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주 목사는 미주 한인 일간지 편집부장으로 일하다가, 한국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뿌리>라는 잡지를 만들어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다가 9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신학대학원에 입학하며 느지막이 신학을 공부하고, 미국장로교(PCUSA)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교계 언론사에서 주필로 활동했다. | ||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0년대 이후 한국 교회가 너무 상업화 되고 기업화 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지요. 교회가 부요한 자, 힘 있는 자들만 반기고, 정작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은 외면한다며,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아졌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는 그러면 안 되는데…'라며 염려하셨죠."
이 목사와 김 전 대통령의 인연은 40여 년 전을 거슬러간다. 목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이 목사에겐 언론인이란 정체성이 더 강하다. 60년대 초반, 한국에서 정치부 기자로 있으면서 김 전 대통령을 알게 됐고, 미국에 와서도 줄곧 한인 언론사에 있으면서 김 대통령과 연을 이어왔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일기장에 나오는 글의 일부다. 그의 2009년 1월 15일 일기장에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고 적혀 있다. 함석헌 선생과 김재준 박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일컬어 "기독교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출처 : 김대중 대통령 추모 홈페이지) | ||
"김 전 대통령은 서구 신학을 통해 서구적 세계관과 가치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경계했습니다. 현대적인 기독교를 수용하되 창조적 주체로서 한국 상황에 맞는 신학을 발견하고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신학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반려자로 창조한 사람을 살리는 신앙, 머리가 아닌 손발로 살아내는 신앙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었죠."
▲ 84년 미국 망명 때 LA에서 강연회를 가진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 강연회에 6,000명이 참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진 제공 : 이병인) | ||
"김 대통령은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아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했습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세상을 구원하려면 교회가 세상 안에 있어야 하고 세상을 위해 활동해야 하는데, 교회가 사회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곤 했지요. 그런데, 지난날 한인 교회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지적이 아직도 유효한 것 같아서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