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전쟁에 대한 예언

표적에 집중하는 데이비드 오워에게 열광하는 대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자

2010-08-17     김근주

며칠 전, 점심 약속이 있어 집에서 느지막이 나오는 길에 아래층에 사시는 이웃을 만나서 지하철을 타고 잠간 동안 같이 이동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내가 목사인 것을 아시는 그분이 물어볼 게 있다고 하시더니, 예언하시는 한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들어 보았더니 케냐에서 오신 데이비드 오워(David Owuor) 목사의 예언에 관한 내용이었다.
 

   
 
  ▲ 지난달 한국에서 열렸던 '데이비드 오워 초청 성회' 포스터. 오워 목사는 전국 5개 대도시에서 집회를 열어 회개를 촉구했다. 오워 목사는 한국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3개월 내에 전쟁일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우연인지 아닌지 데이비드 오워(David Owuor) 목사의 예언에 관한 내용을 들은 것이 최근 열흘 사이에 벌써 세 번째다. 이 케냐 목사님이 증거하고 전하는 내용의 핵심은 '회개와 임박한 심판'이다. 무엇보다도 주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 번영의 복음, 형통의 복음에 취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보다는 이 땅의 나라에만 골몰하고 있으며, 죄를 책망하거나 거룩함을 요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교회임이 선포된다. 그래서 이와 연관하여 선포되는 또 다른 회개 촉구는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것'이다. 오워 목사는 형통과 번영을 전하는 이들이야말로 거짓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관심은 오직 돈과 이 세상 나라에 있다고 말한다. 오워 목사가 촉구하는 또 다른 회개는 '성적인 죄'이다. 남한의 교회 가운데 성적인 죄가 만연해 있으며 낙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주님의 신부 된 교회의 순결함과 거룩함을 회복할 것을 촉구한다.

데이비드 오워 목사의 선포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은 이분이 전한 예언과 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오워 목사는 아이티나 칠레, 중국에 일어났던 지진에 대해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분이 지난 6월 한국에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한국에 일어날 환상을 보셨고, 그 환상이 이제 곧 일어나게 될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두려움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두 번 이 목사님에 관해 듣고 이와 연관한 메일을 받은 경험도 있을 것이다.

'참과 거짓' 분별의 어려움

어떤 이의 예언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분별은 쉽지 않다. 구약 시대에도 이것이 중요한 쟁점이었고 예언자들 간의 갈등을 여러 본문에서 목격할 수 있다. 대표적인 본문으로 예레미야 28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이며 유다는 바벨론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고 예언하는 예레미야에 대해, 또 다른 선지자인 하나냐는 정반대의 예언을 한다. 2년 내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끊으시되, 지난날에 바벨론이 약탈해 갔던 성전 기구들을 다시 돌려받게 될 것이며 포로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예언을 들을 때에 우리는 누가 참예언자라고 판정할 수 있을까. 한쪽은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고 한쪽은 나라의 회복을 예언할 때, 누가 참예언자인가.

이 상황에 대처하는 두 예언자들의 행동은 대조적이다. 하나냐의 말을 들은 예레미야의 첫 번째 대답은 "아멘"이었다. 이것이 하나냐의 예언에 대한 조롱 섞인 반응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하나냐의 예언대로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포로도 돌아오고 성전 기구들도 돌아오면 좋겠다는 예레미야의 마음이 담긴 응답일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대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 (렘 28:7~8)

이 구절들은 예레미야 스스로가 참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예레미야가 생각하기에 전쟁과 재앙, 전염병이야말로 예언자들이 전하는 내용의 핵심이었으며, 평화를 전할 경우 두고 보아서 성취가 되면 여호와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즉, 재앙 예언자야말로 예언자의 근본이며, 평화 예언자는 성취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견해였다. 이 말을 들은 하나냐의 반응은 무엇인가. 예레미야의 목에 걸린 멍에(이 멍에는 유다가 겪게 될 운명을 상징하는 특별한 소품이라고 할 수 있다.)를 빼앗아 꺾어 버리고서는 여호와께서 2년 안에 이같이 바벨론의 멍에를 꺾어 버리실 것이라고 여호와의 말씀을 다시금 선포한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누가 참예언자처럼 보이는가? 두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예언의 내용을 전하다가 한 장소에서 맞닥뜨렸는데,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를 더욱 크게 선포하고 확언하기보다는 자신이 살펴보고 생각한 결과를 이야기하고 있고, 하나냐는 여호와의 이름을 빌려 다시 한 번 자신이 받은 계시를 선포하고 예언자의 상징 행위까지 덧붙이고 있다. 누가 더 하나님의 사람 같은가? 누가 더 여호와께서 보내신 환상을 보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처럼 보이는가?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예레미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우며 그 주신 말씀을 전하는 하나냐인가.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예레미야야말로 참예언자이며, 하나냐는 여호와께서 주시지 않은 말씀을 임의로 전하는 거짓 예언자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의 대결은 오늘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걸핏하면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내세우며, 하나님께 받은 기도 응답을 내세우는 우리의 모습과 예레미야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고 말하는 예레미야의 말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계시를 내세우는 하나냐가 더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나 논쟁들에서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누가 더 기도를 많이 하는지, 누가 더 '영적'인지, 누가 환상을 보았는지, 누가 하나님께 받은 응답이라고 내세우는 것으로 판정하곤 하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번 선포된 경고

