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시민과 호흡 위해" 시민들은 "전쟁이다, 전쟁"

[현장] 입국부터 귀가까지 혼란의 연속, '민생 속으로' 아닌 '지지자 속으로'

2017-01-13     이은진

"총장님, 이런 혼란 예상 못하셨나요?"

"... (대답 없이 미소 지으며 악수)"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귀국길은 '혼선'에서 시작해 '아비규환'으로 끝났다. 12일 오후 고국 땅을 밟은 반 전 사무총장과 부인 유순택씨는 지지자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금의환향했지만,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반 총장이 귀국하면서 줄곧 강조했던 '민생 우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문제는 '보여주기 식' 행보였다. 전날(11일)까지만 해도 시민 불편을 우려해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자택까지 승용차로 이동하기로 계획했지만, 귀국 당일 반 총장 본인의 주장으로 서울역행 직통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입국 5시간 전 급히 이동 경로를 변경한 결과는 '혼선'이었다. 동선 계산이나 질서 유지 등 사전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일정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시민과 대화, 호흡하기 위해서" 열차 탔지만 "갈 수가 없네"

'바른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큰 걸음 하셨습니다', '민족 통일을 위해 이 한몸 불사르세요' 

입국장에는 그를 맞이하는 '충주고 동문회', '충청사랑향우회', '화이팅 반기문 국민연대 운동본부' 등 지지자들의 펼침막이 게이트를 둘러쌌다. 반기문 청년 팬클럽인 '반달' 회원 10여 명을 제외하면 50, 60대 중·노년층이 다수였다. 이들의 손에는 태극기나 무궁화 등이 그려진 깃발이 들려 있었다. 반 총장이 이동을 시작하자, 공항 내 경찰, 외부 경호 인력 등 경호·의전 그룹과 함께 취재진, 지지자 수백 명이 그를 뒤따랐다.  

동선마다 수백 명이 반 총장의 뒤꽁무니를 '우르르' 쫓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반 총장이 직통열차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때도, 열차 티켓 발권을 하러가는 중에도, "목이 말라서" 공항 내 편의점을 들른 와중에도 지지자 인파가 그를 에워쌌다. 인파 사이에선 "반기문!"을 연호하는 목소리와 함께 "환영합니다" 인사도 함께 터져 나왔다. 반 총장이 원했던 '시민과의 접촉'이라기보다는 '지지자와의 만남'에 가까웠다. 

"위안부 협의 인정하더니 왜 왔냐."
"뜬금없이 나타나서 대안인 척 하지마라."

지지자 뿐 아니라, 반 총장의 대선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일부 청년들은 직통열차에 오르는 반 총장을 향해 손팻말을 들고 "이게 지하철 타는 겁니까",  "위안부 발언 사과하십시오, 이렇게는 대통령 못 되십니다" 등을 외쳤다. 손팻말에는 과거 반 총장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지지했던 장면을 묘사한 캐리커처 등이 그려져 있었다. 

반 총장이 계획했던 '열차 안' 시민과의 대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일반 공항철도가 아닌 직통열차의 특성상 좌석 배열도 동반 2인석으로 분리돼 있을 뿐 아니라, 지지자와 일부 취재진이 함께 탑승해 시민과의 대화는 한마디도 제대로 나눌 수 없었다. 반 총장 또한 "다른 승객들도 만나봐야 하는데 이거 참 갈 수가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왜 철도를 이용했느냐"는 질문에 반 총장은 "서울 시민으로 돌아와서 시민과 대화하고 호흡을 같이하려면 아무래도 대중이 많이 활용하는 전철을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 이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선 의식한 행보" vs. "환영하는 것이 당연"

아비규환은 서울역에서도 이어졌다. 직통열차에서 내린 반 총장이 지하 3층에서 1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할 때마다 '병목현상'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경호원들과 지지자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모님을 마중하기 위해 서울역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전쟁이 따로 없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야 XX, 집에 좀 가자!"
"이게 뭔 민생이야. 사람이 넘어져도 그냥 지나가고."

서울역 대합실에서는 미리 반 총장을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들이 도착시간에 맞춰 '당신을 믿습니다', '바른 세상 만들어주세요' 등의 펼침막을 난간과 계단 곳곳에 걸고 연호를 시작했다. 한 지지자는 색소폰으로 <서울의 찬가> 등을 연주하기도 했다. 문제는 대합실로 올라오는 반 총장의 선(先) 환영 인파와 서울역에서 대기하던 후(後) 인파가 한데 뒤섞이면서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의전 그룹과 몸싸움을 벌이던 한 시민이 넘어지기도 했다. 

주변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일부 시민들이 신기한 듯 반 총장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거나 손을 흔들기도 했지만, 불편을 느낀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은 '시선을 의식한 행보'라고 평하기도 했다. 서울역을 찾은 최철호(51)씨는 "반기문이 유명인사니 보고 있는데, 쇼하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구성희(27)씨는 "현 시점에서 이렇게 나오는 건 너무 대선을 의식한 것 같다"면서 "지금 풀리지 않은 문제들도 많은데, 본인 안위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수진(19)씨는 "별로 보기 싫다. (사람들이 연호하는 것을 들으면) 오히려 반감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대로 반 총장을 반긴 시민들은 '세계에서 큰일을 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대체로 50대 이상이었다. 김부길(51)씨는 "반기문은 세계를 위해 일했으니 세계의 기운이다"라면서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큰일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소영(54)씨도 "이렇게 환영하는 게 당연하다, 반기문 총장을 흠집내고 폄하하는 국민들은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역에서 차를 타고 사당동 자택으로 향한 반 총장은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등의 환영을 받으며 오후 8시 30분께 귀가했다. 공항에 오후 5시 30분께 도착했으니, 약 3시간에 걸친 귀갓길이었다. 반 총장은 오는 13일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자신의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을 찾아 모친을 찾아뵐 예정이다. 귀국길에 이어 귀향길에서도 '반기문 식 민생 행보'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본지 제휴 < 오마이뉴스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