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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건물인가 조직인가?
icon 일문
icon 2010-01-19 18:23:04  |  icon 조회: 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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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건물인가 조직인가? -

성경적으로 ‘교회’라는 말은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적인 교회의 두 가지를 나타낸다. ‘우주적인 교회’는 교회가 탄생한 이후부터 휴거될 때까지의 모든 성도를 가리키며 ‘지역교회’는 일정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임들을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교계에서 ‘교회’라는 말은 두 가지 잘못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건물’과 구성원들로 성립된 ‘조직’을 말하는 것이다. 예컨대, ‘저 교회는 멋지다’ 라는 표현은 건물을 의미하며,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의 명칭으로 부르는 ‘교회’라는 용어는 ‘조직’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교회’라는 말이 건물 또는 조직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 신약성경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예는 단 한군데서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행 8:3)” 여기에서 교회를 잔멸한다는 것은 믿는 성도들을 핍박한다는 의미이지 교회 건물을 때려 부순다는 의미가 아니다. 또 “그들의 집에 있는 교회… (롬 16:15)” 라는 표현에서도 교회는 성도를 가리키지, 교회 건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교회’라는 용어가 지역교회에 대해 사용될 때는 ‘지역의 위치’를 중시하여 ‘고린도교회’라든지 ‘갈라디아교회들’ 등으로 불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런 ‘지역교회들’의 명칭은 조직과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처럼 루터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은 본부나 총회나 노회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조직과 체제를 갖춘 교회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초기 교회시대부터 3세기 동안의 크리스천들의 보통 모임들은 언제나 개인 가정집에서 행해졌다. 이러한 가정교회들은 소규모였으며 한 가정이 40명에서 50명 정도 모였다(신약성서의교회84쪽, 대한기독교서회,다니엘해링턴지음). 간혹 거실이 큰 경우에는 70명 정도까지 모이기도 했다. 그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이나 모임 그자체가 교회이며 또 성전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결코 모이는 장소나 건물자체를 교회로 여기지 않았으며 ‘거룩한 장소’의 개념은 전혀 갖지 않았다. 그들은 구약시대의 성전 개념과 신약시대의 성전 개념에 대한 차이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주후 313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로 인한 기독교의 공인과 함께 콘스탄틴의 명에 따라 로마제국의 각처에서 예배를 위한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콘스탄틴은 먼저 로마에 9개의 교회 건물을 건축했고, 이 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과 콘스탄티노플에도 여러개의 건물들을 세웠다(교회가없다110쪽, 대장간출판사, 프랭크바이올라지음). 이 때부터 웅장한 교회 건물이 거룩한 장소를 여겨지고 신성시되면서 구약의 성전 개념이 채택되고, 신이 특별한 방법으로 특별한 장소에 임재한다는 구약의 유대교와 이교도 사상이 흡수되었다. 이러한 그릇된 사상이 가톨릭과 개신교에 이어 오늘날의 현대교회시대까지 존속되어 왔던 것이다.

한편, 종교개혁자들 중에는 교회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닌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있었다. 종교개혁의 샛별이라 불리는 14세기의 존 위클리프는 “교회란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들의 회중”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윌리엄 틴데일(1495~1536)도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를 ‘교회’로 번역하는 것을 거부하고 ‘회중’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흠정역(KJV) 번역자들은 ‘회중이나 모임’으로 번역하지 않고 ‘교회’로 번역해 버렸다. 왜냐하면 영국의 제임스 왕이 ‘교회(church)라는 용어를 회중(congregation)으로 번역하지 말 것을 번역자들에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영국의 왕이며 영국국교회의 수장으로서 청교도들을 박해했는데, 당시 청교도들이 회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러한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 이를테면 마르틴 루터나 쯔빙글리와 칼빈 등도 교회가 건물이나 조직이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일반 대중은 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교회의 전통과 관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종교개혁자들의 ‘교회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개혁자들 역시 교회 건물에 대해서는 올바른 개념이 부족했고, 개혁 당시에는 ‘오직 설교’를 중시하여 교회 건물에 있어서는 단지 건물 중앙에 설교를 위한 강단을 설치하는 것 외에는 기존의 가톨릭 교회 건물들의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았던 것이다. 그 후 종교개혁 이래 수 백년 동안 개신교는 유럽과 북미 그리고 아시아로 전파되면서 각 나라마다 교회 건물의 건축 양식이 제각각 특색이 있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교회 건물이 예배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릇된 사고의 결과로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 교단들은 “교회는 예배를 위해 특별히 따로 마련된 장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 건물의 장소는 물론이고 겉치장과 내부치장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가톨릭에 있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은 오랜 세월에 걸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이 건축물은 세계의 모든 교회 가운데 가장 거대한 건물로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오늘날 기존교회들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만 수 백조에 이르고, 일년에 건물 유지비와 관리비 등에만 수 조원이 들어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성결교회· 순복음교회 등이 세계 최대의 교회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들어간 비용만 합쳐도 수조원이 넘는다. 세계 10대 교회 중 5개가 한국교회로 대한민국은 이제 대형교회의 천국이 되었다. 지난해 서울의 사랑의교회도 교회 건물을 새로 짓는데 2,100억이나 되는 엄청난 비용이 든다고 하니, 가히 한국도 교회 건물의 규모면에 있어서는 세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진리는 교회 건축이 성경에 나오지 않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것을 원치 않으며, 또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 땅에는 예배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예배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적합한 곳에서 떡과 잔을 준비해 놓고 주님이 계시는 하늘 보좌인 하늘의 성소를 바라보고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히 9:11). 우리의 영적인 예배 장소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의 성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교회 건물을 짓고 그 건물 명칭을 예배당으로 부르거나 교회 또는 교회당으로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 땅에는 예배 장소가 없다고 성경에 나오기 때문이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교회는 건물도 아니며 조직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일컫는 ‘교회’라는 말은 건물이나 조직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거 종교개혁자들은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를 교회로 번역하지 않고 ‘회중이나 모임(assembly)’으로 번역했던 것이다. 오늘날 성경학자들 중에 많은 이들이 교회보다는 ‘회중이나 모임’이 더 나은 번역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110번 이상이나 나오는 ‘교회’라는 단어를 당시에 ‘회중이나 모임’으로 번역했다면 오늘날 이 지상에서 수많은 교회 건물이나 단체 조직인 교파의 수도 지금과는 양상이 한층 달라졌을 것이다.

