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두 나라의 깨어 있는 양심이 나서자

2016-10-19     지유석

매주 수요일이면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시위)가 열린다. 10월의 셋째주인 19일에도 수요시위는 여느 때처럼 열렸다. 

바로 이날 백발의 노신사가 이곳을 찾았다. 그 주인공은 일본 요코하마에 사는 일본인 엔도 토오루(遠藤 徹)씨. 79세의 엔도 씨는 야마구치 대학에서 30년간 철학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성심여대 철학과 문화연구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또 일본 성공회 요코하마 교구에서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엔도 씨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소녀상이 없어지기 전에 이곳에 와서 사죄의 뜻을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요시위에 참석한 엔도 씨는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엔도 씨는 시위에 참여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과거 일본과 지금의 나를 분리하지 않고 일본이 지난날 저지른 죄를 내 죄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 역시 약한 인간일 뿐이다. 80~90년 전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본은 자신들이 자행한 침략의 역사, 피지배국 여성들을 성노예로 착취한 역사를 부정한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지난 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배상을 생략한 채 손을 맞잡았다. 한국은 한국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역사 바로세우기에 실패한 셈이다. 

그나마 일본엔 양심적인 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엔도 토오루 씨도 이런 분들 중 한 명이다. 사죄의 뜻을 전해 받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국민들은 죄가 없다. 잘못은 아베가 했다”고 달랬다. 그럼에도 엔도 씨는 “자신도 책임 있다”며 거듭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한일 양국 정부가 실패한 역사 바로세우기에 두 나라의 뜻 있는 지성과 깨어 있는 시민들이 뜻 모아 나서야 할 일이다. 정부가 실패했다면, 국민이 나서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던가?

[2016.10.19.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