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광야다'
'거리는 광야다'
  • 한재경
  • 승인 2011.08.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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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인 목사의 '거리 전도' 순례기(2)

지난 몇 주간 뉴저지 일부 지역(Summit, Englewood, Bogota, Teaneck)에 거리전도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타운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 주었습니다. 티넥에 1만 명의 흑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그곳에서 장사하는 분이 들려주셨습니다. 잉글우드에서도 흑인 커뮤니티의 크기를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이민의  꿈을 키우는 한인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더위와 습기, 낯선 풍경이 저를 맞이했습니다. 거리는 다가설수록 민낯을 감추고, 거칠게 손님을 맞이합니다. 제게 거리는 광야였습니다.

거리는 어떤 익숙함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익숙해지는 것은 편안해지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안주하라고 유혹합니다. 결국 내 것만을 생각하고 지키라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매주 다르게 만나는 거리는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타인처럼 낯설었습니다.

저는 이런 풍경이 불편했습니다. 안정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익숙한 제 자신의 불편함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의 경계하는 눈빛도, 가게 문 손잡이를 잡기 직전 찾아드는 망설임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인지 두리번거리며 안을 살피는 눈치도 모두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익숙해지지 않는 이 낯설움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유진 피터슨은 최근 회고록에서 ‘엉망진창의 상황이 목회 소명에서 핵심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불편하고 낯설고 때로는 서러운 상황 속에서 소명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목회는, 이민 교회는 불편한 낯선 상황을 얼마나 대면하고 있을까. 익숙한 것만을 찾는 편안함의 유혹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유혹은 급기야 교회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로 평가합니다.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낯선 무명의 크리스천을 찾아가 환대하기보다는, 익숙한 이동 교인을 기대하는 목회자의 집요한 욕망이 제 안에 숨겨진 불편한 얼굴이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거친 광야가 목회의 자리가 되지 못하고, 한 발 물러선 강단에서만 정죄의 손가락을 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낯설움을 피해서 익숙한 편안함에 빠질 때, 특정인에게만 개방되는 사교집단이라는 비난의 화살과 차가운 외면이 우리의 심장을 파고들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을 가두려했다는 솔로몬의 죄가 여기저기 보입니다.

거칠고 낯설수록 제가 선 자리는 광야이고 올바른 길임을 믿습니다. 불편할수록 제대로 길을 잡은 것으로 확신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경계심과 냉대는 넘어서야 할 시대의 짐입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는 헨리 나우웬의 지혜를 돌아보며, 광야의 거리에서 체험하는 냉대는 이 시대 개신교를 향한 세상의 표정입니다. 이 냉대의 표정을 환대의 품으로 바꾸는 시대의 짐을 져야 겠습니다. 불편한 현실에 더 다가서고 낯선 곳에 삶의 자리를 펴서 상처 입은 이웃을 환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재경 / 하늘뜻교회 담임목사

뉴저지에 하늘뜻교회를 개척한 한재경 목사는 '이민 사회는 교회가 섬기는 이웃'이라고 고백으로 '누구나 환대 받는' 안전한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이며 '교회의 재정은 하나님과 이웃 위해 써야 한다'는 그는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제사장 운동', '정의와 평화를 위한 예언자 운동'을 실천하는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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