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하는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
고통에 공감하는 성령 충만이 필요하다
  • 전현진
  • 승인 2012.12.28 11: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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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2-1] 킹덤2012 강사 인터뷰, 인디애나퍼듀대학 경제학 김재수 교수

   
  ▲ ⓒ미주뉴스앤조이  
 
킹덤2012 둘째 날, 청년들에게 불온해지라고 주문한 교수가 있다. 인디애나퍼듀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김재수 교수다. 김 교수는 "고통 받고 소외된 이웃을 도와야한다는 사실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감하겠지만, 누가 우리 이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를 넘는 불온한 예수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목회자들이 '강도 만난 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고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지만, 교회는 우리 주변의 고통 받는 구체적인 이웃이 아닌 2천 년 전 강도 만난 자를 돕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추상적인 존재가 실제 우리 이웃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라는 지적이다.

<미주뉴스앤조이>는 정치적인 발언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민감한 주제를 청년들 앞에 꺼내 보인 김 교수를 만나 '돈'의 문제로 고민하는 크리스천들에게 도전을 던진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아래는 김 교수와의 대화를 정리한 일문일답이다.

- 패널 토의 시간에 강단에서 잘 전달되지 않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치적인 발언이라고 느껴질 만한 이야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삼성과 쌍용의 노동자들이 죽음이라는 일상을 겪고 있는 문제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윤추구의 이상에 밀려나 버린 생명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강의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내가 말한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역사적인 예수의 삶을 쫓자는 것이다. 특별히 정치적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이야기, 고통 받는 자가, 2천 년 전 성경 속에만 존재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덧붙이면, '비정치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런 말도, 분명한 태도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진 기득권자들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회를 비판하면 정치적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교회 안에서도 강하게 주장되고 있고, 정치적인 이야기를 교회가 심하게 꺼리고 있지만,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굉장히 구체적인 것 같다. 언제, 어떤 계기로 그런 문제의식을 갖게 됐나.

나도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일이 있으면 그저 '기도해야지'하는 식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이해하고 배운 예수, 천국으로 보내 줄 수 있는 예수, 교리 안에 갇혀 박제화된 예수를 배웠던 것이다.

그러던 중, 역사적인 예수, 인간으로 실제 살아간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공부하면서 성경을 보니, 예수님의 삶은 철저히 체재 밖으로 밀려나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던 예수를 향해 많은 이들은 비판했다. 그런 예수의 삶을 공부하면서 자본주의 시대 속의 문제와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 강의한 내용을 보면, 구체적인 돈에 대한 고민보다, 그 이면의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부속품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욕망을 소비하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톱니바퀴처럼 살고 있는 셈이다. '사라, 써라'하고 외치는 욕망의 톱니바퀴를 인식해야 한다.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이 이웃의 고통에 반응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웃이 누구인지도 구체적으로 생각해내지도 못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비판한다. 브라질의 카마라 대주교가 한 "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그들은 나를 성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내가 왜 그들이 가난한가 하는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는 말을 보면 느낄 수 있다.

- 청년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일단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해 읽고, 생각하고, 공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 삼성의 반도체를 생산하다 수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실제 고통을 겪으며 만든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과, 그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약자들에 공감하는 것, 예수가 살았던 삶의 방식이고, 그의 메시지이다. 그 삶을 실제 이웃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성경 구절을 적용해 봤다.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들이 쌍용차에서 일하다가 파업 시위 중 무자비하게 진압을 당하였다. 경찰이 그들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마침 같은 시대를 살아가던 목사들이 알았으나 그 사람들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경제학자들도 그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그러나 아기 엄마들이 어떤 길을 가다가 그들의 분향소 현장에 이르러, 그들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밥을 지어 밥상을 차려주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두 번째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기독교인들이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남녀 커플이 기념일에 고급 음식점에 가 식사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식의 행동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획일화된 방식이다. 자본주의가 우리 속에 깊게 스며들었다는 얘기이다. 청년들이 상상력을 발휘해 벗어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전현진 기자 / jin23@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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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2012-12-30 08:33:55
내 이웃이 누구인가가 초점이 아니라 그 이웃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초점이다.
사실 내 이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디든 만날 수 있다.
문제는 내가 관심이 없다는 것이고 관심이 있어도 우리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다만 함께 악다구니를 부리고 농성하는 것이 아님이 성경적임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