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내가 숨진 곳으로 출근하는 노재성 집사(사우스베이선교교회). 아내가 숨을 거둔 곳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노 집사는 아내가 피 흘린 곳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바로 이곳에서, 이곳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노 집사의 아내(노혜숙)가 사고를 당한 지 올 5월이면 꼭 1년이다. 2008년 5월 12일, 아내가 운영하던 조그만 옷 가게(LA 가디나 지역)에 2인조 흑인 권총 강도가 들었다. 모자와 복면을 쓰고 가게에 침입한 이들은 카운터에 있던 노 씨를 향해 권총을 겨눴다. 놀란 노 씨는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쳤고, 범인은 욕설과 함께 총을 쐈다. 무려 8발이 노 씨의 가슴과 머리로 날아들었다. 노 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범인이 훔친 액수는 200달러에 불과했다.
흑인 빈민가에서 한국인 가게 주인이 권총 강도를 당했다고 하면, 이기적인 한인 업주가 자제력 잃은 흑인 손님에게 당했다고 넘겨짚을 수 있지만, 노 집사의 아내는 갱 단원이었던 젊은 청소년들이 저지른 단순 강도질에 무고하게 희생된 것이다. 범인은 사건 직후 경찰에 붙잡혔다.사고 다음 날부터 가게 앞에는 손님들과 지역 주민들이 두고 간 꽃다발이 수북이 쌓였다. 아내와 친구처럼 지냈던 흑인 손님들은 울면서 가게 주변을 맴돌았다. 닷새 뒤에는 가게 앞에서 흑인 커뮤니티 단체들을 중심으로 촛불 집회가 열렸다. 가게 앞 넓은 주차장이 촛불로 가득 찼다. 손님을 비롯한 주민 300여 명이 참석했다.
노재성 집사는 아내가 유난히 가게에서 일하는 걸 즐겼다고 했다. 손님들을 친구처럼 대하며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아내가 숨진 이후 손님들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양말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고 하니까 그냥 줬던 일, 돈이 모자란다며 머뭇거리면 있는 돈만 받고 물건을 팔았던 일, 어떤 땐 아예 외상으로 물건을 주기도 했던 일 등 다른 가게에선 쉽게 경험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노 집사는 가게를 처분하기로 했던 마음을 바꿨다. 노 집사는 아내가 운영하던 옷 가게보다 규모가 더 크고 수입이 많았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모두 정리하고 아내가 하던 일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생각하면 참 이상하겠죠.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곳에서 다시 일하니까요. 하지만 아내가 무고하게 피 흘리며 죽어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로든 오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 가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험상궂은 흑인 손님이 들어올 때는 섬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아내가 죽은 곳에서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으니 오히려 손님들이 더 놀란다며 웃었다.한동안 주변에선 노 집사에게 권총이나 무기를 휴대하라고 권유했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 때문이다. 아내의 장례식 때 '악을 선으로 갚으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경구로 남아 노 집사의 마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노 집사는 권총 대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손님을 맞는다고 했다.
노 집사는 아내가 죽고 가게에서 일하면서 생긴 작은 변화가 있다고 했다.
"저도 흑인들 상대로 장사 많이 해봤습니다. 예전엔 흑인을 좀 무시했었죠. 얼굴도 새까맣고 못생긴 것 같고,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았고요. 그런데 아내 가게에 일하면서, 흑인 이웃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다 얼굴이 다르더군요. 잘생기고, 예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