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언니 끝났어, 내려와”

2016-10-27     지유석

그야말로 국기 문란이다. 처음엔 대통령 권위를 등에 업고 제 잇속을 차리는 수준으로 여겼다. 그러나 <JTBC 뉴스룸>이 취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대통령 연설문에 손을 대는가 하면,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 그리고 세심한 접근이 필요한 북한 관련 정보까지 최순실에게 흘러들어 갔다. 아무런 공적 위치에 있지 않은, 그저 비선에 존재하는 인물의 수중에 국정 주요 현안이 넘어간 건 그 자체로 대한민국 헌법과 국민을 모독한 행위다. 

26일, 시민들이 들고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청와대 들머리인 청운동 기자회견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참여연대, 금속노조 등이 차례로 국기 문란 규탄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오후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63개 시민·사회단체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그중 한 시민이 재치 있는 퍼포먼스를 했다. 이 시민은 얼굴에 최순실 가면을 쓰고, ‘언니 끝났어, 내려와’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로 주위를 즐겁게 했다. 대통령 이하 청와대 참모진, 각료들이 70년대식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반면, 시민들의 상상력은 이렇게 첨단을 달린다. 빈약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 창조경제를 내세운 것 또한 코미디다. 

정체도 분명치 않은 최순실에게 국정을 맡기고, 하다못해 SNS에 올릴 사진과 외국순방 나갈 때 입을 옷까지 지도받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이 되먹지 못한 지도자를 끌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