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단체 KPM 의료 팀장, 친자 확인 소송 휘말려

친딸 주장 女 "1973년, 7살 딸과 아내 두고 새 아내와 한국 떠나"

2014-02-06     전현진

   
 
 

▲ 전문인 선교 단체 KPM의 의료 선교 팀장인 명광하 교수가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뉴저지 법원 검색 갈무리)

 
 
한국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와 뉴욕·뉴저지 한인 교회 6곳이 참여한 전문인 선교 단체 KPM(Kingdom Pioneer Missions)의 의료 선교 팀장인 방사선과 전문의 명광하 교수가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명 교수의 친딸이라고 주장하는 명모 씨는 1973년 당시 7살이었던 자신과 어머니 오모 씨를 한국에 두고 새 아내와 한국을 떠났다며 명 교수를 상대로 뉴저지 법원(Superior Court of New Jersy, Bergen County)에 친자 확인과 정신적 피해 배상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1월 31일 제기했다.

명모 씨는 소장을 통해 자신이 1966년 8월 3일 서울에서 의사였던 명 교수와 오모 씨 사이의 혼외 자녀로 태어났으며, 출생 후 1972년께까지 명 교수와 가족 관계를 이어왔다고 주장했다. 7살이던 1973년 3월 집에 돌아온 명모 씨는 자신의 어머니인 오모 씨가 자살을 시도한 사실을 알게 됐고, 그 이유는 명 교수가 새 아내와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명모 씨는 또, 명 교수가 갑작스레 떠난 뒤 어머니가 정신적 고통을 앓아왔으며, 7살 무렵부터 재정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1994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를 보살피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다고 주장했다.

명모 씨는 이후 명 교수와 연락할 방법을 모르고 지내오다 최근에 와서야 그의 주소지 등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척을 통해 2011년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 연결이 되었고 당시 명 교수가 한국 방문과 만남 의사를 밝혔다고도 했다.

   
 
 

▲ 소장에 포함된 명모 씨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보호자 및 가족관계 사항에 '명광하'라는 이름이 나온다. (미주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하지만 종양이 발견된 자신에게 명 교수는 자세한 진찰을 제안했고 이후 암으로 진단 받자 이후 명 교수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명모 씨는 주장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명 교수와 대화를 하지 못했다며 두 번이나 자신이 버림받은 것에 대해 극심한 정식적 고통을 겪게 됐다고 덧붙였다.

명모 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몇 증거도 함께 제출했다. 이 증거 자료에는 명 교수의 당시 사진 등과 함께 명모 씨의 초등학교 생활기록부가 첨부되어 있다. 이 기록부에는 보호자 인적 사항에 명 교수의 이름과 주소지, '관계 - 학생의 부(父), 직업 - 의사'와 함께 가족 관계 등이 적혀있다.

<미주뉴스앤조이>는 명 교수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이 닿지 않았다.

전현진 기자 / jin23@www.newsnjoy.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