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종류의 목사

[오늘의 단상] 대기업과 대형교회, 그리고 새에덴교회

2018-02-23     최태선

저와 함께 저희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이 한 분 있습니다. 그분은 신학생 때 분당 중앙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신학생들에게 분당 중앙교회는 선망의 교회였습니다. 당시 교육전도사에게 한 달에 80만 원(거의 두 배)을 주고 등록금을 전액 대주는 교회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 교회의 전도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그 교회의 모든 교역자들은 토요일마다 축호전도를 하였습니다. 당시 분당지역의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들이 많았는데 그런 아파트들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전도사였던 목사님은 축호전도를 마치고 교회버스로 돌아오면서 그곳 상가의 작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교회들이 입주해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들을 보며 자기 교회와 같이 큰 교회가 교회 이름이 새겨진 대형버스를 타고 가 축호전도를 하는 것이 양심에 찔렸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고민을 하다 사임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전도를 열심히 해서 그 교회는 한 때 분당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그 교회를 벤치마킹했던 목사가 있습니다. 새 에덴 교회 목사인 소강석 목사님입니다. 그분은 그렇게 최종천 목사님을 형님으로 모셨지만 소목사님이 추앙하던 목사는 형님 목사가 아니라 조용기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분은 늘 자신이 조 목사님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말하면서 그분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조목사님이 그랬듯이 우리나라 최고의 목사가 초청받는 조찬기도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새에덴교회 부목사가 '님의 침묵'이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소강석 목사를 칭송했다는 논란이 되었다(사진: C채널방송 영상 갈무리)

얼마 전 일입니다. 새 에덴 교회의 부목사가 담임목사인 소강석 목사를 칭송하는 설교를 했다는 뉴스가 한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용비어천가 설교라는 이름으로 그 설교 동영상이 돌아다녔고, 그것을 본 사람들의 댓글은 신랄했습니다. 그 지경을 목격한 소강석 목사님의 발언이 또한 보도되었습니다. 그 기사의 일부입니다.

"이 시대 대다수 사람이 대기업이면 무조건 미워한다. 그런데 대기업이 망해 봐라. 이 나라 경제지표는 어떻게 될 것이며 중소기업도 다 망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대기업 미워하듯이 큰 교회와 목사를 주시하는 분들이 많구나. 그럴수록 잘해야지. 우리 교회뿐 아니라 모든 교회가 리빙스턴 교회가 되도록 더 기도하고 섬겨야 되겠다"고 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그분의 가치관이 잘 들어나 있습니다. 그분의 가치관은 세상의 방식 그대로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려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한 그분의 사고는 이미 오래 전에도 드러난 바 있습니다.

새 에덴교회가 한창 개발이 되던 동탄 지역에 기도처소를 마련했을 때 그 지역의 교회들이 그에 대해 항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소목사님은 우리(기독교)의 적은 이슬람이지 같은 교회가 아니라면서 우군끼리 정당한 경쟁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의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분은 교회들이 세상의 방식으로 경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분의 사고 안에는 이렇게 경쟁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 나라 방식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 반대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세상의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목적은 세상 한 가운데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대로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이렇게 다르게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드려야 하고 그런 삶이 바로 빛과 소금인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이런 말을 듣고 제가 행위를 강조하거나 성과 속을 구분하고 있다는 말씀을 제발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 분당교회를 스스로 사임했던 목사님은 지금 일본 오키나와의 한 작은 교회를 섬기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천 목사님과 소강석 목사님은 큰 교회의 큰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보듯이 이렇게 분명하게 다른 길을 가는 두 종류의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 목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께서 자신은 어떤 목사를 바라보며 절망하고 있는지, 또 그러는 자신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돌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