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나 사이의 헌금

함께잘다니는 교회(13) 헌금 리스트와 헌금채

2011-06-26     남상곤

미주의 A 교회에 와서 이전과 다녔던 교회와 색다르게 보았던 몇 가지 중에 하나는 헌금입니다. 우선 주보에 헌금 한 성도 분들의 이름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고 두 번째로는 헌금 시간에 헌금통이 돌아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다녔던 한국이나 미국의 다른 교회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A교회와 같이 주보에 헌금을 한 성도들의 이름을 나열하거나 헌금채를 쓰는 많은 교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제가 이것에 대해 접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이 두 가지의 낯선 광경을 거의 2년 동안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조심스러운 것은 제가 'A교회의 이런 부분을 비판을 해서 바꾸자!' 라는 것이 아닌 '이것이 어떠한 의미와 의도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한번 좀 다르게 생각해 보자' 입니다. 부디 오해가 없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가상의 예화

목사님의 설교가 지루하고 졸릴 때, 설교 시간 동안 유달리 오랫동안 주보의 이곳저곳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교회 주보의 헌금하신 분들의 명단을 보며 이름을 하나하나 보며, 머릿속으로 주보에 나와 있는 이름과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이미지를 하나하나 맞춰보기도 합니다.

A집사님은 이번 주에 주일 헌금, 십일조 헌금, 감사 헌금에 선교 헌금까지 하셨음을 보면서 왠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듭니다. '역시 요즘 사업이 잘되시는가 보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조금 얄밉게 여겨져서 왠지 싫었던 B집사님의 이름을 찾아봅니다. 역시 없습니다. 왠지 뿌듯하며 '그러면 그렇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각 헌금별 헌금 액수를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 헌금이 어느 정도 퍼센트가 되는지도 보고, 머릿속으로 일 년 혹은 한 달 헌금 총액도 재빠르게 계산해 봅니다. 이만하면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교회 재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겠다'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직도 설교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창을 주보를 뒤척이다가 이제 성경을 여기저기 들추어봅니다. 성경 사이에 끼어져 있던 옛날 교회 행사 간지가 있습니다. 그것도 꺼내 여기저기 봅니다. 아! 다행히 설교가 끝났습니다. 마음을 모아 눈을 감고 기도를 합니다. 찬송을 부릅니다.

헌금시간입니다. 헌금 위원들이 나오셔서 기도하시고 헌금채를 돌립니다. 헌금채를 돌리는 것을 보면서 헌금을 빨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갑을 꺼내 보니 아차! 5불짜리와 50불짜리 지폐만 있습니다. 5불짜리만 넣기에는 뭔가 좀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50불짜리 넣기도 좀 그렇습니다. 헌금채는 다가옵니다. 무엇을 넣어야 하는 것인가? 한창 고민하다가 오늘은 50불짜리를 넣습니다. 재빠르게 돈을 넣고 헌금봉투에 이름을 쓰고 침을 발라 붙였습니다. 찬송을 은혜롭게 부르다가 헌금채가 올 시점에 긴장하고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합니다. 왔습니다. 헌금채를 받고 헌금을 하고 옆 분에게 헌금채를 돌리고 비로소 안심하며 찬송에 집중합니다.

좀 아깝고 아쉬운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나중에 세금 면제 혜택을 받는 부분도 있는데다가 하나님께 헌금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며 나의 믿음을 스스로 대견히 여깁니다. 이제 축도 마치면 빨리 가서 식사 줄에 너무 늦지 않게 설 준비해야겠습니다.

주보에 나오는 헌금한 성도 리스트

주보에는 일주일간의 교회 소식이나 예배 안내와 순서 등이 나오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중요한 사적인 문서가 아닌 교회의 공적 문서입니다. 거기에 매주 헌금하신 분들의 명단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올리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 리스트를 올리는 것이 중요할지 정말 진지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게 생각한 것은 '헌금 하신 분들이 헌금을 했는데, 혹시나 교회가 누락할까봐 확인을 시켜준다'였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저도 헌금을 할 때 이름을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는데, 이름 쓸 때는 다음 주의 헌금에 제 이름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없을 때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이름을 고의로 누락시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리과정에서 제 이름이 다다음주에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무슨 실수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재정부에 가서 '지난주 헌금했는데 왜 내 이름이 없냐'라고 따지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꼭 확인 차 올리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본 것은 교육적인 효과입니다. 주보에 헌금하신 분들의 이름을 보면서 신앙 교육적으로 이렇게 헌금을 정기적으로 꼭 해야 한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올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육적 효과라면 왜 교회 주보에는 리스트를 올리는데 홈페이지에는 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헌금하는 것을 장려하고 경쟁 관계를 유발시켜서 많은 헌금을 하게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을 한 실명이 나오기에 내 이름이 안 나오면 상대방이 나를 교회에서 믿음 없는 사람, 혹은 헌금 않는 사람으로 오해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내 이름이 나와야 하는 것을 의무처럼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같이 헌금할 때 이름을 쓰기도 하고 안 쓰기도 하는 사람과, 혹은 아예 늘 무명으로 헌금을 드리시는 분들은 저 리스트로 무슨 피해를 보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밖에도 다른 중요한 이유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부족한 머리로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리스트를 올리는 것인지,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주보에 헌금한 분들 리스트를 안 올려본 주와 올려본 주의 헌금 액수를 비교해보면 좀 의미 있는 차이가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만 해보게 됩니다.

