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한인 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은혜의방주교회(담임 김동일 목사)가 여름방학 동안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운영한 "방주교실"이 6주간의 일정을 마쳤다.
160여 명의 학생들과 40여 명의 학생 자원봉사자들과 목회자, 교인, 학부모 등이 함께 팔을 걷어 붙여 운영해 온 방주교실은 도심 지역 사역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김동일 목사는 "5년 전 책을 빌리러 지역 공립 도서관에 갔을 때 꾀죄죄한 차림의 아이들을 만났다. 사정을 들어보니 방학 때가 되어 갈 곳이 없어 엄마가 도서관에 내려주면 점심도 거른 채 하루 종일을 도서관에서 지내야 하는 아이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아이들을 데려다 방학 때 보살피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방주 교실이 시작됐다"고 시작 동기를 설명했다.
"교회는 거룩한 소비가 일어나는 곳이다. 교회는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소비하는 곳이다. 하지만 교인들의 헌금을 허투로 써서는 안 된다. 거룩한 소비라고 하는 것은 교회가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에 가장 필요한 사역이 뭔지 보는 데서 나온다. 방주교실은 그러한 목회 철학을 바탕에 두고 시작한 사역이었다."(김동일 목사)
2007년 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씨름했던 방주교실은 2008년 80명, 2009년 120명을 거쳐 이제 매해 여름 6주간 160명의 학생들과 함께 방학을 난다. 미국 비영리 단체들이 '20만 불짜리 사업'이라고 부르는 방주교실을 단 4만 불의 돈으로 치르는 비결은 무엇일까.
"100명도 안 되는 교인들이 1만 불 헌금을 해줬다. 원래는 인건비를 줘야하는 자리들을 전부 교인과 학부모들의 자원봉사를 끌어냈고, 예전에 방주교실의 혜택을 받던 학생들이 이제 자원봉사자로 나서 선생 역할을 맡아주기 때문이다."(김동일 목사)
기자가 자원봉사로 하루 종일을 그들과 함께하며 방주교실 하루의 일상을 쫓아가 봤다. 하루의 봉사로 제대로 취재할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학생들과 어울리며 자원봉사자 어머니들과 밥상공동체를 만들며 꿈같이 보낸 하루를 사진과 함께 정리해봤다.
아침 7시 30분
▲ 학생들이 노숙자에게 아침을 제공하는 사역에 함께 하고 있다. | ||
▲ 노숙자 급식이 끝나고 함께 모인 가운데 김동일 목사가 기도를 하고 있다. | ||
8시 30분
▲ 즐거운 등교길. 자원봉사자가 학생들이 들어오면 일일이 출석을 체크한다. | ||
▲ 점심에 먹을 돼지고기 삼겹살. | ||
9시
▲ 아침의 시작은 예배당에서 성경 공부를 하거나 성경 이야기가 나오는 비디오 시청으로 시작된다. 방주교실의 유일한 ”종교색”을 띈 시간. 김동일 목사는 ”종교적 색채를 강조해 기독교인만 받는 여름 학교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 ||
▲ 자원봉사자들이 테이블 마다 두세 명씩 붙어 앉아서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 ||
교사들 중에는 방주교실 출신들도 있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혜택을 받다 10학년이 되어 자원봉사자로 또 교사로 다시 돌아온 그들에게 방주교실은 무엇이었을까. 2008년부터 방주교실에 매년 참석하다가 이제 교사가 되어 돌아온 크리스티나를 만나봤다.
▲ 작년까지는 학생으로 올해부터는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크리스티나. | ||
처음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친구 만들기가 좋았다. 다른 여름학교에 가면 너무 공부에만 집중을 시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방주교실은 놀 수 있어서 좋았다.
▲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달려 나간다. 함께 농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교실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온다. | ||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았는데 점점 더 늘어났다.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많아졌다. 이젠 피리, 클라리넷, 플루트, 핸드벨, 난타 등 배울 수 있는 악기 종류만 해도 굉장히 늘어났다. 학생들이 늘기도 했고 자원봉사자의 숫자도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교사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여기 선생들을 다 알고 있었다. 여기서 지내는 것이 편하고 내가 뭘 할 줄 알고 있으니 그것도 좋았다. 내가 어린 아이들을 좋아했고, 커뮤니티 자원봉사도 시간도 필요하니 여름을 보내기에는 참 좋은 곳이라 생각해 돌아왔다.
