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광야로 유혹했다

존 뮤어 트레일 5박 6일 산행기(2)

2014-09-09     김기대

몇 해 전 기도가 몹시 간절하던 때 LA 주변의 기도원을 찾다가 LA에서 북쪽으로 150마일쯤 되는  곳에 성 Andrew 가톡릭 침묵 수도원이 있는 것을 알았다. 괴성이 난무할 것만 같은 개신교 기도원은 물색 대상에서 제외했던 터, LA에서 멀지 않고 침묵 수도원이라는 사실이 내 맘에 들었다. 사막 지역 한 복판에 세워진 수도원을 어렵게 찾아 들어가는 순간 바위에 새긴 성경구절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Therefore I am now going to allure her; I will lead her into the desert and speak tenderly to her."(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 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호세아 2:14).

학교의 교훈처럼 바위에 새겨진 채 나를 맞이하던 구절이 뒤통수를 치는 듯 했다. 당시 한글 성경을 직접 찾아보지 않았으므로 번역은 말끔하게 되지 않았으나 allure라는 단어에 속된 말로 ‘꽂혔다’. 나를 광야로 보낸 것은 고행이 아니라 유혹이었구나!  내 딴에는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빈들을 찾아 왔지만 그곳은 나에게 도피일 수도 있는 유혹의 공간이다. 아니 빈들에서 내가 각성한다면 공동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니 그곳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꾀어낸 공간이다. 함부로 이웃을, 고행을, 정의를 이야기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은 외피일 뿐 결과적으로 나를 위한 개념이다. 산행을 하면서 그 때의 기억이 났다. ‘지금 여기’(현존 Da –Sein)는 몸은 힘들지만 고행의 장소라기 보다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 살살 꾀어낸 장소고 시간이었다.

   
▲ 작은 돌섬이 많이 떠있다고 해서 Thousand Island Lake이라고 불려지는 곳 © 사진 김미향

제 3일 -사람 발 걸음이 대단하구나

도보 시간 11시간, 거리 15마일 (24킬로미터),  최고 고도  11,056피트(3,370미터)

지난 이틀, 오후가 되면 일행에서 10분 정도 뒤쳐졌지만 다행히 좁은 텐트에서 자고 일어나도 회복은 빨랐다. 인솔자가  이번 산행 중 가장 어려운 코스가 오늘이라고 설명했다. 15마일 정도를 걸어야 하고 11,056피트의 고지대인 Donohue 패스를 넘어야 한다. 아름답게 이어지던 호수길을 뒤로 하고 돌산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항상 그랬듯이 오전에는 할만하다. 그러나 태양이 뜨거월 질 때면 몸이 지쳐온다. 3,370미터, 걸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간 코스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열 걸음만 걸으면 숨이 막혀 오고 하늘이 노래 진다. 고산병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겠으나 숨이 가쁘고, 약간의 두통이 찾아 온다. 누구라도 그 정도 걸으면 찾아오는 현상이겠지만 가슴이 답답해져 오자 요즘 높아진 혈압에, 몇 해 전 혈관에 시술한 스텐트의 기억이 자꾸 불길하게 머리를 스친다. 정말 더 이상은 못 걷겠다. 여기서 주저앉아 헬기 구조를 요청하고 집안 경제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려는 생각이 다시는 이짓 안한다는 생각과 함께 찾아온다.

   
▲ 이 정도 호수는 이름외기도 귀찮다. © 사진 김기대

지나고 나서 안 일이지만 존 뮤어 트레일 퍼밋에는 부상당할 경우 헬기를 부를 수 있는 보험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만약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때 알았더라면’ 살짝 넘어져서 구조를 요청했을지도 모른다. 류시화는 이런 제목의 책을 엮어서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모든 것의 앎에는 때가 있는 법, 지금 알고있는 것을 그 때 몰랐어도 인생에 손해는 아니라는 것을 터득했나고나 할까?

앞에 보이는 저 돌산을 내가 넘어야 한다니 차라리 안 보고 걷는 것이 낫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말 수는 없다’는 이은상의 시는 적어도 나에게는 틀렸다. 차라리 지금 걸음에 충실하며 걷지 목표점을 지향하고는 못 걷겠다. 도노후 패스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니 저 먼 길을 내가 걸어 왔다고 믿겨지지 않는다. 최고점을 넘어 한 시간여 내려와 인솔자가 인정한 최고의 경치를 가진 지역에서 점심을 먹는다. 밥없이 먹는 햄과 참치에 그새 익숙해 졌다.

