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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기도는 자신에게 무익하답니다
icon 안성자
icon 2009-06-07 02:19:21  |  icon 조회: 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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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새로운 환경이 설정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욱 앞으로 끌고 가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에 집사님은 삶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따라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생소할 것입니다. 당시에는 기도로서 집사님의 삶의 목적을 이루기를 원하였으며 고통과 귀신을 멀리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집사님의 원하는 데로 요구를 들어주셨으며 당시에는 원하는 것들이 제법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고 주변도 조용해져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 때부터 기도의 양은 많아져야 했으며 삶도 엉망이 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기도에 박차를 가하고 더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환경은 좋아 지기는 커녕 더 나빠져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처음엔 집사님의 원하는 데로 되었을 것이고 세월이 흐르면서 집사님의 원하는 방향과 자꾸만 틀려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알고 보니 하나님을 믿는 목적과 삶과 어떤 관계인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지라도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왜 그래야 되는지 방향과 목적이 틀린 것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실 인간은 하나님의 목적과 같은 길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정확하게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거대한 분이시기에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야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기도로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가 어떤 목적이든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기도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필요한 기도가 잘못하면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이며 실제로 그리 했습니다. 사실 인류가 오늘날 이렇게 잘못되어온 원인도 기도를 잘못 사용하여 빚어진 것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기도는 인간의 육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응답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 기도와 응답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닮아 가는데 그것은 지극히 어린아이 수준에서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응답은 보이는 차원의 요구에 불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에서 영의 길로 이동하게 되면 무조건 기도를 중단하게 합니다. 그래야만 귀신과 고통이 쫓겨가지 않고 집사님 주변에 집사님이 부족한 만큼 나타나게됩니다. 그길은 드디어 집사님 자신이 만들어지는 길이며 하나님과 24시간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외면해버리고 하나님을 또다시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진행하시는 것들에 방해가 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자신의 삶 속에서 자신을 만들어야 할 고통과 귀신 등 재료들을 쫓아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선에는 그러한 방법들이 자신이 원하는 외형이 만들어지는 것같고 고통을 경감시켜주기 때문에 삶은 가볍게 되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대신에 내가 만들어 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쫓아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집사님의 삶 가운데서 사건을 통하여 집사님을 만들기를 원하셨으며 그래서 사건을 통하여 당하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집사님이 하나님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도록 날마다 그렇게도 많은 사건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대부분 모를 뿐더러 알았다손 치더라도 진행 방법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집사님은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면 되는 줄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는 원하는 목적이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본인이 직접 삶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만들어 지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삶 속에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신호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충실히 하게 되면 인간이 원하는 모든 것들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과정을 거치는 중에 점진적으로 처리가 되면서 하나님을 닮아지는 만큼 인간들이 원하는 것들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인간이 완전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 순위였던 것입니다.그러한 과정은 보기에 너무 힘이 들게 보이므로 모두 생략하고 자신들의 최종적인 목적만 빨리 이루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길로 질주하다보니 어느 정도 된 것 같았는데 속은 텅 빈 겉만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길만을 열심히 좇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면은 닮지 않고 겉모습만 닮게 된 것이죠. 거기에 함정이 있을 줄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 모든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도 본인들은 아직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틀렸다는 소리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방법이 틀렸다고 하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와 다를 것입니다. 과거에도 틀렸다는 지적은 많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틀렸는지 어떻게 해야 그것이 고쳐지는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밝혀졌기 때문에 참이 아닌 것들은 급속도로 폭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의 기준을 하나님으로 설정하시고 미달이 되는 곳에는 여지없이 소리가 나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부족한 만큼 사건들이 생겨나고 그것을 하나님과 함께 그 길을 따라가면서 해결을 해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까지는 맞았지만 하나님의 목적과 다른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진행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간을 만드시는 것이었으므로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자신의 삶을 따라 걸어가면서 고쳐야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인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모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육이 영의 하나님을 닮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제대로 갈 수없는 저해요인은 인간에 보이고 들리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들이 기도와 응답이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다면 바보처럼 환경을 따라 갔을 터이고 모두 하나님의 원하시는 데로 고쳐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이고 들리기 때문에 육이 영으로 바꿔지는 것은 기도로만으로도 이루어진다고 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성질은 대가를 지불해야 고통을 통과하면서 육속에 들어있는 나쁜 성질의 것들이 빠져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보기에 너무 싫어 피하고 좇아버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집사님이 삶에서 처리 받아야 할 것들을 스스로 쫓아버린 셈이었답니다. 그처럼 기도란 인간의 관점에서의 요청일 뿐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목적과는 상반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도는 욕망이다 ” 라고 할 수도 있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기도라고 하지만 처리 받지 않은 인간으로서는 지금당장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본인보다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 각자가 하나님의 수준까지 고쳐지는 것을 바라시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도 먼저 자신을 뜯어고치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하고 각자가 처음부터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모든 것들을 맡겼다면 세상은 이렇게 시끄럽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잘 알기도 전에 남에게 전도하는 일을 서둘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자신이 가장 먼저 고쳐져야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을 뜯어고치는 것도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추스르는 것만도 너무 바쁘고 버거워 남을 돌아 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 알량한 몸으로 누구를 전도 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만약 하게 되더라도 본인의 아직 고쳐지지 않은 부분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사건이 생길 때 생명으로 가는 길은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지만 생명이 아닌 길은 사건이 생길 적마다 먼저 다른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 원망을 하는 한은 자신이 고쳐 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주변에 벌어지는 사건은 자신을 고쳐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므로 사건의 동기도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할 것입니다. 그러한 원리로 생각한다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벌어지는 불협화음도 자신이 고쳐지면 가족을 위해 기도하지 않아도 귀신을 쫓아내지 않아도 점진적으로 질서가 잡혀 질 것입니다.

