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을 감히 비판하지 말라?

2016-08-28     강만원

아마 "비판하지 말라"는 문장처럼 의미가 전적으로 왜곡된 상태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구절도 없을 것 같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라는 비판의 의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류이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 구절이 다만 해석의 오류에 머물지 않고 적용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비판하지 말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교인들 사이에서 발생한 잘잘못에 대해 시비를 가리려 하지 말라는 의미로, 또는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극히 드문 반면. “감히 주의 종인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 또는“설령 잘못이 있을지라도 주의 몸 되신 교회를 비판하지 말라”는 자의적인 의미로 악용되기 때문이다.

주의 종인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줄곧 병행하는 말이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종’을 비판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권위에 맞서는 가증스런 배역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기 때문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감히 주의 종인 목사를 비판하지 못할 만하다.

물론 주의 종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종’이라는 비천한 신분으로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겸손한 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특별한’ 종들에게 기름부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목사들에게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과연 주의 종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인가? 다시 말해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로 안수 받은 종교의식을 기름부음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가당치 않은 말이다. 기름부음 받은 자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름부음 받은 자란 구약시대에는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이른바 메시아들이며, 신약시대는 그리스도로서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다.

목사가 메시아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감히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자처할 수 없다는 말이다. 목사라는 직분의 성경적인 근거나 정당성에 대한 시비에서 일단 떠나서 목사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로 정의한다고 해도, 교회의 일꾼인 목사의 불의와 일탈을 비판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신약시대에도 ‘기름부음’이 있었다. 따라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말이 무턱대고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름부음’은 구약 시대의 도유와 달리 신약시대의 성령 임재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여기서 지명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는 ‘너희’로서, 목사가 아니라 ‘성도’이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2:20)

예수를 믿고 예수와 연합한 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자, 이를테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주의 종이다. 이처럼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목사가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가 다름 아닌 ‘기름부음 받은 주의 종’이다. 따라서 목사가, 또는 목사만이 주의 종이라는 주장은 거짓이며, “주의 종을 감히 비판하지 말라”면서 사실인즉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는 협박은 결국 성경에 없는 허언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이미 말했지만, 예수의 공생애는 유대 사역자들의 불의와 외식, 교만과 탐욕에 맞선 비판의 연속이었다. 왕인 헤롯과 대제사장을 향해 독사의 자식, 사악한 ‘여우’라고 비판하셨는가 하면, 바리새인들에게는 ‘화있을진저!’라며 무서운 저주의 심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신성의 상징인 유대 성전을 향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무너뜨려지리라”며 유대 신앙의 외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율법주의의 멸망을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응당 거짓 신앙의 부정과 불의, 교만과 외식을 가차 없이 비판하신 예수의 본을 오롯이 따라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한국교회 목사가 정녕 유대 제사장, 왕, 성전보다 종교적·영적으로 우월한 자라서 교인들에게 감히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인가.

목사를 비판하면 반드시 재앙이 있다며 교인들에게 공갈을 서슴지 않던 ‘치유하는 교회’ 김의식 목사의 참람한 ‘저주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던 어떤 장로의 부인은 죽었고, 어떤 장로의 아들은 부도가 나서 외국으로 도피했는데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며, 어떤 장로의 며느리는 사산을 했고, 어떤 장로의 아들은 인쇄소의 종이뭉치에 맞아 몸이 마비되었다는 등,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를 입에 담았다.

같은 레퍼토리로 해외에서 저주 설교를 계속 반복하면서, 김의식 목사는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던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가 끝나고 마침내 은혜(?)가 임하면서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가 두 배로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그 교회 장로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주를 받아 죽은 사람도 없었고, 온 몸이 마비가 된 사람도 없었으며, 태아를 사산한 사람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은 김의식 목사의 설교 테이프가 일부 교인들에게 공개되면서 그 목사가 교인들에게 사과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잘못을 저지르고서 뻔뻔스럽게 목사를 비판하지 말라며 설교(?)할 것이 아니라, 잘못을 인정하고 죄에서 즉각 돌이키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불의한 목사를 비판해서 저주를 받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보면서도 입을 다물고 끝내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교회와 목사들이 이토록 참담하게 타락하고, 그로인해 그리스도의 성령이 떠나시면서 한국교회가 처참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요즘 분당한신교회의 소요와 갈등을 보면서 새삼 “주의 종을 감히 비판하지 말라”는 거짓 율법 속에 가려진 ‘목사 성직주의’의 참담한 폐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콥 연루’로 일부 장로를 비롯한 여러 교인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이윤재 목사가 자신의 불의를 비판했던 교인들에게 ‘보복’하기 위해 신천지를 들먹이며 제거의 음모를 꾸민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목사의존신앙에 사로잡힌 '목사교인'이 아니라 진정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를 해치는 불의에 맞서 가차 없이 비판하라. 비판하되 당당히 비판하고, 한 순간도 불의에 타협하지 말고 거세게 비판하라. 타락한 목사들의 부정과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배역하는 것이며, 교회와 목사의 타락을 부추기는 가증스런 죄악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