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외친 '변화', 한반도에 어떤 영향 미칠까
오바마가 외친 '변화', 한반도에 어떤 영향 미칠까
  • 손병관
  • 승인 2008.12.03 0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특집3] 미국 대선과 한반도

세계의 관심을 불러 모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 국내 정치와 경제는 물론 세계 정치와 경제의 여러 쟁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북핵 문제, 경기 침제, 국내 양극화 등 여러 쟁점에서 미국 대선은 적지 않은 변화를 초래하리라 예상됩니다. 이 변화는 국내 세력과 정파 간 역학 관계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은 미국 대선과 관련하여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정태식 교수는 미국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인 양당 대선 후보들이 기독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확인한 후, 정쟁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였다는 의견을 제시합니다. 유성진 박사는 미국 대선에서 여러 쟁점을 검토한 후 금융 위기가 판세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합니다. 손병권 교수는 미국 대선이 한반도 정세 특히 북핵 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합니다. 세 글이 미국 대선과 관련된 여러 쟁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편집자 주)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바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이 당선되었다. 경제적 약자, 청년층, 히스패닉 유권자 등의 전폭적인 지지, 흑인의 압도적 지지, 그리고 일부 보수파 유권자의 가세와 중도파 유권자 층에서의 우세 등에 힘입어 ‘변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오바마가 승리를 거머쥐게 되었다.

오바마가 변화를 외쳤고 유권자들이 변화를 요구했지만, 사실 오바마 자신이 변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상징이었다. 그는 민주당 비주류를 당내 변화의 주체로 끌어올렸고, 이를 통해 유색인종 최초의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변화론과 함께 고개 드는 미국 패권 쇠퇴론

그가 외치는 변화의 내용과 방향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나, 미국 국내외 정책에 있어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미국 경제의 금융 위기를 둘러싸고 규제 정책의 도입 등이 거론되고 있어 현상의 변모가 감지되고 있고, 이라크 주둔 미군을 16개월 이내에 철수하겠다고 하는 공약을 내걸었기 때문에 미국의 중동 정책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수 인종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의 인구 구성 변동의 추세와 더불어 미국의 국가 정체성 규정에도 상당한 논쟁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론과 함께 미국 패권 쇠퇴론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예일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인 폴 케네디(Paul Kennedy)가 <강대국의 흥망>을 저술하면서 강대국의 과도한 대외적 팽창이 그들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당시 1979년 이란혁명으로 표상되는 미국 중동 정책의 실패, 소련의 아프간 침공,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과의 무역 마찰 등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하락하면서 미국 패권 쇠퇴론이 회자한 바 있었다.

지금은 부시 행정부 8년간 미국 대외 정책의 과오와 월가의 금융 위기가 겹치면서 자카리아(Fareed Zakaria) 등을 중심으로 미국이 변화된 국제 정치 상황을 적절히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네오콘의 한 사람인 케이건(Paul Kagan)은 미국의 쇠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나, 국제 정치의 힘의 배분이 서서히 다극화되어가고 있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있는 듯하다. 다만 대응 방식에 있어서 차별이 있을 뿐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국제 정치권력 분배의 변화 가운데 소수 인종 출신의 흑인 대통령의 등장이 미국 외교 정책 전반과 대한반도 정책에 어떠한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궁금하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오바마의 확신 
 
외교 정책의 전반적인 기조와 관련하여 오바마는 현재 부시 대통령만큼이나 민주주의의 체제의 우월성에 확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의도가 다소 분명했던 부시 행정부와 달리 ‘체제 변화’(regime change) 등 민주주의의 강제적 이식을 주장하거나 민주주의 확산의 대상을 중동의 이슬람 지역으로 특정하여 주목하고 있지는 않다. 강제적인 방식보다는 폭압적인 국가에서 시민 사회가 구축되고 민주주의의 씨앗이 이식되어 자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 가깝다.

국제 테러 문제와 관련하여 오바마는 민주주의 국가만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여 부시 대통령과 유사한 의견을 내어놓고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자신은 부패한 외국 정부의 개혁을 요구하고 대외원조액을 2012년까지 500억 달러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요컨대 동기와 실행 방식에 있어서 부시 대통령과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오바마의 이러한 신념은 자유와 민주주의로 집약될 수 있는 ‘미국적 신조’(the American Creed)에 대한 그의 확신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오바마가 바라보는 미국적 신조는 문명 간 충돌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과 같은 소수 인종이 동화되고 용인될 수 있는 기회와 동기부여의 창(窓)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오바마 당선자는 11월 4일 저녁 시카고 그랜트 파크 당선 연설을 통해 미국의 힘이 바로 ‘민주주의, 자유, 기회, 그리고 불굴의 희망’을 골자로 하는 ‘미국의 이상’에서 나온다고 갈파한 것이다. 이러한 수용적이고 포용적인 민주주의 이념이 전파될 때 불만이 제거되고 테러를 비롯한 폭력의 소지가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 오바마의 외교 철학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와 비교해볼 때 두드러지는 다자주의적 성향과 대화의 중요성 강조에 못지않게 민주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오바마의 신념 또한 확고하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외교 정책은 이러한 미국적 이념의 신축적 적용, 변화하는 세계의 선별적 수용, 그리고 미국의 지도적 위상 유지를 주요 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선택은
 