또한 헌금할 때 저는 꼭 제 이름과 아내 이름을 같이 적습니다. 그런데 헌금리스트에는 꼭 제 이름만 올라갑니다. 그래서 한 번은 제 아내 이름을 먼저 적고 제 이름을 나중에 적어보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이름만 나왔습니다. 괜히 아내에게 미안해 졌었습니다. 헌금리스트를 주보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면 아내(혹은 자매)의 이름도 같이 올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혹시 '교회에서 부부도 헌금을 각각 따로 하라' 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헌금의 항목에 대해서도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교회 주보를 보면 주일 헌금과 십일조, 감사 헌금이 큰 카테고리로 나옵니다. 중요 헌금이라고 여겨지기에 그렇겠지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헌금보다 구제 헌금을 주로 합니다. 저는 따로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근거가 없기 때문에도 그렇고 (자세한 것은 아래 더 읽어볼 거리를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제 십분의 일을 교회에 보고하는 것도 좀 거북스럽습니다. 그래서 몇몇 헌금으로 헌금을 나누어 내는데 이름을 쓰기도 하고 익명으로 하기도 합니다.

주로 구제 헌금을 하는데, 구제 헌금을 하고 다음 주 주보를 살펴보면 제 이름은 선교 헌금 항목에 있거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선교 헌금을 한 것이 아닌데 거기 들어간 이름을 보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렇게 중요한(?) 삼대 헌금이 아닌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마이너 헌금이 되는 것도 어떠한 근거와 의도인지 좀 궁금한 생각입니다.

물론 주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큰 액수를 차지하는 의미라면 그러한 규모의 기준보다 차라리 이번 주 헌금하신 분들을 통칭적으로 (감사, 주일, 십일조 헌금의 구분 없이) 그냥 올리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예 헌금 항목별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번 주 헌금하신 분들하고 그 리스트를 헌금 구별 없이 그냥 이름만 주르륵 올리는 거지요. 그러면 감사, 주일, 십일조 헌금 세 번 다 한 분은 이름에 꽃표를 해드려야 하는지 고민도 여전히 생기네요.

헌금함과 헌금채

헌금 시간이 되면 헌금채가 돕니다. 제가 헌금채에 좀 불편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저는 부부가 한 몸이기에 (돈주머니가 하나이기에) 저의 아내와 제가 통상 헌금을 따로 하지 않고 같이 하는데 헌금채에는 한 사람만 헌금 봉투를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로 아내는 '저보고 하라' 라고 하고 자신은 헌금채에 헌금 봉투를 넣는 권리를 저를 줍니다. 하지만 저는 그 권리(?)를 아내에게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 참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채가 제 차례에 왔는데 저는 헌금 봉투가 없기에 그것을 받아 옆에 분에게 전달할 때 헌금 봉투 안 넣고 옆으로 돌리면 뻘쭘(?)합니다. 제가 다른 분들을 유심히 보면 전혀 당황하거나 뻘쭘하지 않으시고 옆으로 잘 돌리시는 내공을 보면서 감탄합니다. 저는 그런 내공이 아직 안되어서 헌금채가 왔는데 헌금 봉투를 못 넣고 돌릴 때마다 얼굴이 화끈화끈 해집니다. 매주 노력합니다. 뻘쭘하지 않고 최대한 나이스하고 아무렇지 않게 해보려고 하는데, 그래도 어색하기는 여전합니다.