다시 데이비드 오워 목사의 예언으로 돌아가자. 이분이 전하는 메시지의 근본은 임박한 재앙이다. 그리고 이러한 재앙을 초래한 원인은 한국 교회의 죄악이며, 이 죄악의 핵심은 돈과 번영이다. 이제껏 교회들은 타락한 한국 사회를 말하고 교회를 험담하는 비기독교인들의 풍토를 탓하지만, 데이비드 오워 목사는 한국 교회의 타락이야말로 다가올 재앙의 원인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타락에는 성적인 타락도 있지만, 성공의 복음, 번영의 복음이 근본에 놓여 있음을 분명히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종종 환상을 본다 하는 분들이 전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휘황찬란한 보석으로 깔린 천국 구경이었다는 점에서, 예수 믿으면 호화 빌라에 살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초가집에 산다는 식의 지극히 비성경적이되 물신 숭배일 뿐인 내용이었다는 점에서, 결국에는 또 다른 성공과 번영을 말하고 있을 뿐인 기존의 환상 목격담과 오워 목사님의 환상은 확연히 구별된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성공과 번영에 물들어 버린 거짓 복음에 관한 예언자적인 선포들은 한국 교회를 향하여 이미 여러 번 선포되었다는 점이다. 오워 목사가 경험한 것 같은 환상 체험은 수반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메시지를 선포하였으되, 사람들은 그리 귀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메시지의 옳고 그름은 환상의 수반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하나냐는 하나님을 내세우고 예언자의 상징 행위를 내세우되, 예레미야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훨씬 더 깊이 숙고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칠레나 아이티에 임한 재앙을 자신이 전한 회개 촉구를 듣지 않은 결과라고 단언하는 이분의 말씀은 동의하기 쉽지 않다. 동남아시아에 임했던 쓰나미 재앙을 음란의 결과라고 손쉽게 매도해 버린 어느 대형 교회 목사의 황당하고 무례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큰 재앙을 만난 아이티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눈물, 참담함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악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재앙을 만난 이를 향해 회개하라고 손가락질하는 욥의 세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하나님은 그 세 친구보다 욥이 더 의롭다고 분명히 선언하신다.

오워 목사는 결코 하나님도 예수님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임한 재앙을 함부로 하나님의 재앙으로 선언할 아무런 자격도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참으로 이분이 아이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았다면, 커다란 힘을 가진 제국주의적 열강들에 의해 아이티가 어떻게 산산이 찢겨져야 했는지, 이들 나라들의 탐욕이 이 작은 나라를 어떻게 붕괴시켜 왔는지를 발견했을 것이다. 이분의 선언대로 아이티 사람들의 '성적 부도덕'이 재앙의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원인이라면 미국과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 그리고 오늘의 대한민국은 진작 훨씬 더 큰 재앙을 만나야 했었다. '회개'라는 주제가 떠오르면 언제나 단골로 제시되는 것이 음란, 도적질, 거짓말 등등이다. 당연히 이들은 우리가 철저히 회개할 주제이지만,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죄목들만을 반복할 뿐이되, 억압과 착취, 불의에 대한 회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서 일어났던 개혁에 수반되었던 회개와는 큰 차이가 있다. (느헤미야 5장, 9장)

몇 년 전 한국 교회에서 부흥 2007을 제시하며 회개 운동이 일어났지만, 그때의 회개 운동도 별 차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정말 한국 교회가 깊이 회개할 것은 교회에 가득한 성공과 번영, 그리고 그것이 가시적으로 구현된 부동산 투기와 사교육이지 않을까. 그러나 어떤 큰 교회들에서도 이와 같은 문제를 회개하자고 촉구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임한 재앙 예언을 맞추었다고 해서 이 목사님의 예언에 보다 귀를 기울이고 여기저기 전파하는 오늘의 모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말씀 자체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남의 나라에 대한 재앙 예언과 그 성취에 매여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과 복음의 본질보다는 표적과 이적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떠나 불의하고 범죄를 짓는 이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셨고,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드러내셨지만, 유다와 다윗 왕가의 범죄로 인해 다윗 왕가를 훼파하셨고, 솔로몬 성전은 완전히 불태워 버리셨다. 은혜로 얻는 믿음만을 내세우고, 거저 주시는 죄 용서만을 앞세운 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잘됨과 성공을 굳게 붙잡을 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바 공평과 정의의 삶, 주님께서 십자가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을 걷지 않는 교회는 반드시 심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넘어지고 쓰러지며 그 가운데 십분의 일이 남을지라도 그것마저 불타 버릴 것이다.

과연 우리는 회개할 수 있을까. 에스라의 개혁이나 느헤미야의 개혁, 이 모든 개혁의 출발은 회개인데, 과연 우리는 회개할 수 있을까. 세례 요한의 첫 외침도 '회개하라'이고 주님의 첫 말씀도 '회개하라'인데, 과연 우리는 회개할 수 있을까. 대체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알고는 있는 것일까.

김근주 교수/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