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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자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보지못한다
icon 안성자
icon 2009-05-19 00:07:58  |  icon 조회: 6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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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보이는 육만을 좇는 병폐로 인하여 실패 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은 수없이 많다. 그동안 인류는 보이는 하나님의 힘만을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찾고 의지해왔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절대적인 믿음은 당연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만으로도 하나님과 똑같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위를 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하나님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부분까지 닮아지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성경에도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전도할 적에도 교회만 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교회에 가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성령님의 운행하심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다. 누구나 일단 교회에 가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생각해보면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데 그것처럼 대단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듣기만 했던 놀라운 역사가 바로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일 것이며 그러하신 하나님이 자신에게 완전한 것을 주셨다고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믿는 것은 잘한 것이다. 지난날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불치병이 치유가 되는 현상 앞에서 어떻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감히 하나님과 연관이 된 것이기에 그것이 전부인지 영원한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의심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눈으로 보고 확인이 되는데 무엇을 더 의심할필요가 있었겠는가?



한때는 그러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간증이 넘쳐났으며 그러한 현상들을 체험하기 위하여 부흥회다 집회다 얼마나 쫓아다녔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예전의 기적의 하나님을 기다리며 기도의 시간을 늘리고 매달려 보지만 더 이상 하나님의 획기적인 기적은 안보이고 대신 자꾸만 지구 곳곳에 침몰되어가는 현상만 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요사이 왜 그러한 기적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일까 사람들은 의문을 제기 할 것이다. 생명의 원리로 보면 좋은 일들은 세월이 가면서 더욱 증폭 되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의 정체가 무엇일까? 기적이 참이 아니었다는 것일까? 기적의 하나님께서 어디로 가신 것일까?



지금도 여전히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 다만 사람들의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이다. 자신들의 상태인 만큼만 볼 수 있으므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 동안 사람들은 늘상 해 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볼 수 있는 기적만을 바라고 여기까지 왔다. 보이는 현상 속에서만 하나님의 기적이 있다고 따라갔던 그들의 눈에는 요즘은 정반대의 현상들만 나타나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기적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의심을 해 보아야 했을 것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그들이 병치유나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면 그들은 다시는 나쁜 일들이 안 일어나야 할 것이며 인간이 바라는 목적인 영원히 사는 일이 있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기적은 하나님의 손길에 의한 것은 분명한데 그들에게서 온전함을 볼 수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빠지는 것을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능력인 것은 맞지만 그들의 육을 고쳐주신 것 일뿐 내면까지 고쳐지는 영원한 치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했다.



그렇게 기적을 행하셨던 모든 것들 병 치유, 죽었던 사람들이 다시 사는 것, 부자가 되는 것 등은 기적같이 일시적으로 생겨진 것들이며 모두 보이는 현상들이다. 그처럼 일시적인 것들은 모두 육의 차원이라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다지 시간과 수고를 오래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역사로 기적같이 해결 되었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적들은 참일지라도 영원한 것들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그러한 것들만을 옳다고 주장 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그렇게 일어났던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패턴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하나님을 처음 믿는 사람들이나 오지가 아니고는 그러한 일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할 것이다. 반면 지금 하나님께서는 과거와는 다른 보이지 않는 기적을 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극히 낮은 차원이며 육의 차원인 것을 모르기에 그동안은 물론 지금 행하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모를 수밖에 없다. 한사코 보기에 좋지 않는 것들은 멀리하거나 외면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현상들의 의미를 모를 뿐더러 하나님은 물론이요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닮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닮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 닮기를 원했다. 그 결과 온전한 하나님이 아닌 언제까지나 하나님만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식이나 보호받는 차원으로 만족하려했다. 하나님께서는 제발 당신을 자유 하는 길이 사는 길이라고 그렇게도 강조하시건만 도무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세상의 순리이며 모든 사람들은 순리를 따라가야 했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진행하심과 자신의 진행이 맞아야 제대로 잘 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동안 하나님의 진행하심의 패턴이 보이는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바꿔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패턴에 멈춰있는 상태고 하나님은 계속 진행하셨기 때문에 당연히 엇박자 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참상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자신들이 찾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우주를 뒤 흔드는 정체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오래 동안 진행하고 계셨으며 그간에도 잠시도 멈추지 아니하셨다. 이제는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시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보이는 기적이 아닌 무너져 내리는 참상 가운데서 다음의 생명을 준비하시고 계시는 기적의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인류가 잘못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인 바로 양과 음의 법칙을 무시한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음을 통하여 더욱 강한 양을 만드시는 것을 원하셨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양만 모아서 더 큰 힘이 나오게 될 줄 알았지만 오히려 음을 통하여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길수록 더 강한 양이 되는 원리를 인간에게도 적용시키셨다.



그렇게 인간에게 음의 역할을 담당한 것들이 귀신과 고통이다. 그런데 모두 그러한 것들은 못쓰는 것들이라고 버려버렸으니 모두 약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사코 귀신과 고통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귀신들의 것이라고 우긴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은 악이든 선이든 하나님의 주권으로 움직이신다는 사실을 굳이 부정하는 이유는 본인들의 시각 때문이었다.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께서는 귀신 아니라 그 어떤 악 앞에서도 개의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영, 생명의 눈으로 보면 이미 그러한 좋고 나쁜 것들은 이미 나쁜 과정을 통과하여 좋은 과정에 도착된 상태이므로 나쁜 것들에 큰 의미부여를 두지 않게 된다.



