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 시대, 그리스도인의 책무

[칼럼] 양승훈 교수, '카더라 통신'을 바로보는 우리의 자세

2012-12-11     양승훈

쇼퍼스 드럭 마트(Shoppers Drug Mart)는 캐나다 전역에서 1,241개 이상의 매장을 갖고 있는 캐나다 최대의 약국 체인입니다. 그렇다고 쇼퍼스는 약품만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각종 편의용품, 화장품, 우체국도 겸하고 있고, 게다가 매장이 집 가까이 어디나 있기 때문에 캐나다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늘 들락거리는 곳입니다. 물론 저의 집 가까이에도 몇 개의 쇼퍼스 매장이 있고, 저희들도 그곳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초에 쇼퍼스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쇼퍼스 매장에서 늘 듣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갑자기 사라진 것입니다. 보도를 보니 몇몇 사람들이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왜 쇼퍼스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이렇게 일찍부터 틀어놓느냐'고 항의를 했다나요. 사실 쇼퍼스 매장에서 할로윈 다음 날인 11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캐럴을 내보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큰 소리로 틀어놓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면 들리는 정도의 희미한 배경 음악입니다. 그런 음악에 대해 몇몇 사람들이 클레임을 한 것입니다.

결국 대중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 하는 쇼퍼스로서는 아무리 소수의 사람들이 항의를 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불매운동이라도 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을 막론하고 요즘처럼 늘 비가 오는 우중충한 밴쿠버에는 크리스마스 캐럴로 위로를 삼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쇼퍼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몇몇 사람이 항의한 직후인 11월 2일 자정부터 모든 쇼퍼스 매장에서 크리스마스 캐럴 방송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언제 다시 쇼퍼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사건은 정보화 시대를 맞아 소수의 횡포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횡포는 캐나다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에서도 이런 횡포를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0년 1월, 제가 관여하고 있는 '창조론 오픈포럼'에서는 서울 노원구에서 설립한 서울영어과학교육센터에서 논문발표회를 개최하기로 하고 사용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 센터에는 인류의 기원이나 우주나 지구의 역사에 대한 각종 전시물이나 시청각 자료, 천체 관측 장비 등이 있기 때문에 포럼 참가자들이 둘러볼 거리도 많아서 그곳으로 포럼 장소를 정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센터는 구민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기 때문에 구민들의 이용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센터 휴관일로 포럼 일자를 신청했습니다. 그 동안 오픈포럼은 늘 월요일에 모였지만 그 때만은 금요일로 날짜를 잡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포럼 개최 불과 2-3일을 앞두고 노원구청으로부터 장소를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무슨 영문인지 알아보았더니 다산 콜센터를 통해 항의 전화가 왔다나요…. 그렇다고 여러 사람이 전화를 한 것도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이 '공공의 시설에서 왜 종교적인 모임을 하느냐'고 항의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전화 한 통화로 인해 구청에서는 주최 측에 아무런 문의도 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학술회의 장소 허가를 취소한 것입니다. 이미 몇 달 전부터 각종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광고를 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변경할 수도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옆에 있는 예식장을 대여해서 포럼을 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이 '개명천지'에 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일 년에 두 차례 모이는 오픈포럼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열편 내외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행사입니다. 그리고 투고된 논문들 중에서 괜찮은 논문들을 선별하여 학술지에 싣는, 지극히 정상적인 학술활동을 하는 모임입니다. 지금까지 국립대학, 사립대학, 구청 시설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열 차례 이상 포럼을 개최했지만 종교 행사라고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인다는 사실만 가지고 종교적인 행사라고 단정하여 장소 사용을 갑자기 취소한 것은 노원구청이 처음이었습니다. 포럼 참가자들은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요, 동일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인데…. 구청공무원들의 복지부동에 더하여 민주화가 120%에 이른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늘 다수의 횡포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수는 약자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고, 소수를 위해 일한다는 자체가 곧 정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잠언 기자가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잠21:13)"고 한 것도 약자에 대한 배려를 촉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하는 다수결의 원칙조차 때로는 다수의 횡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선진 사회에서는 다수결에서 배제되는 소수를 위한 각종 보호 장치와 의사소통 채널을 열어두고 있는 것입니다.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개진하는 데는 각종 통신수단과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다수의 횡포에 눈물을 흘리며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전 시대 소수들에게는 손쉽게 널리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전화나 인터넷은 새로운 원군이요, 구원의 희망인 듯이 보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제가 이렇게 소수의 횡포를 고발할 수 있다는 것조차 현대 정보기술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제는 큰돈이나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억울함을 온 세상에 손쉽게 알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소수의 의견도 무시되지 않고, 소수의 인권도 존중받는 사회.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미6:8) 사회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전화나 인터넷 등 통신기술의 발달에도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통신수단의 발달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유익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에 못지않은 해악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수의 횡포로 다수가 고통당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괴롭힘 등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거의 없는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더 심각합니다. 정치판에서는 지도자들부터 "아니면 말고…" 식의 무차별 비방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비방에 대한 처벌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소수의 횡포가 점점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근래 웹사이트에 소수의 사람들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악의적인 비방을 지속적으로 올리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그런 사이버 공격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 사법부에서는 정작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합니다. 사법부의 관대함을 알기 때문에 그런 범죄에 대해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예 법적 조치를 취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법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언론이 보도하는 경우는 실제 사건의 1%도 되지 않을 겁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치국가라는 나라에서 도리 없이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법부의 관대함에 격려를 받아서 '카더라' 통신을 주도하는 소수의 인터넷 '폭도들'은 국경도 없이 사이버공간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들은 발각되거나 체포되어 처벌 받을 위험도 없이 때마다 이름을 바꾸어가면서 정의의 사도인 양 다수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습니다. 소수의 횡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시대에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암5:24)" 흐르도록 하는 것. 어쩌면 이것은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또 하나의 청지기적 책무일 것입니다.

양승훈 / 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VIEW)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