는 교회와 공원 그리고 박물관도 건립되었습니다. 진정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귀한 성경을 우리는 더욱 귀히 여기며 읽고 묵상하며 순종하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최용준 목사 / 벨기에 브뤼셀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