대신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말할 수없는 큰 산고를 치러야만 되었다. 그러므로 생명의 시각에서는 귀신과 고통은 생명을 위한 훌륭한 먹잇감이다. 그것들 때문에 생명이 되는 것을 알기에 피하거나 쫓아내지 않는다. 비결을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부딪히거나 좇아가서라도 승리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



생명의 눈은 그처럼 이 세상에 아무 것도 피할 것도 버릴 것도 없다. 오히려 보기에 험상궂은 것들이 더 좋은 것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님을 닮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우주의 모든 것들을 모두 끌어안을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마땅 한일이 아닐까? 보이는 육을 좇아가는 바람에 보기에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들만 좇아갔다. 오히려 보기에 나쁜 것들이 얼마나 유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우주를 끌어안을 수 있으려면 이 세상의 좋은 것은 물론이요 나쁜 것들까지도 모두 접촉하여 승리할 때 그것들까지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바로 그 경지가 원수를 사랑하는 경지를 뜻할 것이다. 그런데 입맛대로만 가려고 했으니 제대로 만들어 질 리가 없었다. 그러니 흙더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모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러한 기적의 참 의미를 알아야 만이 하나님의 신호를 알고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정녕 지금의 상태가 기적을 만질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도 모른 채 보이는 것이 아니면 인정하지 아니하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오늘의 실상을 표현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답답하셔서 그렇게 하시겠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의 그러한 마음을 아는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될까? 지금의 보이는 실상의 무너뜨리심 속에는 많은 의미들이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려한다.



첫째: 이미 하나님의 소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의미다.
둘째: 그것은 인간에 의해 하나님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들이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이루어 졌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
셋째: 그러기 때문에 이제 지구의 유명무실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의미다.
넷째: 무너뜨리시면서 다른 한 쪽에서는 이미 새로운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의미다.
다섯째 : 그렇기 때문에 참의 출현이 있게 될 것이고 참의 출현과 동시에 거짓의 축출이 빠 르게 진행이 될 것이다.
여섯째: 날이 갈수록 무너짐은 더욱 확장되어 갈 것이고 동시에 새로운 일들은 더욱 빠르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위의 상황들을 볼 때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는 것을 예감한다. 하나님께서는 바쁘시다. 그래서 인류가 깨닫도록 날마다 참변을 통하여 진행하고 계시는데 모두 눈이 멀어져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무너짐의 의미는 새로움의 의미도 된다. 사람들은 능력의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이루실 것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점진적으로 이루고 계셨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우주의 멸망은 시작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자연재해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입증 해주고 있다. 아마도 사람들은 지금 각자 등잔불을 만드는 일을 서둘러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도 사람들은 화려한 기적 같은 장소에서만 하나님을 찾으려 할 뿐 쓰러져가는 흙더미에서는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답답할 뿐이다. 그러한 현상들은 본인들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강 건너 불 보듯 치부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지도자들도 그러한데 일반사람들은 두 말할 것이 없다. 모두 지금까지 양질의 삶 속에서만 하나님을 찾았던 습관 때문일 것이다. 흙더미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 만이 참 눈을 갖고 있기에 하나님의 참 뜻을 알 수 있으며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자 들만이 살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실가운데서 운행하시는 분은 생명의 하나님이시다. 생명은 반응이다. 만약 사람들이 생명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운행하심에 민감하게 반응 할 것이다. 반응하는 것은 살아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되어 지면 현실의 움직임에 적재적소에 반응하며 발 빠르게 움직이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죽은 사람들처럼 반응하고 있다. 날마다 보내시는 하나님의 신호를 따라 하기도 바빠야 하는데 사건이 생기면 기도나 성경 안에서 답을 찾고 있으니 모두 놓칠 수밖에 없다. 또 모두 결과적인 행동만 하므로 자신들에게 유익이 될지 아닐지 결과의 틀 속에 맞지 않으면 모두 거절하고 잘라내 버린다. 오늘도 그러한 행동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부르짖어도 이미 하나님을 놓쳐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지금 무슨 일을 진행하시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깨닫도록 많은 것들을 동원하시지만 모두 눈먼 자들이기에 때문이다. 기도 가운데서 응답가운데서 성경가운데서 찾으려할 뿐 우주를 움직이시는 오늘의 하나님은 모두 놓치고 있다.



무너져 내린다는 의미는 이제 지구를 곧 마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시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생명이 아닌 죽은 믿음을 갖고 있기에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씁쓸할 뿐이다. 그런데 아직 그러한 하나님의 움직임을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생명의 차원으로 올라가서 생명의 눈으로 바꿔질 때 하나님의 참 뜻을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찾으려 최선을 다 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앞장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마저도 사람들은 반대로 해석하고 있을 수 있다. 아무튼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더 빠를 수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시라고 당부 드리고 싶다



안성자www.trueroad.co.kr
2009-05-19 00: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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