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끼리 경쟁하고 증오하는 시대

휘황찬란한 십자가 불빛, 갈가리 찢긴 그리스도의 몸

2010-08-26     최태선

예전에 다니던 교회가 있던 건물에는 교회가 둘이었습니다. 4층에도 5층에도 교회가 세 들어 있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를 갈 때면 교인들이 마주치게 됩니다. 같은 교회 교인들끼리는 반색을 하며 인사를 나누면서도 다른 교회 교인들과 마주치면 얼굴이 굳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그 짧은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습니다.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도 그리 낯선 일만은 아닙니다.

어쩌다 아래층에서 찬양 소리가 크게 들려오거나 기도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교인들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자연스럽게 지어집니다. 때 맞춰 찬양이나 기도를 할 수 있는 시간이면 갑자기 찬양 소리와 기도 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집니다. 모르긴 몰라도 아래층 교회의 찬양과 기도 소리도 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 복도 많으신 분입니다.(?) 그렇게 경쟁적으로 여러 곳에서 찬양과 기도를 받으시니 말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을 향한 우리의 헌신이 진심으로 행해져야 함을 가르치셨다. 이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주되심) 하지만 성경은 동일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태도는 그의 백성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그대로 반영되어있다는 점이다. 머리이신 그분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분의 몸에 관한 우리의 태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머리되심) 따라서 그의 교회에 대해서는 냉담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아더 윌리스, <급진적 그리스도인>)
 
성경은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머리되심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은 항상 성도 개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납니다. (마7:21-22, 눅6:46, 행16:31, 롬10:9, 고전6:17) 그리고 머리되심은 실제로 그리스도와 그의 몸과의 관계성과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엡1:22-23, 4:15, 5:23, 골1:18, 2:19)

주되심이 그리스도와 성도 개인과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다면, 머리되심은 그리스도와 전체 교회와 관련된 표현입니다. 주되심과 머리되심은 어느 하나로 따로 분리될 수 없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개인들의 주되신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하나님 백성 공동체에서도 머리가 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더 윌리스의 마지막 질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진지하고 신실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그의 교회에 대해서는 냉담하면서도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섬기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는 선교의 목적을 양적 성장과 외형적 번영으로 둔갑시킨 교회들이 축복과 형통함의 약속을 내걸고 이 땅의 거리를 휘황찬란한 십자가의 불빛으로 뒤덮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들이 해놓은 일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참담한 비극의 원인은 그들이 혹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까맣게 잊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교회들의 모든 추한 행태들은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망각한 당연한 결과물들입니다. 그들은 상속자인 아들을 죽이고 유업을 가로챘던 농부들의 말로를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마21:33-41)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 (골1:18)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이 인정되고, 이 지상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될 때 그분이 우주 만물의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교회의 간판을 내리고, 높이 걸었던 십자가를 내리고서라도,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임을 명심하면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에 순종하여, 모든 교회가 하나 되는 성령의 역사가 이 땅에 일어나기를 소망해봅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