그리고 또 6마일을 걸어 겨우 물이 있는 텐트칠만한 곳을 찾아 다시 잠을 청한다. 여기부터는 맴모스 구역이 아니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관리하는 구역이다. 맴모스에서 입산시 받은 안내서에는 이 지역에 대한 캠프파이어 규정이 없다. 어제까지는 하지 말라는 규정이 있었으나 오늘은 하란 말도, 하지 말라는 말도 없다. 마침 오래지 않은 불피운 흔적이 있다. 처음으로 불을 피우고 오손 도손 이야기를 나눈다.

   
▲ 작은 한 걸음의 힘을 보여준 지나온 길 © 사진 김미향

제 4일 -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도보 시간  8시간,  거리  8마일(13 킬로미터),  최고 고도 9,700피트(2,950미터)

어제의 고생을 덜 듯 오늘은 쉬운 코스다. 중간에 트레일을 한번에 모두 걷는 사람들이 음식을 공급받을 수 있는 우체국도 있고, 점심을 사먹을 수도 있단다. 지난 며칠 동안 넓은 산 속에서 휴지 한 장 버려진 것을 못봤으니 관리자나 등산객이나 모두 칭찬받을 만하다. 점심 때  도착한Tuolumme Meadows에서 그동안 지고 다니던 쓰레기를 버리고, 음식이 줄어 필요없게 된 곰통 하나와 빨래를 포함한  몇몇 짐을 집에 우송했다. 2일 밖에 남지 않았지만 2일만이라도 가볍게 지내고 싶다.시원한 음료수로 목을 축이고, 화장실에서 밀린(?) 용변을 해결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4시간 정도 예상하고 크리스탈 호수라는 곳을 향한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지칠 무렵 오늘 야영을 계획한 호수가 멀리 보이는 지점에 생태계 복원지역으로 지정되어 몇해 동안 야영이 금지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낭패다. 마침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하던 한국서 온 두 청년에게 오다가 물이 있는 곳을 보았냐고 물었다. 청년들은 적어도 앞으로 3시간 정도는 물이 없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순간 찾아오는 두려움, 머리에 랜턴을 켜고 밤새 걸어야 하나? 물통의 물이 떨어져 한방울씩 목만 축인다.  그들과 헤어져 30분 정도를 걸으니 연못 만한 작은 호수가 나온다. 묵묵히 길을 걷다가 작은 호수를 못 봤을 수도 있는 청년들만 지친 우리들로부터 욕을 먹는다. 귀는 안가려웠는지, 이 자리를 빌어 사과.

이곳에서도 자는 일 말고 할 일이 없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데 허허벌판인 곳에서 누가 우리를 찾는다. 혹시 이 곳도 복원지역이니 철수하라는 레인저의 음성인가 놀랐으나 뒤늦게 잠자리를 찾던 나홀로 등산객이었다. 그 역시 물이 급해서 물을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 왔다. 한국 청년들처럼 그에게도 호수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낮에 홀로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과는 여럿 마주쳤지만 밤에 그런 사람을 만나니 그의 용기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이 긴 길을 홀로 걷고 넓은 산 속에 홀로 텐트를 치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해도 도와주거나 레인저에게 연락해줄 사람도 없다. 텐트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들으면서 어릴 때 등산로 입구에서 보았던 한국 분단상황에서 가장 추악했던 반공 간판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 해프돔 근처에서 바라본 요세미티 계곡 © 사진 김미향

제 5일 -제 아무리 절경이라도

도보시간 11시간,  거리  14마일 (22.5 킬로미터),  최고 고도 9,320 피트(2,840미터)

이제 몸이 좀 익숙해졌다. 아침에 먹는 오트밀도, 저녁에 먹는 누룽지도 이렇게 체력을 지켜주는데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먹고 살았다.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며 해프 돔(half dome)의 입구에 도착한다. 돔을 반을 깍아 질러 놓은 형태의 해프돔에서 내려 보는 요세미티 계곡은 일품이란다.

본래 이곳은 요세미티에 온 데이 하이커(day hiker)들이 별도의 퍼밋을 받아 오르는 관광명소이지만 존 뮤어 트레일 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곳은 아니다. 오후 쯤 지친 상태에서 왕복 4마일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지만 절경이라니 도전해 본다.  입구 아무 곳에나 무거운 배낭을 내려 놓고 걷기 시작한다. 존 뮤어 트레일 산행객 보다는 많은 숫자의 요세미티 관광객들이 이곳을 지나지만 누가 상거지들의 배낭을 탐내겠는가?

