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학자? 성도착증 환자?
위대한 신학자? 성도착증 환자?
  • 박화중 전현진
  • 승인 2013.10.21 11: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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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 '재조명'

 

   
 
 

▲ 존 하워드 요더. (인터넷 블로그 갈무리)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s, 1927~1997)는 자타공인 미국 최고의 기독교 윤리학자이며 신학자로 꼽힌다. 그의 저작 <예수의 정치학>은 <크리스채니티 투데이>가 꼽은 미국 신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서 100권 가운데 5번째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요더를 둘러싼 과거 성추문이 최근 <뉴욕타임즈> 등 언론을 통해 다시 전해지면서 그의 신학적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요더의 이중생활

<뉴욕타임즈>는 지난 10월 12일 요더의 과거 성추문 논란을 전하면서 '나쁜 사람이 좋은 신학자가 될 수 있을까'(Can a bad person be a good theologian?)라는 문장으로 기사를 시작했다.

요더는 1997년 사망하기 전까지 성관계까지 간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여성들의 몸을 더듬고 과도한 신체 접촉을 하는 등의 성희롱을 일삼았다. 그동안 학자로서의 명성은 꾸준했다.

메노나이트 교단의 어빈 스튜츠만 사무총장은 지난 8월 요더의 성희롱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치유하기 위한 '특별 관심 그룹'을 만든다는 발표를 했다. 이것은 요더의 성희롱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방증한다.

1984년 요더가 인디애나 주 엘크하트에 있는 메노나이트 신학교를 떠나자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1992년 요더는 8명의 여성신도들에게 과도한 신체적 접촉을 한 이유로 자격이 정지되고 교회가 관리하는 재활시설에 있도록 명령받은 바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고발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익명이었기 때문에 그의 부도덕성은 한동안 은폐되었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학계의 분위기로 요더가 죽은 뒤에도 그의 부도덕성은 도마 위에 오르지 않았다.

요더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 누구도 금전적인 보상이나 구체적 사과를 받은 예가 없다. 요더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8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인 캐롤린 홀더리드 헤겐은 "요더는 일종의 사과 성명으로 유감을 표하면서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의도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메노나이트 신학교의 교수이자 메노나이트 교회 특별관심 그룹의 멤버인 테드 쿤츠 교수는 교회는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쿤츠 교수는 "요더가 책임을 져야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며, "위원회가 '고백, 회개, 그리고 화해'를 주제로 열리는 2015년 메노나이트 교회 총회에서 최종 결론을 발표할 것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물론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실패였다. 요더는 '불가피'하게 메노나이트에 남아 있었다. 메노나이트는 그의 저작과 신학적 결과물들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펜실베니아 랭카스터에 사는 린다 피셔는 "요더는 죽었지만 그의 저작과 신학적 작업들은 아직도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요더의 성희롱 피해자이다. 그녀는 "그의 뛰어난 학문적 업적과 달리 추잡한 그의 행실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비윤리적 신학자'의 '기독교 윤리학'?

요더의 성추행 사실이 드러나자 학계에서는 그의 신학적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요더는 기독교 윤리학의 새로운 장을 연 것을 평가받아왔다. 그는 기독교 윤리학의 주류 흐름과 방법론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면서 기독교 윤리학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인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더의 성추문이 터져 나오자 신학계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학문적 연구 성과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수 기독교계는 '신학은 신학자의 삶의 자리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요더의 신학은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쿤츠 교수는 학생들에게 요더의 저서를 읽도록 한다. 그는 "요더의 실제 삶은 그의 저작을 읽으면서 고려해야 하는 또 다른 측면일 뿐"이라고 말한다.

린다 피셔는 "요더는 크리스천의 덕목으로 고통의 문제에 대해 매우 의미심장한 접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실제 삶을 고려하면 그는 여성들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반된 시각으로 요더를 평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수 신학계에서는 요더 신학의 근본적인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출판되지 않은 요더의 자료들을 거론했다. 그가 자신의 비정상적인 성적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학적 궤변을 만들어 냈을 뿐이라고 평가한다.

요더의 후계자로 불린 대표적 평화주의 신학자 하워즈 교수는 <에크하트 트루>와의 인터뷰에서 "요더는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교묘히 미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더는 성관계가 아닌 일상적으로 여성을 터치하는 것은 가족적인 사랑의 표현일 수 있고 오히려 정신적 외상을 가진 자매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을 했다"고 지적했다.

프라이스 교수는 요더가 1975년 '마음의 간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요더는 포옹을 에로틱한 반응을 일으키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 간의 안녕을 확인하며 서로간의 친밀도를 높여주는 것으로 정의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요더에게 성추행을 당한 한 여성은 당시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82년 요더와 공항에서 작별을 할 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신체적 접촉을 당했다"며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여신도가 확인한 것만 50명도 넘는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이어 "나중에 요더가 편지로 성욕이 수반되지 않은 신체적 접촉을 옹호하면서, '자신은 위대한 평화주의 신학을 만들었고, 이제 성생활에 관한 새로운 기독교 신학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요더 신학' 어디로

<뉴욕타임즈> 보도를 종합하면, 자신의 부도덕한 성추행 사실을 세련된 논리와 학문성을 갖춘 신학으로 정당화 했다는 비난을 요더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주목할 점은 이 논란의 출처가 메노나이트라는 것이다. 요더의 과거를 숨기는 대신 교단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그 내용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교단의 대표적 신학자를 보호하는 대신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와 회복을 우선순위에 놓은 것이다.

교단의 노력에도 요더 신학을 추종해온 이들의 상흔은 깊을 것으로 보인다. 요더의 저작에 남은 그의 흔적과, 그의 삶이 스쳐간 여성의 상처. 그 간극은 더욱 깊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한 '성인군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는 특정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윤리적 기대치를 갖고 있다. 특히 신학자나 목회자처럼 종교 분야 종사자들은 다른 사람을 계도하고 선도해야 하는 입장에서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 저질스럽고 음란한 행동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더 신학은 '비윤리적 인간의 위대한 기독교 윤리학'이란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박화중 전현진 기자 / <미주뉴스앤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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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D치고.. 2013-10-26 08:56:48
솔직히 신학박사과정 밟는 사람들 보면 정말이지 인성이 제대로 되어 보이는 인물 찾기가 손에 꼽죠. 신학교수 포함. 신학교에서 보면 정말 가관인 경우 많습니다. 물론 존경할 만한 분들도 한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