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신앙

정용섭 목사의 신학단상(13) 예수님은 술을 마셨을까?

2010-11-12     정용섭

예수님은 술을 마셨을까? 마태복음 11장에는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서 당신이 메시아인지 아닌지 대답하라는 질문이 나온다. 예수님은 적절한 대답을 하시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다음에 세례 요한을 추켜세우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세상 사람들이 금욕적으로 살아가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귀신 들렸다고 욕하는 대신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예수에 대해서는 죄인들처럼 먹고 마시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빈정댄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예수님이 천한 사람들과 먹고 마시는 걸 그렇게 비난했을까? 마태와 누가의 이런 보도는 어느 정도로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이런 문제는 성서신학자들이 다루어야 할 대목이니까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복음서 전체가 묘사하고 있는 예수님의 삶이 그렇게 금욕적이거나 자학적이지 않고, 지나칠 정도로 평범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랍비만 하더라도 구별되게 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이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간다는 게 바리새인을 비롯한 당시의 종교인들에게는 불만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수님을 당시로서는 매우 모멸적인 표현인 죄인들의 친구라고 말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예수님이 죄인들과 같이 어울려서 먹고 마신다는 마태와 누가의 보도는 예수님이 실제로 포도주를 마셨다는 의미이다. 이건 내가 아직 단정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삶을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던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일반적인 삶에 참여했을 것이다. 인간은 먹고 마시고 배설해야만 산다. 입으로 먹고, 아래로 배설해야만 산다. 이게 인간에게서 가장 중요한 생존 행위이다. 생존보다 더 거룩한 행위가 없다면 먹고 싸는 행위는 곧 거룩한 행위이다. 사람들은 밥만 먹는 게 아니라 과일도 먹고 고기도 먹는다. 사람은 물만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신다. 그게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교회는 술을 금하고 있을까? 예수님이 마시지 않은 커피는 잘도 마시면서 술은 불신앙적인 것처럼 가르칠까? 물론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프란체스코 같은 신비주의자들이 술을 마셨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술을 마셨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술이 인간의 삶을 규모 없이 만든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술 문화가 왜곡된 상황에서는 술이 꺼림칙한 건 사실이다.

독일에 살던 몇 년 동안 술 취해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물론 공원 구석에 누워있는 알코올 중독자를 보긴 했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삶만 파괴할 뿐이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술의 피해를 내가 몰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신앙의 본질이 흡사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에 달려 있는 것처럼 설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절대적인 생명의 힘에 자기를 완전히 의존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화장이나 몸치장처럼 어떤 삶의 습관을 다르게 하는 것쯤으로 접근하는 게 조금 우스울 뿐이다. 다시 질문하자. 예수님은 포도주를 마셨을까? 단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성서 기자들은 그런 것에 별로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성서에서 여기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금욕적인 세례 요한과는 달리 예수님이 현실적인 인간의 삶을 긍정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예수님 자신이 포도주를 직접 마셨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포도주 마시는 것에 시비를 걸지 않으셨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목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천하보다 귀한 모든 개개인의 삶에 너무 깊숙이 간섭하지 말고 좀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당신이 그 사람들의 영혼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생명의 영이신 성령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월권하지 말고 자신의 구원에 천착하시라. 

정용섭 목사 / 샘터교회 담임·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 대구성서아카데미와 <세상은 마술이다>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