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수레바퀴를 온몸으로 거스르는 사람들

[리뷰]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물겨운 평화 만들기

2010-05-12     김성회

이스라엘에 사는 로비 다멜린 씨는 아들을 잃었다. 군인으로 이스라엘 정착촌을 지키고 있었던 아들은 팔레스타인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직후 로비 씨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누구도 내 아들 데이비드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였다. 로비 씨는 그 이후로 계속 평화 정착을 위한 운동에 애쓰고 있다. 평안한 눈빛이였지만 얼굴 가득 깊이 패인 주름이 그의 신산한 삶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왜 내 아이를 지키지 못했을까 하는 분노에 치를 떨 때가 있다. 그 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분노의 힘으로 복수를 하고 폭력의 악순환이 거듭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고통 받는 다른 부모들이 생기지 않도록 다른 방법을 찾는데 그 에너지를 쓸것인가?”

   
 
  ▲ 로비 씨가 방송에 출연해 "우리 아들의 이름으로 누구도 죽여서는 안된다. 나는 오히려 묻고 싶다. 왜 우리 아들이 점령지에 들어가서 정착민들을 보호했어야 했는지. 그들의 안전이 데이비드의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정착민들을 지키다 내 아들은 희생된 것이다"라며 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Encounter Point>,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은 끝을 모른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은 군사 작전을 이유로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을 퍼붓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은 자살 폭탄 공격으로 저항한다. 폭력의 강도는 물론 다르다. 유엔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2008년 말까지 서로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에서는 4,948명이 죽었고, 이스라엘에서는 1,063명이 죽었다. 이 중 18살 이하 미성년자는 팔레스타인 929명이며 이스라엘 124명이다.

증오와 복수만이 불타오르는 이 땅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Encounter Point>는 평화와 화해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의 중심에는 "The Bereaved Families Forum for Peace & Reconciliation(이하 유가족협의회)"이라는 모임이 있다. 유가족협의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희생당한 양 측의 유가족들이 함께 만나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모임이다.

영화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단순히 서로를 용서하자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의 희생자들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았다. 거대한 국가 권력의 폭력의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화해는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희생자들이 먼저 모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만난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는 현실에서 500여 유가족의 모임이 가지는 목소리는 매우 육중했다.

   
 
  ▲ 이스라엘 도심 한복판에서 평화 행진을 하고 있는 유가족협의회. 피켓을 든 사람이 로비 씨다.  
 
폭력의 현장에서 살아남의 자의 비폭력주의

주인공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알리 아와드 씨의 가족 모두는 1차 인티파타에 참여했다. 어머니는 투옥됐고, 알리는 총상을 입고 투옥되어 4년 형을 살았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형은 마을 어귀에 서 있다가 이스라엘 병사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사선에서 살아 돌아온 알리는 현재 유가족협의회를 통해 양 측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87년 1차 인티파타(민중봉기)는 이스라엘의 식민지와 다름없던 점령지 내에서 혹독한 군사적 통치, 노동력의 수탈, 고율의 세금 등으로 고통 받던 팔레스타인 민중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폭발한 항쟁이었다.)

알리 아와드 씨가 이스라엘의 공격당한 팔레스타인 부상자들에게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놓고 토론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수차례 수술 끝에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유세프 씨는 울분을 토했다.

"이스라엘이 평화에 관심이나 있나? 내 동생은 여기에 휴가 왔다 죽었다. 나보고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 이야기를 하자고? 유대인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평화 따위는 없어."

   
 
  ▲ 알리 아와드 씨가 부상자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다.  
 

또 다른 피해지안 자일 씨는 "유대인도 코란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코란에 나오는 족속들은 형제 아닌가? 평화의 길이 있을 것이다"고 알리 아와드 씨의 편을 든다.