두 번째로는 저에게 다가오는 헌금채 때문에 기도나 찬송에 집중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헌금채가 오면 빨리 헌금 봉투를 넣고 (혹은 넣지 않고) 다른 분에게 넘겨야 하기에, 지금 헌금채가 어디까지 와야 집중해서 봐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헌금 시간에 하는 찬송의 가사에 집중해서 찬양하기가 쉽지 않고 헌금채 돌리는 시간을 때운다는 생각이 듭니다. 헌금채가 아직 다 돌지 않으면 목사님은 다시 3절! 혹은 4절!을 외치시면서 후렴을 한 번 더 부르자고 하십니다. 헌금채는 다 돌지 않았는데 찬송이 끝나면 무시무시한 정적감(?)이 찾아올 수 있기에, 한 번 더 그 집중하지 못하고 불렀던 찬송을 한 번 더 불러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동전을 넣거나 봉투 없이 넣을 때에 불편함을 느낍니다. 우선 헌금채가 돌때 봉투가 아닌 그냥 돈이나 동전을 그냥 넣기가 힘듭니다. 왠지 반드시 헌금은 액수에 상관없이 봉투에 넣어서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듭니다. 봉투에 넣어서 하면 더 성의 있고 준비된 느낌이기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봉투에 넣어서 하면 더 준비했다라는 뜻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액수가 숨겨져 있다는 것으로 부담 없이(?) 헌금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폐를 넣을 때는 왠지 옆 사람이 내 헌금 액수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좀 꺼려집니다. 그리고 헌금을 동전으로 하시는 분은 최근에는 거의 못 본 것 같습니다만, 헌금을 동전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형편이 그럴 수도 있고, 액수가 적다고 헌금 못내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동전으로 헌금을 내면 왠지 분위기상 쪽팔리는 것 같고, 헌금채에 넣었는데 혹시나 헌금채 안에 동전이 있을 경우에 내가 넣는 동전과 부딪혀 그 금속성의 '딸랑'이 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 정말 뻘쭘할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거부감과 압박감

제가 이전에 다녔던 교회들은 헌금 리스트가 주보에 올라가지 않았고, 헌금채가 돌지 않았습니다. 헌금 리스트가 안 올라오니 굳이 누가 헌금을 내고, 누가 헌금을 안내고 등의 전혀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 지금 같은 생각을 아예 안 해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헌금채 대신 헌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 전에 헌금함에 헌금을 했었고, 그때는 봉투가 있든 없던, 동전을 넣던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헌금함이 있다고 예배 시간에 헌금순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헌금시간이 되면 헌금위원분들이 교회 헌금함을 열어서 그 헌금을 모아 앞으로 가지고 와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올립니다. 헌금 시간에 찬송을 방해받거나 다시 한 번 4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헌금리스트가 주보에 올라오는 것과 헌금채가 도는 것에 대한 성경적 혹은 역사적 의미나 맥락이 있는지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몇몇 소수의 의견이나 자료가 있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성경적 혹은 역사적 의미를 주는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 개 교회 별로 하고 있는 방식은 다 달랐던 것 같습니다.

혹자는 헌금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 '헌금리스트나 헌금채에 대한 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신경 쓸 필요는 없다'라고 말씀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 같이 믿음이 부족하고 재정이 튼튼하지 않는 사람이나 새신자에게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오는 새신자나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의 경우, 주보에 올라간 헌금하신 분들의 리스트나 헌금 시간에 돌아다니는 헌금채를 보면서 왠지 모를 거부감(?)을 느낍니다. 게다가 헌금을 하기가 힘들 정도의 재정 상태를 맞은 성도들의 경우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리스트와 헌금채로 인하여 받게 되는 압박감은 참으로 큽니다.

글을 마무리하며

헌금은 하나님과 나와의 지극히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헌금(봉헌)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체면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것과 그 액수가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보고 헌금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내 재산이 100만 불인데 1불 헌금했다고 그 사람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재산이 100만 불이지만 부채가 200만 불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사정을 모를 수 있고), 그 사람의 믿음이 1불짜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개인적인 믿음의 문제이지 제 3자가 왈가불가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헌금 액수에 따라서 믿음의 크기가 결정된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에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액수를 보시지 않고 그 헌금하는 사람의 자세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누가 얼마를 헌금하는 것에 동요될 수 있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부족하기에 헌금 리스트를 주보에 올리거나 헌금채를 돌리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요소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노파심에 강조하는 것은, '이것들이 문제가 있으니 바꾸는 것이 좋겠다'가 아니라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를 한편 되짚어 보자의 시도일 뿐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내는 것에 대한 세금 보고 혜택에 대해서는 지면상 더 다루어 보지는 않았지만 한번 즈음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간 기회가 있겠지요.

나가면서

최근 경향신문에서 헌금봉투에 구멍을 뚫은 것을 비판하는 기사와 그에 대한 반발에 대한 사설 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타당하고 일리 있는 생각과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이 교회를 30년 넘게 다닌 사람도 그 구멍 뚫은 헌금 봉투를 보고 처음에 들었던 생각은 거부감과 불쾌감이었습니다. 물론 구멍을 뚫은 이유야 당연히 빠진 헌금이 없는지를 방지하기 위한 것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나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낄 정도라면 재고와 개선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놀랬던 것은 믿음이 부족하시지 않은 분들의 신문 기사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니 큰 신경을 쓴 필요가 없다', '헌금을 드리는 데 눈치를 보는 것이 문제 아니냐', '기본적으로 비뚤어 보는 사람의 시각에서는 모든 것이 비뚤어져 보인다' 등의 반응들을 보면서 왜 지금 이 시대에 교회가 세상을 두렵게 하지 못하고 욕을 먹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면 이마저도 비뚤어진 생각일까요?

더 읽어볼 거리
십일조와 직분 없는 새들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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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와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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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채, 세상보다도 더 세속적인 악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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