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그리스도인과 교회

그리스도인은 한미FTA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2011-12-08     김형국

한미FTA가 국회에서 기습 처리되고 난 이후에 10여 일 동안 <한겨레신문>과 <조선일보>를 꼼꼼히 읽으며 이 두 신문이 보여 주는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이 바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주제에 대해서 경제 전문가도 아닌 목사가 왜 교회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지 염려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설교는 FTA와 관련하여 정치, 경제 평론을 하기 위함도 아니고, FTA에 찬성 또는 반대 입장을 표명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온 국민의 삶과 한 국가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슈에 대하여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예수님은 무어라고 말씀하실까? 이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그리스도인의 고민이며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로서의 고민입니다.

무지에 근거한 확신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세 가지 자세를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FTA에 대하여 무관심했고 무지했습니다. 통상 이슈 중의 하나이며 서로의 이념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정치적 논쟁거리로 많이들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조금씩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 FTA는 그 양으로 보아도 매우 심각하고 방대하며 세밀한 협정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FTA에 대하여 잘 모를 뿐만 아니라 편향적인 시각을 가지고 어느 한 쪽의 논리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무지에 근거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합리적 의심을 해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진실에 적합한 대응 방법을 가지고 살아가기로 결단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원론적 분리

두 번째 피해야 할 자세는 이원론적인 분리입니다. 예배는 이 땅에서 실제적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사와 세상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우러르며 그 뜻을 묻는 시간입니다. FTA와 같은 이슈는 속(俗)된 것이므로, 성(聖)스러운 예배 시간에 다루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원론적인 분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聖)과 속(俗)을 껍데기로 나누지 않으시고 그 속의 본질을 보셨습니다. 때문에 교회에서 다루어도 되는 주제와 그렇지 않은 주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그 삶과 관련된 모든 이슈가 예배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사회적 이슈를 교회에서 다룰 수 없지만 우리 사회, 우리 공동체에 중요하다고 분별되는 주제는 우리가 반드시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교회 가운데서 편가르기

세 번째로, 교회 가운데서 편 가르기를 피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용하는 '좌파', '우파'라는 단어는 순간적으로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듭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 속에서 이 두 단어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는 '진보', '보수'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에 따라 좌파도 될 수 있고, 우파도 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던 모든 장벽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도바울이 오늘의 한국 사회를 본다면,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으며 좌파도 우파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생각,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더 큰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좌', '우'와 같은 이데올로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으신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FTA를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다시 말하면, 이런 사회적 이슈를 우리는 성서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첫 번째, 예수님의 가르침과 세계관의 중심인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우리는 FTA를 하나님나라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하나님나라를 잘 보여 주는 본문인 마가복음 4장 26~29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씨가 뿌려져서 자라나 언제인가 수확을 기다립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으로 인해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대속적인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들어간 사람들이고 하나님은 현재도 그분의 사랑과 공의로 그 백성들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직 그의 다시 오심으로 인한 완성을 기다리고 있기에 현재의 세상은 여전히 불의하고 부조리합니다. 우리는 종국에는 하나님나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 세상의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고, 사랑의 수고를 보상하시고 새로운 사회로 이끌어 들이실 것을 믿고 살아갑니다.

