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사건 폭로' 제임스 시노트 별세
'인혁당 사건 폭로' 제임스 시노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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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4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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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3시 30분, 향년 85세로...
   
▲ 제임스 시노트 신부(사진: 언론노조)

유신독재 시절 ‘최학의 사법살인’으로 꼽히는 인혁당 사건(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사건)의 진실과 한국이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제임스 시노트(한국명 진필세)신부가 12월 23일 오전 3시 30분 향년 85세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인혁당 사건은 1974년 발생한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 조직으로 인혁당이 있다고 발표, 1975년 4월 8일 대법원 판결로 8명에 대한 사형 확정 후 24시간이 지나지도 않은 다음날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시노트 신부는 1961년 한국에 와 메리놀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인천교구에서 일하던 중 인혁당 사건이 고문으로 조작됐으며, 공판기록 등이 조작, 변조되었다고 고발하며 진상을 해외에 알리기도 했다. 1975년 4월 9일 여덟 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고, 이에 항의하던 시노트 신부는 그해 4월말 ‘비자기간 만료’를 이유로 강제 추방당했다.

20년 후 다시 한국에 돌아온 시노트 신부는 ‘1975년 4월 9일’이란 책을 출간하는 등 인혁당 사건을 잊지 말자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으며,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8명은 2007년에 32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노트 신부와 함께 오랜 세월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문정현 신부는 23일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틀 전 병문안을 갔는데 인혁당 희생자 8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더라"며 "귀한 분이 돌아가셨다. 너무 아쉽고, 마음의 구멍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시노트 신부를 통해 인혁당 사건이 외신을 통해 해외에 많이 알려졌다"며 "박정희 하면 '몹쓸 사람' 했던 시노트 신부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에 (한국 상황을) 굉장히 많이 우려했다"고 덧붙였다.

시노트 신부는 1929년생으로, 1961년 인천교구 송림동본당 보좌로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을 처음 시작했으며, 1975년 미국으로 추방당한 뒤 2003년 한국에 살기 위해 돌아왔다. 그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12월 26일 오전 11시 경기도 파주시 '참회와 속죄의 성당'에서 열린다.

   
▲ 시신만이라도 돌려달라고 요구하다 쫓겨나는 시노트 신부

편집부 / <뉴스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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