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답답하다

전병욱보다 교단이 더 나쁘다

2014-10-13     신성남

성도들은 답답합니다.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 사건과 관련하여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특히 그러합니다. 도덕적으로 가장 엄격하고 순결해야 할 교회가 동네 반상회만도 못한 비상식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 대형 교회의 스타목사가 장기간에 걸친 성추행을 자행했어도 그것이 교회 주변에서 고의적으로 축소되거나 은폐되어 왔다는 점이 충격입니다. 즉 전병욱 사건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부 교역자나 지인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를 감지하고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등 소위 직분자라는 분들의 신앙적 소양과 무능함을 총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봅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 교회 측의 처신은 더욱 아리송합니다. 전 목사의 범죄적 행위를 볼 때 당연히 즉시 파직시키고 교인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알려야 옳건만, 실제는 그 반대였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없었고 일부에서는 그저 가벼운 약간의 실수 정도를 가지고 소란을 피우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교인들 간에도 섣부른 의견의 대립과 충돌이 초래된 것입니다. 아마 거룩한 교회의 당회장실에서 목사와 신도 사이에 '구강 성행위'까지 있었다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진실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어느 피해자의 증언 일부를 추가로 인용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어떤 여자가 음부 사진을 찍어서 내 메일로 보냈다, 나체 사진을 찍어 보내는 여자애가 있다, 어떤 애는 예배 시간에 속옷 안 입고 제일 앞자리에 치마 입고 앉아서 다리 벌리고 있다'는 등 성적인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너무너무 많아서 다 쓸 수도 없습니다. 화려한 외모를 가진 친구랑 갔을 때는 그 친구에게 '넌 너무 싸 보여. 남자랑 자 봤지?' 하면서 절대로 아니라고 해도 확신하며 성희롱을 일삼았습니다. 결혼 못한 노처녀 언니에게는 남자 꼬시려면 가슴이 확 파인 야한 옷을 입고 다니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숨바꼭질 49쪽, <대장간> 발행)."

아무튼 초기 처리 과정에서 사건의 실상을 명확하게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교회 측이 처음부터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밣히지 않고 도리어 가능한 적당히 숨기거나 가볍게 무마하려는 의도를 보였다는 것은 큰 유감입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을 외부 세력이나 이단으로 몰고가는 시선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눈가림은 결국 피해자들을 더욱 울리고 사태를 악화시키며 그 해결에 큰 혼선을 주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초부터 이런 두루뭉술한 대처가 나중에 적극적으로 진실을 가리려는 이른바 '숨바꼭질'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교회가 전 목사에게 전별금 형식으로 무려 10억여 원이나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의 피땀어린 헌금을 전체 교인들의 공감적 동의 없이 범죄한 목사에게 함부로 흥청망청 퍼준 것이지요. 어떤 성도들은 이런 무책임한 처리에 대해 '법도 질서도 그리고 상식'도 없는 요즘 일부 교회들의 구멍가게식 운영 난맥상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라고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거액의 전별금에 큰 용기를 얻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공식적인 회개의 모습마저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전 목사는 오히려 기존 교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새로운 교회를 당당하게 개척하여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여튼 그를 꾸준히 추종하시는 그 교회의 교인들이 대단한 분들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전병욱 사건에서 정작 결정적으로 성도들의 분통을 터트리는 주범은 해당 교단 안에 있습니다. 2012년부터 노회에 올린 전 목사 면직 청원서는 벌써 다섯 번이나 무시되었다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명백한 목회 비리에 대하여 노회가 그 징계를 계속 미루거나 기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노회 소속 목사님들의 평소 행동으로 볼 때, 아마 자기 교회의 장로가 여신도에게 성추행을 했다면 미처 소문이 나기도 전에 잽싸게 치리하고 파직 처벌을 했을 것입니다.

한국교회 상당수 교단들이 혈연, 지연, 그리고 학연으로 패거리화하여 '종교 마피아'로 변질되고 있다는 탄식이 나온지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만, 국민적 관심과 주시를 받고 있는 한 목회자의 비리에 대해 상식을 조롱하며 막상 이런 어처구니 없는 무대뽀로 대처하는 행위를 보니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범죄한 목사보다 그런 범죄를 그대로 방치하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소속 교단의 목회자들이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지금 일개 목사의 범죄에 대해 사적으로 정죄하고 창피를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교회 정의'와 '사회 정의'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전 목사가 자행한 정도의 성추행이면 즉시 파면되거나 감옥에 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여기에는 권력을 지닌 정치인이나 재력을 지닌 경제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데 하물며 가장 도덕적으로 고상하고 순수해야 할 성직을 맡은 개신교의 목사가 파렴치한 행동을 했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국교회는 더 이상 "너는 죄가 없냐" 또는 "죄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는 식의 유치한 자위 발언만 늘어놓고 '회개 없는 용서'만 남발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반성의 모습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만날 교인들에게만 말씀의 칼날을 예리하게 들이댈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 지도자들 스스로가 개혁과 갱신의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오늘도 답답합니다. 거룩한 공교회에서 하나님의 계명이 멸시를 받고 상식이 무시당해도 대부분의 교단은 그저 조용하기 때문입니다. 이젠 단일 전문직종 중에서 성직자의 성범죄가 가장 많다는 발표까지 나왔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성추행을 하고, 횡령을 하고, 세습을 하고, 표절을 하고, 또한 성직 매매를 해도 어떤 교단들은 마냥 고요합니다. 아울러 기복에 취한 많은 신도들은 맹신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잠만 자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사역은 간 데 없고 목회적 사욕이 난무합니다. 배부른 목사는 돈과 권력에 취해 우쭐하고, 배고픈 목사는 가난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장식일뿐이고 십일조가 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14:27)."

신성남 집사 /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