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봉 성탄 불빛은 꺼져야 한다

민통선 평화교회, 이적 목사의 절규

2010-12-23     이적

나는 애기봉 바로 밑에 위치한 민통선 마을에서 15년 넘게 목회를 해온 사람이다. 내가 민통선 마을에 처음 들어온 1997년 10월, 마을은 대남·대북 방송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마을은 늘 긴장 속에 파묻혀 있었다. 새벽녘에 귀를 찢을 듯한 대형 확성기 소리에 잠을 깬 적도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서로의 비방전에 마을 주민들의 심신은 녹슬고 지쳐 있었다.

하지만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리면서 군사분계선에 설치된 모든 선전 수단이 제거되기 시작했다. 서로를 비방하던 방송도 일시에 멈춰 마을 주민들은 오랜만에 가슴 떨리는 평화를 맛보고 있었다. 그 악몽 같은 세월을 보낸 뒤 지난 7년 가까이 누린 민통선의 평화는 참으로 꿀맛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식인가? 민통선 애기봉에 성탄 트리 점등식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북에서는 모의포를 애기봉 방향으로 집중배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또 올해 5월24일에는 북한 인민군 전선중부지구사령관이 ‘남조선에 보내는 공개경고장’을 통해 “(남한이) 심리전 수단을 새로 설치하면 그것을 없애버리기 위한 직접조준 격파 사격이 개시될 것”이라고 위협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간이 철렁했다. 그리고 평화의 단맛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싶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애기봉 점등식을 여의도에 있는 어떤 교회가 주최한다고 했다.

이 무슨 궤변인가.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심으려 오셨던 분이다. 하필이면 긴장 지역인 애기봉에 트리를 설치하여 분쟁을 야기한다면 예수님이 좋아라 하고 박수를 칠 것인가? 이런 행동이 과연 교회적이고 예수적인 행위인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막아야 한다’는 생존의 절박감이 가슴을 휩쓸고 지나간다. 점등식이 있던 21일 오후, ‘남북 긴장 조장하는 점등행사 반대’ 구호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애기봉 입구에서 피를 토하듯 반대 절규를 외쳤지만 관제방송, 언론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점등식만 화려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21일 밤부터 북의 폭탄을 유도라도 하는 듯 성탄트리의 불빛이 화려하게 민통선 마을과 북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등식을 마친 여의도 ㅅ교회의 교인들과 점등식에 참석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점등식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남쪽으로 사라져갔다. 이곳에 포탄이 터지든 말든 우린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점등 트리로 말미암아 포탄이 날아올 경우 점등을 한 여의도 ㅅ교회 교인들은 살아남겠지만 그들 때문에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기쁜 성탄지절, 애기봉 트리 하나 때문에 우리 교회 교인들과 민통선 주민들은 지금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는 지금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합의한 모든 선전 수단 제거라는 약속을 먼저 깨뜨리고 민통선 지역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는 국방부와 우리 군의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또 북에서 애기봉 점등식은 전쟁 발화점이라고 공언하는 시점에 점등식에 참석한 김문수 도지사나 애기봉 점등식을 허가한 국방부와 이를 실천한 ㅅ교회는 전쟁 예방이 목적인지 전쟁 촉발이 목적인지 이들의 행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 오후 이 지역에 근무하는 직업군인 가족들이 남쪽 지역으로 피난 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애기봉 트리는 절대 평화의 트리가 될 수 없다. 저 불빛이 우리 교회의 머리 위에 계속 켜져 있는 동안 우리는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큰 교회가 민통선의 작은 교회에 성탄 선물을 주지는 못할망정 공포의 트리를 선물로 주고 간 이 기막힌 사실을 예수님이 아신다면 뭐라고 얘기하실까?

* 한국 <한계레> 신문에 실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