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이야기] Viva! Mi Vecino! (나의 이웃 만세!)
[쿠바이야기] Viva! Mi Vecino! (나의 이웃 만세!)
  • 최명숙
  • 승인 2009.01.14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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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Fidel'이 아닌 'Viva! Mi Vecino'라고 외치길…언제까지 50년 전 혁명에 집착할 것인가

   
 
  ▲ 쿠바에서 맞이하는 새해. (사진 제공 최명숙)  
 
쿠바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부모님이 양력설을 쇠기 때문에 우리 가족에겐 1월 1일이 명절인 셈이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땐, 명절마다 힘들게 일해야 하는 며느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게 홀가분하고 좋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타국에서 명절을 보내려니, 하루 종일 전 부치고 끝없이 쌓이는 설거지를 해도 좋으니 북적거리는 가족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연말연시에 외로울 거 같다고 주변에 하소연을 했더니, 그 말이 전해져 마르따 할머니가 당신 가족과 함께 보내자고 초대를 해주셨다.

마르따 할머니는 부모님 양쪽이 모두 한국인인 한인 후손 3세대로, 마르크스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교수를 했으며 한국어로도 번역된 '쿠바의 한국인들'이라는 책을 썼다. 마르따 할머니의 남편은 돌아가셨지만 쿠바에서 존경받는 역사 학자였고 마딴사스 주립 박물관 관장을 지냈다고 한다. 

30일 오후 늦게 시외버스인 비아술(Viazul) 터미널에 가니, 휴양지에서 연말을 보내려는 외국 관광객들로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표를 파는 창구는 비어있다. 비좁은 대합실에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도 직원들은 모두 한가하다. 누구에게도 서두르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어디를 가나 쿠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다. 상점이든 음식점이든 버스든 은행이든 손님이 아무리 바빠도 직원들은 '여유만만'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태도가 좋을 때도 있다. 손님인 내가 조금 지체해도 재촉하거나 짜증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뒷사람을 의식해서 빨리 내 볼 일을 마쳐주려고 괜히 마음이 급한데 점원이나 뒷사람은 느긋하게 기다린다. 택시기사도 '남는 게 시간'이라는 듯 내가 중간에 멈춰 누구하고 잠시 이야기해도 전혀 짜증내지 않는다. 물론 자기가 당장 바쁜 일이 있을 때는 큰 소리도 치고 떠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돈'이라는 개념에 쫓기는 분위기는 없다.

사람을 기다리게 해 놓고 표 파는 직원은 도대체 어딜 갔느냐고 속으로 짜증을 내고 있는데, 차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여자 직원이 느릿한 걸음으로 창구로 들어선다. 그제야 사람들은 줄을 섰고, 난 미리 예약을 해놓은 덕분에 무사히 표를 사서 버스에 올랐다.

   
 
  ▲ 타국에서 보내는 명절. 한인 후손 3세대인 마르따 할머니는 나를 만찬에 초대했다. (사진 제공 최명숙)  
 
31일 오후 마르따 할머니 집으로 갔다. 물론 그 전날에도 도착하자마자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을 먹었지만, 31일 저녁엔 정식으로 가족 모두와 함께 만찬을 나누는 것이다. 할머니 집에 들어서니 아바나에 살고 있는 큰 딸 아나의 식구들과, 원래 함께 살고 있는 작은 딸 비비아나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렇게 모두 모여 있었고 나중엔 남자친구의 아버지도 왔다.

나는 할머니께 초콜릿을 선물했고, 전달을 부탁받은 선물로 와인과 '뚜롱'을 드렸다. 쿠바인들은 연말연시에 뚜롱을 꼭 챙겨먹는데, 우리의 강정 혹은 엿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무르다. 뚜롱은 과자나 초콜릿같은 상품으로 슈퍼나 가게에서 판매한다. 더 격식을 갖춘 선물로는 '세스타'라고 불리는 바구니를 주고받는데, 위스키·와인·샴페인·뚜롱·견과류·올리브 등이 가격대에 맞추어 바구니에 들어간다.

