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
교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
  • 강만원
  • 승인 2015.03.2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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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과 그리스도인의 차이!? 

기독교인으로서 한국에서 대표적인 기업가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 회장일 것이다. 굴지의 대기업을 운영하면서 직원 채용은 당연히 기독교인 우선이고,주일을 성수하기 위해 이랜드 산하 매장들은 엄청난 매출 감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의류가 주력 업종인 이랜드 그룹에서 주일에 백화점 영업을 포기한다는 건 대단한 믿음(?)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주일에도 일부 매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업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쨌든 백화점 전체 매출의 20%를 넘어서는 휴일 영업을 포기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간단히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주일성수하기 위해서 주저없이 기업의 운명을 거는 사람이 다른 종교 규범인들 소홀히 할리 가 없다. 십일조 많이 내는 기업가로도 소문났는가 하면, 이랜드 신우회의 규모와 활동은 명성이 자자하다. 간단히 말해서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헌금, 예배, 봉사, 기도, 구제, 선교등 모든 분야의 종교 활동에서 나무랄 데 없는 기독교인이다.

그런데.., 열심히, 이른바 ‘분에 넘치도록’ 종교의 의에 열중하는 이랜드 그룹이 ‘모범 기업’으로서 세상의 칭찬을 받기는커녕, 매번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할 때마다 심한 스캔들을 일으키며 사회로부터 매서운 지탄을 받는다. 이랜드 가족으로 재교육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견디기 힘든 혹독한 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직원들에 대한 비인격적인 대우로도 악명이 높다. 

그런 문제들은 이랜드와 다른 이질적인 기업 문화에 익숙해진 직원들을 인수하면서 새로운 조직에 적응시키는 불가피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건, 겉으로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사회적 공익'과 '사랑'을 실천한다면서 실상은 수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단번에 해고시키는 가혹한 처사다. 비정규직은 말그대로 힘이 없고 돈이 없어 ‘가난한’ 직원들이며, 세상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 기독교인 기업에서 지켜주고 보호해야 하는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대형 매장에서 근무하는 캐셔의 경우, 같은 회사에서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은 연봉이 4000 만원이 넘는데 반해서 비정규직은2000을 가까스로 넘긴다.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경우에는 최소한의 사회보장 제도인 4대보험조차 제대로 가입할 수 없다. 비단 적은 수입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년 재계약의 두려움에 짓눌려 지내다가 언제라도 회사에서 나가라면 그대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마치 파리 목숨처럼 불안한 신분이다.

동일 업종에 동일 근로이면서도 심각한 차별 대우를 받고있는 비정규직의 폐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천박한 자본주의국가”라고 혹독한 비난을 받고있는 우리 사회의 탐욕이 빚은 전형적인 부조리이기 때문이다. 박봉이마나 입에 풀칠하던 그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되는 순간, 벌어놓은 돈도 없거니와 다른 회사에서 흔쾌히 받아주지도 않기 때문에 끼니를 때우는 생존 자체가 막막해진다. 박봉에 시달리던 그들은 딱이 벌어놓은 돈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쫓겨나는 순간부터 의례히 ‘해고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작은 자’인 그들을 돌보는 것이 바로 “세상의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며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정한 교훈이며 계명이 아닌가. 그러나 한국에서 기독교인 기업체를 대표하는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은 전혀 거리낌이 없이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리고 가차없이 비정규직을 해고시킨다. 기독교인 사업가로서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이른바 인간이 만든 ‘종교적인 율법’에 스스럼 없이 맹종하되 예수께서 명령하신 ‘신앙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모순, 이것이야말로 외형적 종교주의에 매몰된 기독교인들의 적나라한 실상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전하시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다”라고 말이다. 종교규범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을 향해 주께서 일깨우신 진정한 가르침이다.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고 아프고 병든 자를 고치면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진정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올곧은 순종이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관된 교훈이다.

예수는 안식일에도 주저없이 아픈 자의 병을 고치고, 배고픈 자에게 밥을 먹이시며, 귀신들려 고통받는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세상의 작은 자들을 돌보셨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일’을 하시면서 우리에게 안식일의 바른 의미를 깨우치신 것이다. 그런데 ‘주일성수’를 마치 신앙의 증거인양 내세우며 주일에 교회 가는 것 외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바른 신앙이라는 주장이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차라리 일요일에 영업해서 많은 수입이 있다면 그 돈으로 가난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오히려 주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이며, 교인은 종교의 규례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종교인을 의미한다. 우리는 주문을 줄줄 외우는 교인의 자리에 멈추지 말고, 계명에 따라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 끊임없이 앞서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종교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종교를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종교인과, 종교 자체가 목적인 율법적인 종교인에 머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종교는 바른 신앙을 위한 도구이자 형식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요컨대, 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종교 행위에 천착하지 말아야 한다.

헌금, 예배, 주일성수, 십일조, 봉사, 선교... 물론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이런 것들은 바른 신앙을 위한 수단이며 제도일 뿐 결코 그 자체가 신앙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종교는 신앙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신앙을 왜곡시키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행위에 열심인 교인들이 하릴없이 빠져드는 무서운 함정이 무엇인지 아는가?

유대 율법주의자들처럼 규례를 열심히 지키기 때문에 자신은 열심히, 그리고 진실하게 신앙생활한다고 착각하고, 은연중에 종교적인 자기 의에 빠지는 것이다. 성전 한 가운데 서서 보란 듯이, “나는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며,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라며 자기 의를 한껏 드러내는 바리새인을 기억하라. 주님은 그에게 구원이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 없는 종교인의 속내는 ‘자기 구원’에 목매는 이기적 탐욕일 뿐이다.

강만원 / 종교, 철학 부문의 전문번역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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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쳔 2015-04-11 21: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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