"인도의 비폭력 저항의 예를 보자. 결국 비폭력이 성공했지 않았나? 지난 56년간 유대인들을 죄다 쓸어버릴 궁리만 해왔는데, 결국 우리는 더 후퇴한 상황이 돼버렸다. 단 한 번이라도 전략을 바꿔보자. 내가 하는 것도 저항이다. 다만 저항하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무력 저항을 테러라고 부르지 않나? 우리는 단 한 번도 테러리스트였던 적이 없었다. 이제 세상이 그걸 알게 해야 한다."(알리 아와드)

"진정한 비폭력주의는 폭력의 현장에서 그 폭력에 함께 노출된 사람들만이, 분노와 원한을 넘어 이루는 숭고한 경지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비폭력주의자들이 반드시 폭력에 희생당한 건 그래서다.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비폭력주의자가 아니다"라는 김규항의 말은 알리 아와드 씨를 통해 실증된다.

   
 
  ▲ 형은 살해되고 어머니는 투옥되고 자신은 부상당한 채로 감옥에서 4년을 보내야 했던 알리 아와드 씨. 누구보다도 "눈에는 눈"을 주장하며 복수에 앞장 설 수 있었지만, 그는 평화와 화해를 위해 오늘도 달리고 있다.  
 
평화와 용서는 별개일 수 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내 형을 죽인 이스라엘 병사를 절대 용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더 이상 나라는 개인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이 고통과 슬픔을 어찌할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유가족협의회를 통해 난 새로운 혁명을 경험했다. 이제 난 평화를 믿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팔레스타인 사람, 아니 세상 모든 사람들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제 나는 이것이 우리의 권리를 되찾는 방법임을 확신한다"(알리 아와드)

텔아비브 도심 한 복판에서 벌어진 자살 폭탄 공격으로 딸을 잃은 츠비카 샤하크 씨(이스라엘 참전 용사)는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과 어떻게 한 테이블에 앉을 수가 있느냐는 이스라엘 고등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평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해보자고 학생들을 설득했다.

"우리가 점령, 전쟁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여전히 평화는 오지 않았다. 프랑스, 독일, 영국은 지금 우리가 겪는 것보다 훨씬 더 참혹한 전쟁을 치렀지만 지금은 국경도 없이 평화롭게 지내지 않나. 왜 우리에는 그런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나." (츠비카 샤하크. 이스라엘 참전 용사)

   
 
  ▲ 조지 씨의 딸 크리스틴 양의 장례식 장면.  
 
딸을 잃은 것은 츠비카 씨의 일만은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조지 사데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던 길에 이스라엘 군인으로부터 무차별 총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쫓고 있던 차량과 동일 차종이라는 이유 하나였다. 12살이던 크리스틴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조지 씨는 "내 딸은 다른 열사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의 땅을 위해 희생됐다.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들에게 전한다. 공존을 원한다면 점령을 중단하라"고 울분을 토했다.

츠비카 씨와 조지 씨는 유가족협의회에 관계자들의 권유로 참여했다. 조지 씨는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고 모임에 참가한 이유를 설명했다.

"(모임에 나가서) 많은 일에 감동 받았다. 아이를 잃고 고통에 신음하는 가운데서도 평화 정착과 화해를 믿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처럼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은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 모두도 우리처럼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만 한다"(츠비카 샤하크. 이스라엘 참전 용사)

   
 
  ▲ 조지 씨와 츠비카 씨가 유가족협의회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꼭 답을 얻지 않아도 대화는 계속 되어야 

"나는 당신의 아들에게 살해당한 데이비드의 어머니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몇 날 며칠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냥 모든 걸 모른 채 할까, 아니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에 더 노력해야 할까.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이 모든 재앙을 끝내고 화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어미일 뿐, 성자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이 이 편지를 받고 어떤 기분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나로서는 큰 모험인 셈이지요. 하지만 난 당신이 내가 진심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나는 당신이 이 편지를 당신의 아들에게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만날 수도 있겠지요."(로비의 편지 중)

로비 씨의 아들인 데이비드를 죽였던 팔레스타인 저격수는 검거되어 이스라엘의 감옥에서 징역을 살고 있다. 로비 씨는 가해자의 부모들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데이비드를 죽인 가해자의 가족들은 로비의 편지를 받았다. 영화는 그 뒤의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로비의 편지로 진정한 화해와 용서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그 시작을 본 것이다.

영화를 제작한 Justvision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민간 평화 운동을 소개할 목적으로 구성된 비영리단체이다. http://www.justvision.org/en/encounter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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