집 뒤뜰에 큰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고 드럼통을 옆으로 누인 것 같은 바비큐 그릴에는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가 다갈색으로 잘 익어가고 있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간간이 맥주나 롱(쿠바 럼주)을 마셨고 또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초반엔 한물간 미국 팝송에 맞추어 어른들이 신나게 춤을 췄는데, 이제 갓 20대가 된 아나의 딸이 그 음악에 맞추어서는 춤을 못 추겠다고 하자, 나중엔 레게똥·차랑가·살사 등의 음악으로 바꾸었다. 요즘 쿠바 젊은이들 사이에는 레게똥이나 하우스 뮤직이라는 장르가 유행한다고 하는데, 레게똥에 맞추어 추는 춤은 마치 엉덩이만 따로 분리된 것 같이 흔들어 대는 것이 그 특징이다.

   
 
  ▲ 만찬은 쿠바 전통 음식으로 차려졌다. 나는 준비해 간 당면으로 새우와 표고버섯, 계란 노른자로 만든 지단을 가늘게 채 썰어 넣고 잡채를 했는데, 모두들 맛있어 해서 제일 먼저 바닥이 났다. (사진 제공 최명숙)  
 
그 동네에 사는 한 부부도 왔었는데, 여자 분은 그 누구보다도 열광적으로 춤을 췄다. 나도 분위기를 맞추어야 할 것 같아서 조금 배운 살사 실력으로 동참했고, 딸 혜령이는 쑥스러운지 계속 빼다가 결국은 같이 추고야 말았다. 과연 춤은 쿠바인들의 일상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생활 속에서 자유롭게 내키는 대로 춤을 추며 산다면, 웬만한 문제나 스트레스는 쉽게 극복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살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즐거운 춤은 생명의 충만함, 삶의 리듬인 것 같다. 삶이 나에게 주는 어떤 것, 부나 명예나 안락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표현이 바로 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열심히 춤을 추던 여자 분은 맥주를 마시고 신나게 놀다가 할머니가 싸주는 뚜롱과 과일을 받아 식사 전에 돌아갔다. 왜 저녁을 안 먹고 가느냐고 물었더니 집에 아이들이 있어서 그렇단다. 뚜롱과 과일을 받을 때 나는 별 뜻 없이 그냥 보고 있었는데, 여자 분은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던지 "마르따는 우리 할머니나 다름없어요"라며 변명하듯 웃어 보였다.

식사 준비가 다 되어가자 모두들 차례로 샤워를 하더니 단장을 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만찬은 쿠바 전통 음식으로 차려졌다. '꽁그리'라고 불리는 팥밥, 돼지고기 바비큐, 감자와 매우 흡사한 '유까'를 쪄서 마늘·기름·오렌지 즙을 섞은 소스 '모히토'를 끼얹은 것, 그리고 상추·토마토·오이로 만든 샐러드였다. 나는 준비해 간 당면으로 새우와 표고버섯, 계란 노른자로 만든 지단을 가늘게 채 썰어 넣고 잡채를 했는데, 모두들 맛있어 해서 제일 먼저 바닥이 났다. 할머니는 한국인 후손답게 김치를 빠뜨렸다며 뒤늦게 올리기도 했다. 돼지고기도 맛있었지만 부드러운 유까와 모히토 소스가 너무 맛있어서 나는 결국 과식을 하고 말았다.

쿠바 텔레비전에선 혁명 승리 50주년을 축하하며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방송이 나왔고, 평소엔 자주 볼 수 없는 쿠바 영화도 한 편 방영했다. 가끔 쿠바 뉴스나 신문을 볼 때마다 신기한 건, 사건 사고 소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쿠바 신문 '그란마'지의 섹션은 쿠바·국제·스포츠·문화·관광·과학 기술·우리 아메리카, 이렇게 일곱 개로 나뉘어져 있고, 우리나라처럼 신문의 주요 지면을 할애해 온갖 사건 사고 소식을 다루는 '사회'면은 없다. 정말로 사건과 사고가 없는 걸까, 아니면 그런 것은 사생활이니 뉴스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관점의 차이일까, 아니면 대외 선전용으로 은폐하는 걸까? 궁금하다.

