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뉴스앤조이> 기사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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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경찰을 또 불렀다고요? -
icon 차호원
icon 2010-04-12 16:22:11  |  icon 조회: 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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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또 소란이 일어 났다 고요? -

생선가계 망신은 꼴두기가 시킨다고.....
어째서 동양선교 교회는 바람 잘날이 없습니끼?.

아니 주일 설교자로 선 목사가 교인들에 의해 목이 졸렸다니...?
그래서 그 목사의 생명을 살라겠다고 경찰관들을 불렀다니...
죽지는 않았는지........

그러니까 동양선교교회의 질서는 완전히 하나님이 아니시고
물론 복음도 아니고 경찰관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간 수십번........
그래서 어느 경찰관님이 말하기를
"이 교회에 아예 파출소를 세워놓고 예배를 보라!"고 비웃었다는 말도....

그리고 그 교회는 얼마나 많은 돈을 재판비용으로 지불했는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최소 재판비용 단위가 100만불 아라니까......
100만불이라...... 복권에 당첨이 되어야 만질 돈이지요,

이 교회는 이민 기독교 역사에 길이 기록되어야할 것입니다.
아~~~~~~~~ 동양선교 교회여 !!!

그러니 혹시라도 그 동양선교 교회에 지원하려는 목사님들께
간청드립니다.
제발 또 제발입니다.
처자식 다리고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교회만은 자원하지 마세요.
특히 그 강단에서 설교 한번 해 보겠다는 바보같은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수 없으면 교인들에게 목 졸리고
뒷덜미 잡혀서 끌려내려가는 망신을 당할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교회 터가 처음부터 나쁜지......?
아니면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세운 "지정(?)교회 상"인지......?

아니면 은퇴를 앞둔 목회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인지....?
하나님께서는 분명 그 교회를 보시고 계시련만 계속 침목만 하시니..,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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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목사의 세 가지 덕목 -

목회자들이 사역의 한계(늙어서)가 왔을 때 교회 문을 닫지 않는 한,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순환은 피할 수 없다.

즉, 이 과정에서 은퇴 자가 미련 없이 교회를 물려주는 것이 현명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부임한 후임자는 물론 교회와 교인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의 사역을 욕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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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실 아무리 유능한 젊은 후임자도 전임 목사가 떠나지 않고
'내 영향' 지킨다고 교회나 주변에서 두리번거리면
그 후임자는 소신껏 사역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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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저의 Church Clinic을 찾아온 젊은 목사의 전임자에 대한
불평은 심각했다.

즉, 전임자의 간섭과 텃세에 '머슴살이 사역'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담 결과 그 교회는 "내 파, 네 파"로 분열하게 될 것 같았다.

한편 그 분이 은퇴할 때 자신을 괴롭힌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순순히 물려줄지는 두고 볼 과제이지만 여하튼 후임자에 대한
은퇴목사의 어른답지 않은 태도는 이 교회의 분열의 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우들은 한인교회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방정식(方程式)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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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인교회의 기이한 현상은 후임자가 교회에 부임하면
첫 사역으로 '자기 파(派) 만들기"와 '퇴임 목사 이미지
몰아내기'부터 시작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
심각한 목회현장인가.....
- - -
이러한 전임자와 후임자의 교체 과정은 정말 심각한 과제다.
즉, 전임자가 퇴임 후 바로 물러나지 않으면 아무리
단단한 교회라고 해도 목사의 처신으로 의해 병들게 된다.

분명한 것은 은퇴목사가 '내가 세운 내 교회'라는 미련을 버리지 않으면
그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도 사회의 지탄과 세상 앞에서
부끄럼을 당하게 된다.

사실 소문도 없이 후임자가 와서 '교체 사역'을 하는 교회들도 있다.
그러므로 후임자에게 교회를 넘겨 준 이후,
은퇴자가 선택할 최선의 길은 속히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의 장난인지 깨끗이 떠나는 은퇴 자들이
많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주의 목자들이라고 자랑해 온 분들인데.......
- - -
어느 교회의 분쟁 이야기다.
퇴임했던 원로목사가 몇 년이 지난 후 추종자들을 앞세우고
"이 교회는 내가 세운 교회니 내 놓으라!"는 난리를 피웠다.
그 날벼락에 놀란 목사와 교인들은 경찰을 부르고
"내 교회" 다툼이 계속되다 끝내는 법정싸움으로 번졌다.