오늘날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닌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무리”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크리스천들이 더러 있다. 국내에서는 제법 알려진 이른 바 감자탕교회인 ‘광염교회’와 최일도 목사에 의한 ‘다일공동체’ 모임이 있다. 이 교회 목사들은 교인들이 모이는 ‘장소와 건물’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소박하게 모임으로써 국내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에게도 좋은 평을 받아 왔다. 이처럼 이들은 교회가 건물이 아님을 알고 ‘모임 장소’를 신성시 하거나 중요시 하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모임 장소를 교회나 예배당이나 교회당이나 성전 등으로 부르거나 표시하지 않고, 대신에 부득불 모임 장소를 “그리스도집회소, 그리스도복음관, 기독교집회장소, 기독교모임장소” 등으로 간판을 다는 교회들도 더러 있다. 그리고 외국의 영어권 나라에서는 가스펠 홀(Gospel Hall)로 간판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사실상 성경적으로 올바른 실행을 하고 있는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술한 것처럼 ‘교회’라는 용어는 ‘성도들의 무리’라는 본래의 뜻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건물이나 조직’의 의미로 탈바꿈되고 말았다. 그리고 ‘교회’라는 용어보다는 ‘회중이나 모임’이 더 나은 번역임을 상기할 때 ‘무슨 무슨 교회’보다는, 예컨대 ‘노량진교회나 잠실교회’보다는 ‘노량진모임이나 잠실모임’으로 부르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또 건물 간판은 ‘노량진그리스도집회소, 노량진그리스도복음관, 노량진그리스도집회장소, 노량진기독교모임장소’ 등으로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명칭 외에 ‘무슨 무슨 교파명’, 예컨대 ‘대한예수교장로회’니 ‘기독교한국침례회’니 하는 온갖 조직을 나타내는 교파명을 붙여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라는 용어가 결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님을 비기독교인들에게 증거해야 하며, 또 이것이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이 초기 교회시대에는 보통 한 가정에 40~50명 정도 모였으며, 많을 경우에는 70~80명 정도였을 것이다. 40~50명 정도라면 그 가운데에는 2~3명의 성경적인 장로가 있었을 것이고, 70~80명 정도라면 4~5명의 장로가 있었을 것이다. 당시 성도들은 주로 일요일 저녁에 모여 ‘만찬예배와 말씀집회’를 가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 말씀은 주로 2~3명의 장로가 전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미루어 매주 한 떡과 한 잔으로 만찬예배를 드리면서, 2~3명의 장로가 말씀을 나누기에는 40~50명 정도의 성도가 적합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성도 수가 계속 늘어나 100명 이상이라면 절반 정도로 나뉘어 인근 지역에 2~3명의 장로와 함께 개척전도로 새로운 모임을 형성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한 모임에 5~6명의 장로들이 말씀을 전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학자들 중에 모임의 이상적인 인원은 50~10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유로서는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때 50명씩 100명씩 앉히라고 말씀하셨으며, 또 만찬예배에서 한 떡과 한 잔을 돌리는데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님도 길 잃은 양의 비유에서 양들이 100마리가 넘으면 잃은 양이 생겨 목자들이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다(마 18:12).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 볼 때 학자들의 견해는 타당성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에서 내 양이란 주님의 양이지 베드로의 소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목회자들은 양들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로 더 많은 양들을 소유하고자 백명이 생기면 천명을 욕심내고, 천명이 되면 만명을, 만명이 되면 수십만명까지 과욕을 부리게 된다. 그리하여 초대형교회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가불 대형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헌금을 강요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수 차례 언급했듯이 교회는 결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그리고 집회 장소는 예배를 드리는 성별된 거룩한 성전이 아니기 때문에 건물에다가 겉치장과 내부치장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 장식물, 휘장, 성화, 성상, 색유리, 촛불 등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거룩한 성전이나 건물이 아님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하며 이러한 실행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이전에 몰랐던 사실에 대해 나중에 올바로 알고 난 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복된 일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교회는 건물이 아니므로 건축헌금을 모금해서는 안될 것이다. 건축헌금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으며 그것은 비기독교적인 행위이다. 건축헌금의 모금은 비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를 소위 개독교로 여기게 만든 주요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따라서 기독교 신자들은 건축헌금을 거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건축헌금을 강조하는 목사들을 척결하고 그러한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이러한 삯꾼목사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드는데 크게 공헌한 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초대형교회 목사들이 특히 개독교의 주범이요 일등공신들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란 거듭난 성도들의 무리이지, 결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님을 늘 상기하고 이에 반하는 자들을 단호히 배척해야 할 것이다.
2010-01-19 18: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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