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봉하마을'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LA 한인들 자발적 분향소 마련…추모 물결 번져
"내 가슴 속에 묻은 영원한 나의 대통령. 당신으로 인해 내 조국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언젠가 고국을 방문하게 되면 봉하마을에 가서, '사랑합니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보고 싶었습니다'를 외치며 당신의 정감어린 유머와 따뜻한 사랑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는데…." (LA 오렌지카운티 분향소에 이미현 씨가 쓴 추모글 중에서)
LA 지역에서도 분향소가 속속 마련되면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한인들의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LA 다운타운 지역에는 LA 노사모를 비롯한 10여 개의 한인 사회단체가 연합해 한인노동자연대 사무실에 분향소를 마련했고, 오렌지카운티 지역에는 '가주생활협동조합'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가주생협 사무실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분향소에 도착한 조문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보자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노 전 대통령이 기타를 치며 '상록수'를 부르는 영상 앞에선 흐느껴 우는 조문객도 있었다. 한 조문객은 눈물을 닦으며, "왜 그렇게 가셔야했냐"고 영정에 대고 물었다.
노 전 대통령에게 비우호적인 보수 신문이 한인 사회의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어, 미국 한인들이 한국의 정치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망하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진면목을 확인하는 데 물리적 거리감은 장애물이 되지 않는 듯했다. 딸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이윤미 씨(주부)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건 아니지만 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대통령이었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조문을 한 황은성 목사(바이올라신학교)는 "노 전 대통령은 평생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셨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가족, 우리 교회의 안위만을 염려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게 됐다고 말했다. 황 목사의 아내인 황남희 씨는 "한국에 가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을)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안타깝다"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한국 언론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분향소 방명록에는 "조중동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세요"라는 글귀도 보였다. 이미현 씨(주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었지만,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실망을 많이 했다. 그런데 퇴임한 뒤 올라오는 영상물이나 자료를 보면서 내가 그동안 언론에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퇴임 후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됐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떠났다"며 안타까워했다.
추모객들 중에 자녀를 동반한 경우가 많았다. 부모님을 따라온 한인 2세 자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 부모와 함께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먼 모국의 대통령의 황망한 사망 소식에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 건너온 김한엽 씨(회사원)는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사람들은 버젓이 살아서 대접받고 있고, 서민들 편에서 기득권가 맞섰던 사람은 죽어야 했던 한국 사회가 한심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그런 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더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