그러나 그 원로와 추정세력들은 판사의 '땅 땅' 판결로
퇴각하는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 통에 교회 돈 십여만 불은 법정 비용과
"내 교회 성명전 광고비(聲明戰 廣告費)" 등으로 탕진해 버렸다.

그뿐인가 ?
그 진통을 겪은 교인들은 그 은퇴목사에게
평생 주기기로 약정했던 '공양 비'(?)를 만장 일치로 취소해 버렸다.
이것은 한인 교회의 단면이요, '내 교회타령'의 산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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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분열 상을 보면
첫째 - 넘쳐나는 신학교와 무임 목사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즉, 끝없는 그들의 '내 교회 세우기" 경쟁에는
목회윤리 따위는 이미 없어졌다.

그리고 목사들의 자기 교회에 대한 집착은 세상사람들 보다
더 강렬해 지금까지 자랑하던 믿음, 영성의 능력으로도
아니 세상의 의리로도 막을 수 없다.

실례로 한인교계에서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다.
한 목사가 월세 5000불로 미국교회에 세 들고 있을 때
지혜로운 목사가 나타나 "나는 6000불을 줄 테니 나에게 달라!".....

이런 목사님들의 놀음에 익숙해지고 '웃돈 맛'을 아는 미국교회들은
주기적으로 "김치 냄세 난다" "소란하다" 등등 트집으로
한인교회를 갈아치우기 때문에 목사들은 앉을 자리만 찾으면
교회가 옆에 있든 없든 교회 둥지를 튼다.

그러니 한국에 교회가 10.000개인데 미국 한인교회가
3,800개가 넘는다니 한인교회들이 얼마나 분열했는지,
건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둘째 - 비록 후임자로 선정이 되어도 은퇴자의 요구 조건(?)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내 교회'세우다 보니
교인 쟁탈전을 벌어지고 동문들과의 알력과 불신까지 늘어 나는 것이다.

셋째 - 퇴임 자가 '자기 코드'에 맞는 목사를 초빙해 놓고
'내 영향력 유지하기' 위해 후임자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후임자들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끌고 "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전임목사들의 '자기 코트' 술수로 인해 교회는 계속 분열한다.

넷째 - 교회가 넘쳐나는 데도 매일처럼 등장하는 '교회 창립' 광고,
그리고 각 교회들이 저마다 벌이는 머릿수 채우기
총동원 경쟁들은 교회를 4분 5열 시키는 원인이다.

다섯째 - 각 교회들이 선장수단으로 나누어주는 직분이라는
이름의 감투와 특히 목사들의 감투 역시 교회에 부끄럼을
주는 원인이다.

목사들에겐 각종 총회장, 고문, 학장, 총장, 박사, 동문회장 등등...
정말 많은 감투와 명예들이 있다.
즉, 이런 감투와 명예들은 교회를 위한 것이기보다는
세상 살아가는 명패가 되고 계급이기도 하다.
- - -
은퇴하면서 '내가 세운 교회'를 고집하는 목사님들에게 드리고 싶다.
"정말 교회는 목사님이 세운 교회입니까 ?"라고.....

참 희한하다.
그렇게도 '주님의 피로 세운 교회'라고 눈물겹게 설교하시던 목사들이
은퇴한다는 생각만 들면 용케도 '내가 세운 교회'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교인들은 속는 척 목사의 몫으로 치부해 준다.
즉, "아무렴! 맞습니다. 목사님께서 세운 교회지요.
암 그렇구 말구요. 지당합니다"
물론 교인들은 혀를 판다.
"불쌍한 우리 목사님! 언제부터 저렇게 노망이 들었지 ? "
- - -
한편 은퇴하는 목사들이 자신이 오랫동안 섬기던(?) 교회에 대한
미련을 빨리 끊지 못하는 심정도 우리 모두는 조금 동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
목사도 당연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노후 생각을 하게 될 터이니까...
어찌 그들인들 겨자씨 만한 '놀부' 근성이 없겠는가....

