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성미자 사건의 교훈

2012-04-14     양승훈

2011년 9월 23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오페라(OPERA) 실험 연구진은 100년 이상 수많은 실험적, 이론적 검증을 받아온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뿌리째 흔드는 발견'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2009년부터 최근까지 3년간 오페라 검출기로 약 16,000개의 중성미자(中性微子, neutrino)를 검출해 속도를 계산한 결과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는 충격적인 실험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의 발표에 의하면 중성미자가 스위스 CERN에서 오페라 검출기가 있는 이탈리아 그랑사소(Gran Sasso) 국립연구소(LNGS)까지 730킬로미터 거리를 2.43밀리초(2.43/1000초)만에 주파하여 빛보다 60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 빨리 도달했습니다. 겨우 60나노초 빠른 게 무슨 큰 의미가 있느냐고 말할지 모르나 중요한 건 빛보다 빨랐다는 점입니다. 이는 특수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한 현대 물리학의 많은 이론들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거나 틀렸을 수 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물리학자 160여명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연구진들의 발표는 물리학계는 물론 매스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게다가 2011년 11월에 발표한 오페라 연구진들의 2차 실험결과도 1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온갖 가능성들을 예측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빛보다 빨리 메시지(정보)를 보낼 수 있다면 과거로 전보를 칠 수 있지는 않을까, 공상과학영화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에서처럼 이제 인간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블랙홀 익스프레스 타고 미래로 갈까, 벌레구멍(worm hole)을 통과해 과거로 여행할까 등등... 심지어 우주의 나이를 6천년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거에는 지금보다 광속이 훨씬 빨랐으나 그 후 점점 느려졌다고 주장하는 일부 창조과학자들은 이 결과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중성미자가 빛보다 빠르다고 발표했지만, 2012년 2월 오류 가능성을 인정했다. (<동아일보> 사이트 갈무리)

 
 

하지만 지난 2012년 2월 말 오페라 연구진은 실험 과정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습니다. 즉 오페라 소속 연구자들 가운데 몇 명이 팀을 이뤄 실험 과정을 전면 재검토했고, 그 결과 그동안 간과해왔던 오류 가능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속도는 거리를 시간으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오류가 일어났다면 거리와 시간 중 어느 한 가지를 잘못 측정한 것입니다. 하지만 거리 측정 오차(20cm 미만)는 기껏해야 도달 시간에 수 나노초 정도 영향을 줄 뿐이어서 제외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중성미자의 여행시간이었습니다.

처음에 오페라 과학자들은 광섬유케이블과 GPS 위성을 사용하여 시간 측정 오차를 2.3나노초 이내로 정밀하게 보정했다고 했지만 지난 2월 오페라 연구자들은 검출기에서 GPS 신호를 전달하는 광섬유케이블과 메인 컴퓨터를 연결하는 플러그가 느슨하게 연결된 게 측정 오류를 일으켰을 수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연결이 느슨하면 GPS 광신호가 전달되는 시간이 수십 나노초 지연될 수 있어 중성미자가 빛보다 60나노초 빨리 도달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검출기에 있는 표준 시계의 진동자가 정상보다 약간 빨리 진동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만(그러면 중성미자의 속도는 진짜 속도보다 느리게 측정) 과학자들은 연결 부위의 문제가 측정 오류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번 중성미자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봅니다.

첫째, 과학자들의 용기 있는 태도입니다. 사실 현대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거의 '성배'(聖杯) 수준의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상대성 이론의 권위가 아니더라도 그 동안 수많은 실험을 통해 광속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 일본 쯔쿠바에 있는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와 2007년 미국 시카고에 있는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Fermilab)에서는 중성미자 속도가 광속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의심하지 못할 정도로 특별한 이론은 없다'(No theory is too special to question)는 자세로 연구에 임했던 CERN 과학자들의 태도는 칭찬할 만하며, 이는 하나님 형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과학자들의 정직한 연구 자세입니다. 이번 중성미자 사건의 실험 오류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이번 실험을 주도했던 당사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3월 16일에 오페라 검출기가 있는 그랑사소(Gran Sasso)에 위치한 이카루스(ICARUS) 검출기를 써서 CERN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의 속도를 측정했고, 이 때 중성미자의 속도가 광속과 차이가 없다는 실험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결과를 즉시 발표했습니다. 자신들의 실험이나 주장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직한 태도가 바른 과학자의 태도이며, 바른 성경적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과학자 공동체의 자기 교정능력입니다. 이번 중성미자 사건은 국제적으로 엄청난 충격이었고, 따라서 여러 과학자들이 재빨리 이 실험의 오류 가능성을 검토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 연구소의 하나인 CERN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지만 과학자들은 정말 그 결과가 사실인지에 대해 용감하게, 진지하게, 정직하게 검토한 것입니다. 자신의 주장이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용기이자 건강한 과학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연구에서 '진리'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가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은 바른 연구자의 자세일 뿐 아니라 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사건에 나타난 과학자들의 바른 연구 자세와 과학자 공동체의 건실한 자기 교정능력을 보면서 지난 한 세대 동안 한국 교계를 휩쓸었던 창조과학 운동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창조과학 운동은 일종의 유사과학 혹은 '반(反) 과학'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과학 운동에서는 어디에도 진리에 대한 용기나 솔직함, 학문적 진지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창조과학자 공동체에는 자기 교정 능력도 없습니다. 창조과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젊은 우주/지구론(지구와 우주가 6천 년 전에 창조되었다는)이나 지구 역사에 대한 단일격변모델(노아홍수로 대부분의 화석과 지층이 형성되었다는)은 솔직히 천동설보다도 못하다는 것이 이미 오래 전에 잘 밝혀져 있지만, 그리고 상당수의 리더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감히” 의심하는 태도를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요.

오래지 않아 창조과학 운동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반지성적이며,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나아가 성경을 조롱거리로 만든 운동이라고 평가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젊은 우주/지구론과 단일격변모델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창조과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얘기를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라고 주장하고 다닙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은 창조과학의 주장들에 대해 더 이상 논의조차 하지 않습니다. 논의할 일고의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정적으로 떠들어도 정상적인 천문학자가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미 잘 증명된 사실들을 전문성 부족과 잘못된 신학 때문에 틀렸다고 떠드는 것은 (그것도 해당 학회가 아닌 대중들을 상대로) 바른 과학자의 태도가 아님은 물론 바른 그리스도인의 태도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젊은 우주/지구론이나 단일격변모델을 주장하며 다니는 사람들 중에 지구나 우주의 나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지사학을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전문적인 연구에 근거하지 않고 편향된 신학에 근거한 딜레탕트 과학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나갔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비전문가들의 문헌에 근거한 창조과학 운동은 더 이상 과학계는 물론 기독교계 내에서도 확산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번 CERN의 중성미자 사건이 우리 교회가 성경적인 과학관, 나아가 건강한 과학관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양승훈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