배낭이 없다고 너무 쉽게 봤다. 해프 돔 밑에까지 갔을 때 이미 체력이 바닥났다. 마지막은 쇠줄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곳인데 그 직전까지  계곡을 내려다 보며 구비구비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지친 상태에서 자꾸 발이 헛 디뎌진다. 자칫하면 주님을 빨리 뵐 수도 있겠구나!  주님을 뵙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나 일행이 내가 당한 사고 때문에 겪을 번거로움을 생각하니(?) 이쯤에서 포기해야 될 것같다. 어차피 이곳은 존 뮤어 트레일의 일부도 아니지 않은가?  쇠줄 밑에 거의 다 와서 포기한다. 정말이다. 무서워서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일행을 생각해서다.

마지막 밤이다. 최종 기착지인 Little Yosemite Valley 캠핑장에 도착했다. 차로 올 수 있는 요세미티 입구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캠핑장이지만 사람들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걸어 와서 캠핑을 즐긴다. 이 장면 역시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는 캠핑장만 가보았던 예전의 나라면 낯설게 보았겠지만 5일을 걸은 ‘산악인’에게는 그들의 수고를 가볍게 보는 여유가 생겼다.

   
▲ 인솔자가 인정한 이번 산행 최고의 경치. 빙하가 흘러 내린 물로 요세미티 계곡의 수원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 사진 김미향

마지막 날-  끝나고 만난 사람들

도보 시간  4시간,  거리 5마일(8킬로미터),  최고 고도 6,148피트(1,873미터)

거리는 짧지만 마음이 급하지 않아 걸음이 느려진다. 점심 나절에 요세미티 입구인 해피 아일(happy isle)에 도착했다.  다치지 말아야지 했는데 어제 쯤 삐끗한 발목이 부어 올라 절뚝거리면서도 유료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나니 몸이 개운해 또 오르고 싶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한국 사람이냐며 여행 안내를 부탁해 온다. 한국에서 고교 동창 사이인 60대 중반의 남성 3명이 60일동안 차를 빌려 미국 전역을 여행중이란다. 마침 우리의 인솔자는 미국 전역을 다녀본 경험자, 그가 많은 설명을 해주었으나 이미 그들은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차로만 다니려다가 요세미티에 와서 걸으려니 잠시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 정보를 구해온 것  뿐이었다. 나이 보다 젊어 보이고 나름 유명 상표의 등산복을 입은 그들은 ‘팔자’좋은 사람들일게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것도 20여분 즐거운 환담을 나누고 나서는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다.

하지만 궁금했다. 과연 그들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아픔에 얼마나 공감하며 살아갈까?  물론 우리도 ‘팔자’좋게 5박 6일을 걸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고민하는 흉내는 내며 살아가는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은 맞불 집회의 대명사로 알려진 ‘개스통 할배’들로 옮겨 갔다. 시위 현장에서 박근혜 만세를 외치고 상대방을 빨갱이로 매도하며 때로는 개스통을 들고 나와 위협하는 영감님들은 지금 만난 이 사람들만큼 가진 것도 없고 누리지도 못하고 소외되고 버려진 사람들이다. 그 소리 말고는 자기의 존재 의미를 발견할 길이 없기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그 짓을 하는 사람들이다. 아! 상대적으로 더 가진 우리가 그들을 너무 조롱해 왔구나!

문명 세계에 돌아온 우리들의 관심은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 소식, 세월호 특별법의 소식, 캐나다에서 시합을 벌였던 북한 청소년 여자 축구단의 성적으로 모아졌다. 다행히 단식은 끝났고, 세월호 법은 답보 상태고, 북한 축구단은 결승에 진출 못했단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의 비슷한 고민을 넘어 이제는 산의 호연지기를 받아 좀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LA로 돌아 온다. 해피 아일에서 버스를 타고 주차해 놓은 맴모스로 돌아와서 운전을 해 LA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반, 5박 6일의 계획이 5박 7일로 끝났다.

호연지기를 다짐한 며칠 뒤 세월호 특별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단식하는 광화문 광장에서 음식을 먹는 폭식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 온다. 그 짓을 하는 젊은 사람들도 분명 소외되고 버려진  친구들일게다.  그 인생이 불쌍은 해 보이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다.  넓은 마음은 사라졌다. 그래, 겨우 5박 6일이 인생을 변화시키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지.(뜨레스 디아스라고 하던가?  3박 4일에 인생 변했다는 사람들은 더 웃기는 부류들이다). 호연지기는 무슨? 그냥 당파적으로 살아 오던 대로 사는 거다.  나를 광야로 유혹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