여기에 묶여 있으면 방학 동안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지 않나?
방학은 길고 이 프로그램은 6주니까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다른 시간에 할 수 있다. 방주교실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은 정말 엄청 재미있는 일이다. 아이들은 너무 귀엽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어울리고, 또 작년, 재작년부터 함께 방주교실을 오던 친구들과도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으니 나에게는 참 좋은 곳이다.
11시
▲ 기자가 혼자 다 볶은 ”돼지고기 삼겹살 두루치기”쯤 되는 음식. 이렇게 여덟 판을 ”혼자” 볶아야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 ||
12시 30분
▲ ”양파가 매워요!” 자원봉사하시는 집사가 양파가 맵다며 눈에 랩을 칭칭 감았다. 김동일 목사가 어서 한 장 찍으라며 재촉을 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기자가 칼을 대신 들고 남은 양파를 썰었다. | ||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점심은 약속을 만들어 누군가와 일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이거나, 잠시 회사 일로부터 떠나 조용히 혼자 뭔가를 먹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점심을 먹고, 함께 유쾌하게 설거지를 하는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학생들은 학년 별로 교사의 지도에 따라 잘 움직여 줬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점심 식사였지만 아주 빠르고 조용하게 진행이 됐다. 한 번 먹고 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네 번씩 돌아와서 밥을 먹는 학생들도 있었다.
1시
식사를 마치고 나면 미술, 음악, 체육 수업이 이어졌다. 등록할 때 취미 별로 신청한 대로 학생들이 나뉘어 보석을 꿰고, 퀼트를 하고, 종이를 오려 붙이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 ”왼손은 내리고 오른손은 더 들고!” 자원봉사자들이 학생을 거울 앞에 앉히고 자세부터 호흡까지 플루트 부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 ||
▲ 조금 쉬운 계이름은 꼬마가 맡았다. 핸드벨을 들고 언니를 따라 열심히 배우고 있는 학생. | ||
▲ 단체로 피리를 배우는 학생들. 방학 끝에 발표할 과제를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 ||
▲ 페인트 통과 생수 통으로 타악기 연주 연습을 하는 학생들. 조금 더 나이 먹은 언니, 형들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면 아이들이 따라서 배웠다. | ||
3시
이렇게 오후 세 시가 되면 모두 함께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고 공을 때리며 노는 시간이었다. 근처 공원으로 이동해 축구를 배우기도 했고, 예배당에서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다.
▲ 이것이 화채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여전도회 회장님의 솜씨로 만들어진 화채. 더운 여름따위는 단숨에 날릴 기세였다. 기자도 잘 말씀드려서 두 그릇을 얻어 먹었다. | ||
4시
▲ ”남자기 때문에” 솥과 국 그릇은 기자의 몫이었다. 아이들이 먹을 조리 기구라고 생각하니 집에서보다 세 배는 깨끗하게 광을 냈다. | ||
230명의 점심과 간식을 만들어냈던 부엌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교인들은 매일의 일과처럼 후다닥 부엌 정리를 마쳤다.
▲ ”1학년 태연입니다.” 하루가 끝나고 아빠가 데리러 온 태연이가 출석부에 이름을 확인하고 있다. | ||
하교 시간이 되면 교사들이 테이블을 들고 나와 나가는 학생을 한 명씩 다 체크했다. 자원봉사자들과 목회자들은 아이들이 어지르고 간 자리를 치우고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미국 도심 한복판의 교회들은 주중에 교인을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정작 도심 한복판의 주중 거리 모습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한 때는 영화로웠을 LA의 도심도 이제는 전형적인 저소득층 집중 거주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미 미국에 와 자리 잡은 교인들은 도심 외각에 주택을 마련하고 주일 예배가 있을 때 하루만 교회에 나오는 것이 미국 교회의 일상적 풍경이다.
김동일 목사는 "우리 교회는 교회만 도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도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일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지역사회를 향해 교회 문을 활짝 열고 성경을 나누어 주는 대신 예수가 살았던 모습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하루였다.
*김동일 목사의 인터뷰 기사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