그러나 '늙고 감당하지 못해서 몰러나는 처지라면
"내 교회"라는 미련만은 싹 버려야 편할 것이다.
목회사회의 질서를 위해서 또 원로의 대접을 받으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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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의 세대 교체는 피할 수 없이 계속될 과제이다.
지금의 젊은 현역 사역 자들까지도.....

그러므로 후임자들이 싫어하고 자신을 망치는 그 관리권(?)을 썩 포기하고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 은퇴 자들의 의무이고 책임이며
귀한 '제 2의 삶'에 그늘을 만들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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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리 교회에 공헌한 사역자라해도 은퇴 후
교회 주위에서 맴돌면 그는 교회 발전의 방해꾼이 된다.

즉, '내가 세운 교회'라는 망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면
아무리 '주의 종'의 긍지를 갖고 살았어도 그 하나님과 자신에게 욕이 된다.
이 것은 현역 목회자들에게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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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사역자의 세 가지 덕목(德目)이다.
1. 사임하면 지체없이 교회를 떠날 것 - 후임자를 위해서
2. 후임자의 만류가 있어도 교회를 떠날 것 - 자신을 위해서
3. 애원하는 교인이 있으면 더 멀리 떠날 것 -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


끝으로 은퇴 목사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글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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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사랑의 헌신과 은퇴 -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해 온 외국인 수녀님들이 떠나셨습니다.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에서 43년 동안 한센병 환자를 보살펴 온
외국인 수녀 2분이 편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소록도 주민들은 이별의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일손을 놓고 성당에서
열흘 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록도에서 평생을 환자와 함께 살아온 마리안(71),
마가레트(70) 수녀가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떠난 것은 지난달 21일입니다.

마리안 수녀는 1959년에, 마가레트 수녀는
1962년에 소록도에 첫발을 디뎠 습니다.

두 수녀는 장갑을 끼지 않은 채 상처에 약을 발라줬습니다.
또 외국 의료진을 초청해 장애교정 수술을 해 주고 한센인 자녀를 위한
영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의 선행을 뒤늦게 알고 1972년 국민포장,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습니다.

두 수녀는 이른 새벽 아무도 모르게 섬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은인들에게’란 편지 한 장만 남겼습니다.

이들은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고 우리들이 있는 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다”
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들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 드렸던 일에 대해
이 편지로 용서를 빕니다”
고 말했습니다.

김명호(56) 소록도 주민자치회장은
“주민에게 온갖 사랑을 베푼 두 수녀님은 살아있는 성모 마리아였다.
작별인사도 없이 섬을 떠난 두 수녀님 때문에 섬이 슬픔에 잠겨 있다”
고 말했습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봉사활동을 한 마가레트 수녀(왼쪽)와
마리안 수녀.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 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품이
참 베품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습니다.

10여년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습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습니다.

"처음 갔을 때 환자가 6000명이었어요.
아이들도 200명쯤 되었고, 약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치료해 주려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 두 분은 팔을 걷어붙이고,
환자들을 직접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 40년이 된 것입니다.
할 일을 지천이었고, 돌봐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숨은 봉사...
이렇게 정성을 쏟은 소록도는 이제 많이 좋아져서,
환자도 600명 정도로 크게 줄었답니다.

누군가에게 알려질 까봐,
요란한 송별식이 될까봐 조용히 떠나갔습니다.

두 분이 배를 타고 소록도를 떠나던 날,
멀어지는 섬과 사람들을 멀리서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20대부터 40년을 살았던 소록도였기에,
소록도가 그들에게는 고향과 같았기에,
이제 돌아가 고향 오스트리아는 도리어 낯선 땅이 되었지만,
3평 남짓 방 한 칸에 살면서 방을 온통 한국의 장식품으로 꾸며놓고
오늘도 '소록도의 꿈'을 꾼다고 했습니다.

그 분의 방문 앞에는 그분의 마음에 평생 담아두었던 말이
한국말로 써 있습니다.

-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

"지금도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바다는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운지..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요!"

http://family.bada.cc
2010-04-12 16: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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