   
 
  ▲ 사실 어디를 가나 쿠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다. 상점이든 음식점이든 버스든 은행이든 손님이 아무리 바빠도 직원들은 '여유만만'이다. (사진 제공 최명숙)  
 
한 가지 좋게 보이는 것은 '우리 아메리카'라는 섹션이다. '우리 아메리카'라는 말은 쿠바에서 가장 존경받는 호세 마르티가 독립 전쟁을 준비하며 발표한 결의문에서 처음으로 쓴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중남미 국가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보는 시각에서 전하는 뉴스인데, 어쩌면 유럽 연합 같은 또 하나의 세력 형성을 의도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주변 국가들과의 협력과 상생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세계 모든 나라들이 형제 국가가 되는 날을 꿈꾸는 것이라면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민족인 북한과 남한도 서로 도우며 살자는 데 대해 그토록 방해 세력이 많은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이들은 한참을 앞서간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쯤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공동체적 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모두들 진한 '카페 쿠바노'를 마시며 2009년 1월 1일 0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딸애와 나는 일어서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만 가겠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포도를 반송이쯤 떼어 주며 시계가 열두 번을 울릴 때 소리 한 번에 포도 한 알씩 먹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바나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몇 알 안 되는 포도를 꽤 비싼 가격에 사는 걸 보고 의아했었는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외국인들과 함께 어울리려니 이래저래 신경도 쓰이고 피곤했었나보다. 12시가 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누웠는데, 밖에선 '뚜-뚜-' 하고 나팔 부는 소리,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1일 아침엔 할머니네 식구들을 숙소로 초대해 떡국을 끓여 대접했다.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 맛을 내고 계란을 풀고 구운 김을 고명으로 얹어서 겨우 모양을 냈다. 잡채만큼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다들 거부감 없이 먹었고 할머니는 예의상 그랬는지 맛있어서 그랬는지 한 그릇을 비우고 한 번 더 떠서 드셨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할머니네 식구들을 따라 몬세라떼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은 날씨도 화창했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넓은 풀밭에 바람이 불자 파도가 치듯 고운 결이 이는 광경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다 올라가니 눈앞에 '바예 유무리'라는 분지가 펼쳐졌다. 쿠바엔 분지가 두 곳 있는데, 하나는 관광지로도 유명한 '비냘레스'이고 또 하나는 바예 유무리라고 한다. 아늑한 평원을 가로질러 유무리 강이 흐르고 있었고, 팔마레알이 뾰족 뾰족 솟아있었다. 할머니는 비냘레스보다 유무리가 더 쿠바다운 자연 풍경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르따 할머니를 볼 때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은근히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한국인의 얼굴을 한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쿠바를 사랑하고 쿠바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지니고 사는 모습 때문이다.   

   
 
  ▲ 쿠바는 1월 1일을 혁명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 올해 50주년으로 더욱 특별하게 축하하는 분위기이다. 이제 피델은 그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모든 쿠바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 제공 최명숙)  
 
할머니 덕분에 쿠바 사람들의 새해맞이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자기네 풍속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따르며 살지만, 우리의 풍속이 새삼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있게 한 나의 뿌리, 조상들에게 감사하고, 부모님과 어른들께 예를 갖추어 큰 절을 올리는 것, 그다지 호사스럽지 않은 조촐한 떡국으로 새해 첫 밥상을 차리는 것, 함께 새해 소망을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는 것, 생일이나 성탄절이나 새해 첫날이나 다 똑같이 "Felicidades"가 아니라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특별한 인사가 있다는 것까지, 모두 자랑하고 싶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쿠바는 1월 1일을 혁명 승리의 날로 기념한다. 올해는 50주년이 되었다고 더욱 특별하게 축하하는 분위기이다. 피델에게 감사하고 피델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글귀들이 눈에 띈다.

아쉽다. 이제 피델은 그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모든 쿠바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Viva! Fidel!"이라고 써 붙이는 대신 옆집에 사는 내 이웃에게 감사해서 "Viva! Mi Vecino!"라고 써 붙이는 걸 보고 싶다.

이제는 50년 전 피델이 이끈 혁명을 칭송하고 기리는 대신, 지금 나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혁명을 꿈꾸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자식을 키우는 궁극적인 목표는 부모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영웅이 필요한 것은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던가? 언제까지 50년 전 혁명에 집착하면서 강조할 것인가? 이젠 혁명보다는 내 주변의 사람들, 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더 고맙고 더 소중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도 모두가 행복한 한 해였으면 좋겠다. 더 풍족하고 더 성공해서가 아니라 더 부족해지고 더 어려워질지라도 그런 가운데 서로가 더 사랑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

최명숙 / 희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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