이제부터 집사님은 일거 일 투족을 하나님과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집사님이 하나님께 따로 요청 드리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집사님이 고쳐야 할 필요한 부분을 삶 속에서 직접 진두지휘하시고 계시는 것이랍니다.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니 예수님도 기도하시는 데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과 24시간 동행하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는 24시간 기도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24시간을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끝까지 기도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자신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이 틀리기 때문인데도 그 길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하나님을 처음만나는 것은 기도를 통하여 만나고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숙하게 되면 통째로 자신을 하나님의 흐름에 맡겨 드려야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지혜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성령님을 능력을 맛보게 하시고 그 길이 모든 것 인처럼 알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하지 않는 경지는 내가 하나님의 목적에 나를 합류시켰다는 것이며 합류시켜야 할 이유와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 입니다.

누구도 의심 없이 그 길을 가게 해 놓으시고는 다시 우회를 해야만 정로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육인 인간에게 어느 정도 죄에 스며들 때까지는 그 길이 옳다고 그냥 그대로 계셨던 것입니다. 육에 스며든 죄를 다시 하나님과 함께 빼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고통의 대가를 치르는 행위동안에 하나님의 생명의 속성이 인간에게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고통이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을 주는 것인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집사님은 지금 하나님과 다시 시작하는 영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집사님에게 지금 필요한 일들을 매 순간마다 진행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건들이 많이 생기는 것이고 드디어 영의 하나님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그렇게 영의 길은 그렇게 날마다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것이랍니다. 그 얼마나 굉장한 일입니까? 예전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그렇게 기다리고 계셨지만 집사님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예전보다도 집사님이 직접 삶 속에서 움직이는 일들이 더 많아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기도로만 하나님께 요청 드리고 나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만 부탁을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예전에도 살기 위하여 무수한 노력은 했겠지요. 그러나 그때의 노력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성하시는 삶의 목적을 알지 못했을 뿐더러 기도해 놓았으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대로 이루게 해주실 것을 믿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만 진행을 해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삶은 그냥 일반적인 상식을 적용하여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향하여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목적이 틀 린 것인지 맞는 것인지 하나님은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계시는 분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여 하나님께 맡기면 자신의 원하던 목적이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모두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줄 알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환경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함은 물론이며 이제는 집사님이 직접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만들어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길 만이 집사님이 변화되는 길이며 영원히 고쳐지게 되고 영원히 집사님 것이 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사건마다 나를 고쳐주시기 위한 것들이며 그 사건 속에서 나의 무엇을 고치기를 원하시는지 신속히 알아내는 것입니다. 알아내어 고치는 것이 그 다음 순서입니다. 물론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만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찾는다면 반드시 집사님의 사건 안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찾아서 내가 만약 고치게 되면 그 사건은 영원히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지만 당장에 고치지 못한다고 해도 절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고쳐지기 전에는 절대로 그 사간은 나의 주변을 떠나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우리를 고쳐주시려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무한한 사랑을 어느 누가 알아 들일까요? 이제 모든 원리를 알았으니 진행하기가 쉬우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설명으로 역시 주님께 묻는 것도 기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나의 목적이고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모든 것들은 나 때문인 것을 아는데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날마다 나를 고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환경에서 찾아오는 사건 속에 모든 정답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집사님 힘내세요.



안성자www.trueroad.co.kr
2009-06-07 02: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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