두 번째,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정체성으로 이러한 불완전하고 불의한 세상 속에 살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9절에서 예수께서 "너희가 세상에 속하여 있다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으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아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분의 궁극적 통치를 믿고 살아가는 것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미움을 받을 수도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다스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어떻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으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서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함께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세 번째,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관심과 사명으로 우리는 어떻게 이런 FTA와 같은 문제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먼저 이 땅의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나라 사상에 의하면 이 땅의 어떤 제도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좀 더 선한 제도로 만들어 내기 위해 애써 왔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그 어떤 제도도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절에서 "종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은 자기 주인을 아주 존경할 분으로 여겨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을 동물이 메는 '멍에'라고 말함으로써,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불완전한 사회제도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불완전한 세상이고,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제도도 누군가에게는 멍에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사회구조라면 그것의 한계와 악함을 인정하고 당분간 수용해야겠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면 대가를 지불하면서 하나님의 가치가 세상에 심어지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경제적 풍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관심과 사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GDP/GNP나 교역량이 증가하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교역량이 1948년에 세계 100위였는데 이제는 10위 안에 드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행복한 사회인가요? 아니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더욱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가 되어 있는가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우리는 얼마나 더 잘살게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정의롭게 살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정신적으로, 공동체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를 마땅히 고민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사회적 약자를 향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야고보서에서 만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기를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17)"라는 말씀은 구약시대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씀해 오신 참된 경건의 전통 위에 서 있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2장 21~24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너희는 너희에게 몸 붙여 사는 나그네를 학대하거나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몸 붙여 살던 나그네였다.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 나는 분노를 터뜨려서 너희를 칼로 죽이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될 것이며 너희 자식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연 이 FTA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는 약자에 대한 사랑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주변의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해 우리에게 묻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성경적으로 건강한 '국가관' 으로 FTA와 같은 문제를 다룰 때,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부분은 국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식민 지배와 분단의 역사를 가진 우리에게 국가주의와 애국주의는 그 뼛속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와 같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국제정치 질서에 관심을 가지시고, 이에 따라 불의한 국가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그리고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의를 구부림으로 일부는 더 잘살게 되고, 일부는 더욱 헐벗고 굶주리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리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지만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그것에 맞서기 위해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FTA를 생각할 때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답지 못합니다. 우리의 강대국에 대해서도 정의를 요청하며 우리보다 약한 나라에게도 정의를 시행하는 법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에서는 "도움을 청하러 이집트로 내려가는 자들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들은 군마를 의지하고 많은 병거를 믿고 기마병의 막강한 힘을 믿으면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은 바라보지도 않고 주님께 구하지도 않는다(사 31:1)"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너희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그 바빌로니아 왕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너희를 구원하여 주고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려고 하니 너희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 주의 말이다(렘 42:11)"고 말씀합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 얻게 되는 유익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국제정치적 동맹으로 이 나라가 지켜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심을 믿습니다. FTA와 관련되어 국제 질서에 대해서 논할 수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로 인한 실익보다는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살피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사회적 논의를 이루는 과정에 평화를 만드는 자로서 국회 비준안 비공개 통과의 문제 이전에 우리가 짚어 보아야 할 것은, FTA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정부나 정치가들뿐만 아니라, 언론인, 지식인, 법률가, 종교인까지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사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국민들의 합의를 이끌어 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어가기 원하는 사람들이기에 사회적 합의를 건강하게 이루어 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앞서 인용한 야고보 사도는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약 3:18)"고 말했습니다. 정의는 비난이나 투쟁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피스메이커들이 뿌린 씨앗에 의해 맺히는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겸손히, 그리고 충분히 양쪽의 견해를 듣고 어떤 것이 우리와 다음 세대에 필요한 것인지를 고민하며 평화의 씨앗을 뿌릴 때 정의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FTA와 같은 사안에 쉽게 찬동하고 반대하기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사실을 파악하고 이것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특별한 시간을 내어 함께 충분한 토론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공부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하나님나라의 관점과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게 되면, 어떤 입장이 하나님나라의 입장에서 더 적합한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이후에 만약 FTA에 찬성한다면 부의 재분배와 복지,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반대한다면, 이미 국회가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이행법에 서명한 이 사안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있는지, 없다면 이 FTA 법안의 독소 조항들을 어떻게 무마시키고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어느 입장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넘어서서 우리 모두는 사회적 약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야 합니다. 반대자에 대해서는, 그들을 분노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정부에 대해서는 투표와 정당한 의사 표현 방식을 통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다스림이 우리를 통해 일어나고, 그분의 온전한 통치가 임할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행해야 할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신앙적인 행동이 될 것입니다.

현대판 선한 사마리아인은?

매일같이 강도들이 설치게 하고 약자들을 괴롭히는 사회제도라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우리에게 그 사회제도를 뜯어 고치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늘 강도 만난 이웃의 상처만 싸매어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회제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일은 한 사회의 시민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몫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이슈들이 우리 앞에 지속적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섣부른 찬성이나 반대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과 방법으로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시길 기도합니다.

이 글은 2011년 12월 4일 나들목교회에서 전해진 설교의 요약문입니다.
http://vimeo.com/33323139

김형국 목사 / 나들목교회 대표목사, 신학 박사

* 한국 <뉴스앤조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