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괜찮아, 끝이 보이니까

비상식적 결정을 향한 섭리적(?) 전망

2015-10-14     김기대

한국사회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시끄럽다. 박근혜 대통령은 논란의 당사자이면서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으로 역사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어서는 안된다는 국정화 추진 배경을 밝혔다. 국정 교과서 논쟁은 한겨레 신문의 사설(한국시간 10월 14일판) 처럼 역사 문제도 이념 문제도 아니고 상식문제일까? 살펴보면 이건 상식의 범주에도 못미치는 분열을 통한 자기 세력의 강화 전략(Divide and Rule)일 뿐이다. 한국사회는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으로 지지자들의 응집이 필요한 시기다. 현 정권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자기 세력을 응집시키는 전략으로 역사에 손을 댄 것이다. 조선시대 사초에도 왕의 입김이 배제되었다는데 ‘선거의 여왕’은 역사에 손을 댐으로써 지지자 단속에 나섰다.

이런 전략이 주효했는지 조선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56.2%가 국정화를 찬성했고 일반인의 52.4%도 국정화를 찬성했다. 지식인 사회의 반발 기류에 비한다면 의외의 결과다. 이런 지표의 원인을 몇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이후 언론을 동워한 종북몰이 전략이 통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검정교과서는 모두 종북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에는 지금의 교과서들이 새누리당 정권하에서 검증을 받은 것이라는 최소한의 사실은 자리 잡지 못한다.  종북교과서라는 주장이 맞다면 배후는 보수정권인데 난데 없이 교과서 검증권도 없는 야당에 화살을 던진다. 종북 이데올로기는 이처럼 시민들의 최소한의 상식선마저 파괴해 버린다.

두번째로 학무모들의 이기주의다. 여론전에 넘어간 학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기를 원치 않는다. 그저 아무 교과서로든지 달달 잘 외워서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데 취업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창의적인 생각도 비판적인 생각도 우리 아이에게는 필요없다는 말이다.

일반인들 역시 국정화 지지 여론 역시 높다.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괜한 ‘국론분열’은 귀찮다는 의미일것이다. 7,80년대 시민운동의 든든한 후원군이었던 넥타이 부대의 기개는 이제 없어져 버렸다.

이제 역사에 손을 댄 집권 세력들은 그들의 권세가 영원하게 되었다고 쾌재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세가 지속되는 동안 국민들은 창의력과 비판력을 상실하고, 종북몰이로 인한 남북 대치 국면으로 한반도는 늘 주변국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역사를 돌아 보면 한국 사회 민주화를 이끌었던 이른바 386세력들은 국정교과서로 공부한 세대들이다. 그들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이 배워 왔던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가를 깨닫고 분노하며 학생운동 시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분신하고 투신하면서까지 그들이 배웠던 것을 정반대로 실천했다.

요즘들어 젊은이들이 취업에만 급급해 패기를 잃고 사회 구조적 모순을 외면한다는 ‘꼰대’들의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들이야 말로 ‘종북교과서’ ‘좌경교과서’로 공부한 세대가 아닌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말한 듯이 지금 교과서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들은 역사에서 정의와 선이 승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실제로 기자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이 말은 어느 정도 객관적이다. 유신 찬양으로 일관하던 고교 시절을 보낸 나는 이른바 ‘밥상 머리’ 교육으로 반골 기질의 부모들로부터 박정희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를 배우면서 자랐다. 교실에서는 이런 류의 주장이 통하지도 않는다는 것도 일찌감치 파악했으니 부정적인 ‘냉소’를 너무 일찍 배웠던 셈이다. 이건 대학에 가서도 바뀌지 않았다.  ‘국정 교과서’를 믿어 왔던 학우들이 늦바람이 들어 유신반대와 이어진 전두환 타도를 외칠 때 나는 부끄럽게도 그 핵심에 들어가지 못했다. 군사정권의 문제점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행사하는 폭압의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검인정 교과서를 통해 한국사를 바라본 세대들은 한국사에서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가를 알게 되고 5.16구테타와 같은 불의가 득세하는 과정을 보아 왔다. 교과서는 그것을 구테타라고 말했지만 현실에서 그들은 항상 승자였다. 불의한 승자와 역사 평가 사이의 괴리가 어쩌면 지금 세대들이 현실을 외면하게 된 이유인지도 모른다.

요즘 반어법적 글쓰기로 유명한 단국대 서민 교수 스타일의 글쓰기를 흉내내자면 박근혜 정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미완에 그쳐버린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완성하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따위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은 대학에 가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취업이나 스펙보다는 현실을 다시 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정교과서는 의인을 양산하고 현정권이 승인한 검인정 ‘좌경 교과서’는 비겁한 세대들을 양산한 역설적인 결론도 가능하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우리는 역사를 독점하려는 세력의 비참한 최후를 역사 속에서 또 보게 될까 두렵다. 그것이 싫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모든 면에서 역사를 되풀이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기독교인 입장에서 말하면 섭리, 이성의 입장에서 말하면 정의가 개입해서 모든 것을 바로 잡아 놀 터인데 그 결말을 보면 유한한 정치 세력의 자기 궤멸밖에 예측될 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일말의 자의적 섭리론(?)의 논리를 동원시켜 보면 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썩 나쁠 것 같지도 않다는 궤변에 도달한다. 이 일의 끝에 어떤 비극이 자리잡고 있을지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이것은 궤변이다. 다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할 시간이 너무 길다. 그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세계는 발전하고 한반도는 정체할 것이다.  "나만 퇴보 하지 않으면 돼!”라는 마음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역사 장악 시도는 너무 무모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나 혼자 만의 경우에 집중한다면 그들의 결말이 어떠할지가 보이기 때문에 담담하게(아니면 희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나’들의 생각이 모두 다른데 그들이 감당해야 할 손실이 너무 크다. 그래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당장 철회해야 한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