북한 핵문제가 걸려 있는 한반도에서 외교 정책상 대화와 함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오바마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접근 방식이 지금보다 현저히 유화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폭압적인 정권에 대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오바마의 외교 정책 입장은 양자 대화나 관계 개선 과정에서 특히 인권 문제 등과 관련하여 북한과 지속적인 마찰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기회와 자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사회, 이에 대한 변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서 미국이 제시할 수 있는 협조의 수준은 아무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북한과 같은 비호감 국가를 선험적이고 일괄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일단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해법을 찾아본다는 오바마식 접근 방식은 부시 행정부 시기보다는 북미 간 대화가 보다 활발히 진행될 여건을 제공할 것이다. 그가 말하는 ‘공세적 외교’(aggressive diplomacy)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대북 문제에 있어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 대화 거부 기조를 문제시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을 방조했다고 비판하는 전통적인 민주당의 입장과도 흐름을 같이 하면서도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오바마 역시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거부하면서 북한이 핵 개발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촉구해왔다. 또한 오바마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6자회담과 같은 임기응변식 대화 채널보다는 좀 더 구속력 있는 국제동맹(international coalition)이 구성되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주변국 협조 체제 마련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2006년 중간 선거 이후 변화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 즉 6자회담 속에서 양자 회담을 진행하는 방식과 병행하여, 보다 강화된 형태로 주요 주변국 간 협조 체제의 제도화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국의 경제 위기의 해결 문제가 시급한 상황에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 당장 물적, 인적, 시간적 자원을 대폭 투자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 6자회담의 진전 방향, 그리고 6자 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 간 회담의 성과가 향후 북핵 문제 해법에 대한 미국 측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당선과 한미 FTA

한편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현재 우리의 최대 현안 문제로 떠오른 한미 FTA는 비준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FTA 전반에 대한 오바마의 부정적인 시각과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오바마 후보는 선거 기간 동안 미국이 추진해온 FTA가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기회’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해왔고, 클린턴 당시 체결된 NAFTA에 대해서는 개정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선거 기간 동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자신이 보기에) ‘심각하게 결함이 있는’(badly flawed) 한미 FTA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면서 자동차 분야의 재협상을 강하게 외쳐왔다.

FTA 전반 그리고 한미 FTA에 대한 오바마의 이러한 입장은 힐러리와 경합했던 예비 선거 시기부터 블루컬러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거적 동기에서 기인한 면이 다분하다. 왕년의 뉴딜식 민주당 가치를 다시 내걸면서 전략적으로 좌편향을 선택한 힐러리 후보에게 중서부 지방의 블루컬러 계층의 지지가 쏠리는 상황에서, 이들의 표심을 일정 부분 얻어내고 경선 이후 공화당 후보와의 본선에서 이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FTA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아울러 FTA에 대한 오바마의 반대는 민중주의적 애국주의와 ‘기회’라는 미국적 신조의 주요한 요소가 노동자 계층이라는 집단을 대상으로 표명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누차 표명된 한미 FTA에 대한 재협상 요구는 미국의 경제 불황이라는 상황과 어울려 어느 정도 현실화될 가능성도 있다. 선거 기간 동안 일관되게 언명된 오바마의 한미 FTA 개정 공약, 상원에 포진하고 있는 민주당 중진 의원들(미시간의 카알 레빈, 뉴욕의 힐러리 클린턴)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한미 FTA의 실행법이 쉽사리 통과될 수 없다는 현실, 그리고 백인 노동자를 포함하여 향후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국민적 지지 기반의 확보와 유지라는 필요성 속에서 한미 FTA 재협상은 현실화될 수도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외국과 체결한 FTA가 협상 과정에서 결렬된 경우는 있어도 비준에 실패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는 사실,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의 대외적 공약과 이와 관련된 미국의 패권 국가로서의 공신력 문제, 보호무역이 불황과 국가 간 민족주의적 경쟁을 가져왔다는 역사적 교훈,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상황에서 FTA의 체결이 국가 간 교역을 증진시키면서 경제 성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예상 등을 고려해보면 한미 FTA가 미국 의회 비준 과정에서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과 이에 따른 재협상론에 휘말릴지는 모르지만 협정의 비준 자체가 일괄적으로 거부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고 본다. 

오바마의 등장과 한미 관계

일반적으로 두 국가 간의 관계는 게임의 당사자가 바뀌든지 게임의 룰이 바뀌든지 아니면 게임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하면 자연히 이에 적응하면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볼 때 미국 대통령이 바뀐 상황과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은 게임의 주체와 게임의 환경을 어느 정도 바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게임의 주체와 환경의 변화에 상관없이 한미 관계는 빈번한 진통 속에서도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양국 관계에서 게임의 당사자가 변혁적인 성격을 띨 경우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 양국 관계의 가장 어려운 시기는 이처럼 게임의 룰까지 바꾸려는 시도가 전개되는 상황이었다. 반공 권위주의 정부를 용인하던 미국의 냉전기 외교 정책이 인권 외교를 주창한 카터 행정부 등장 이후 상당히 변화하면서 한미 간에 긴장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관계의 게임의 룰을 바꾸려 하면서 통념 속의 한미 관계는 진통을 겪어야 했고, 부시 대통령은 국제 정치의 일반 원칙을 뛰어넘어 네오콘적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 해서 이와 연동될 수밖에 없었던 한미 관계는 2007년 초까지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국의 보수 정권이 갓 출범했는데, 미국은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가 등장했다. 당장 미국 민주당 행정부가 한미 관계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 같지는 않다. 미국 국내 경제의 수습과 국제 공조 체제 복원 및 미국의 위신 회복을 위해서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를 강조하는 오바마의 외교 기조도 한미 관계의 룰을 바꾸는 등 급격한 변화를 예견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모든 다양한 시나리오를 이슈별로 염두에 두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한미 간의 현안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여론을 파악하여 국론을 집약하고, 국회와 국민에 대한 설득과 병행하여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명쾌한 미래의 로드맵이나 상황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손병권 / 중앙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 이 기사는 한반도평화연구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하는 글입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홈페이지 바로 가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