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통제, 북한이 취하는 감시와 통제에 대해 남한이 취하는 감시와 통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내의 통제요 감시다. 어느 나라이건 국가보위를 위해 감시와 통제는 필연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정도문제이다. 공산주의 체제유지를 위해 국민의 지유와 주권을 찬탈하는 국민 통제와 감시는 반역적 행위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절제된 통제와 감시는 필요요건이다. 더구나 북한 공산도당들이 호시탐탐 남한을 공산주의화하려는 끝없는 침공야욕이 웅크리고 있는한 이에 상응하는 통제와 감시는 필연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데 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이를 악용하려는 음흉한 흉계를 국민된 우리가 잘 파악하고 정치적 이용에 유혹되지 않는 참 견제의 힘을 발휘하는 정도에 따라 통제와 감시가 국가적 공안에 공헌하기도 하고 역폐하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는 오직 한 길은 국민적 부패와 타락 문제이다. 위로 대통령부터 아래로 국민에 이르기 까지 너무 썩었다. 이런 환경에서 사회정의가 바로 살아날 틈이 없다. 썩어도 썩어도 너무 썩었다는 이 참담한 현실이 심각한 문제다. 나는 김대중은 좀 덜 부패했으려니 했었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중에서 그 처럼 철저히 썩은 대통령은 없다. 그런데 좌파는 김대중이 김정일을 알현해서 공물을 봉헌했다고 김대중이 제일이란다. 이보다 더 저질이요 이보다 더 웃기는 망나니들이 세상에 어디 또 있다는 말인가. 소도 웃고 개도 웃는 일을 좌파들은 열심히 충성한다. 누구에게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게 아니라 말씀으로 산다!(마4;4)" 하신 마씀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하는 말씀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인 복음의 말씀, 새롭게 우리에게 닥이오신 하나님의 의의 말씀, 더 나아가서는 존재론적 계시로 표현한 성자 하느님, 구속주 하느님, 중보주 하느님을 "로고스"로서 희랍적으로 표현했다오. 이것들이 직접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아니고 복음말씀의 결과로 말미암은 열매로서의 자유로 누리는 언론자유 표현자유는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산상교훈 "말씀"에서 오는 기독교인의 삶에 의한 열매로서의 자유중 하나로서 언론자유 표현자유는 될 수 있지만 성경의 복음말씀이 바로 언론자유라는 말은 기독교의 차원을 낮추어도 한참 낮춘 표현입니다. 기독교의 이신칭의 이신득의의 교의를 한번쯤은 읽어나 보고 말씀하시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