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 집회와 '충성몰이' 설교
'퍼주기' 집회와 '충성몰이' 설교
  • 신성남
  • 승인 2015.05.13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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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목사는 미국행, 미국 목사는 한국행
   
▲ 신성남 ⓒ <뉴스 M>

성도들이 수십 년간 교회 생활을 하면서도 간혹 납득이 잘 안 가는 것들이 더러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집회 강사의 초청 행태입니다. 가까운 주변의 같은 교단이나 이웃 교단에 강단을 교류할 만한 훌륭한 목사님들이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먼 지방이나 해외에서 비싼 경비를 들여가며 집회 강사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목사는 태평양을 넘어 머나먼 미국에 가서 집회하고, 반대로 미국에 있는 한인 목사는 한국까지 날아와서 설교합니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짜장면인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도 좋은 강사 목사님이 많고 미국에도 또한 많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교인들의 소중한 헌금을 비싼 항공료와 체류비로 소모하며 이런 낭비적인 해외 초청을 서로 남발하고 있을까요.

단체로 미쳐야 '종교'인가

어떤 분이 "혼자 미치면 정신병이고, 여러 사람이 단체로 미치면 종교다"라고 탄식하시던데 과연 이런 비상식적인 집회 문화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그냥 용인되어야 할까요.

혹시 그 해외 강사들이 모두 '사도바울'급이라도 된다거나 또는 특별히 전문성이 있는 강사라면 재정적으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필히 초청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집회 내내 당장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줄 듯 요란하게 허세 부리다가 막판에는 겨우 도라지만 살짝 보여주고 돌아가는 인사들도 많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먹튀'이지요.

그럼에도 웬만한 중견 목회자 정도가 되면 개나 소나 다 해외 집회에 나섭니다.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평생 외국 구경 한번 못 하시고 겨우 강원도 크기의 촌구석을 맴돌며 매우 가난하게 사셨건만, 이 대단한 종님들은 그 무슨 위대한 사역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교회 돈을 허공에 뿌리며 자기집 안방 드나들 듯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십니다. 게다가 근자에는 종의 분수를 크게 망각하고 고가의 일등항공석을 흥청망청 애용하시는 아주 방자한 목사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간혹 어쩌다 목회자가 자비를 들여 개인의 일정에 따라 해외 방문을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비싼 항공료는 물론이고 숙박도 전부 담당하고 별도로 고액의 강사비를 지불합니다. 집회가 끝나고 나면 추가로 관광 나들이까지 시켜줍니다. 그래서 일부 유명 목사들은 잦은 홰외 집회를 사실상 정기적인 무료 관광 기회로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많은 교회들에서 이렇게 지출되는 연간 예산이 적게는 수백만 원이고 많게는 수억 원입니다. 그래서 이웃에 있는 가난한 미자립 교회들의 1년 총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해마다 외부 강사들에게 아낌없이 선사하기도 합니다.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교회가 봉인 셈입니다.

퍼주기 초청은 헌금 남용

일반적으로 교회들이 급성장하면서 나타나는 매우 부끄러운 징후 중에 하나가 '헌금 남용'인데 외부 강사에게 사례비를 과도하게 많이 퍼주는 것 역시 그 대표적인 사례 중에 하나입니다.  

여기서 교회들이 다양한 집회를 하는 것 자체를 폄하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크게 우려가 되는 것은 거룩한 집회를 명분으로 하여 담임목사 개인의 종교적 야망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헌금을 이용하여 교단의 지도층 유명 목사나 신학교 은사나 그리고 선후배 목사 등을 초청하고 강사비를 듬뿍 안겨드려 자신의 빈약한 목회 인맥을 강화하고 확장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동료 목회자들 사이에 그렇게 한번 초청하면 나중에라도 상대 역시 '대응 초청'하는 것이 목회 도리라고 생각하는 분도 많습니다. 마음에 빚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성회'를 명목으로 오용되는 이런 악습을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집회 강사는 가까운 지역 내의 목사님을 청빙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강사비 역시 크게 하향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수강 실적대로 돈을 나누는 학원 강사가 아닙니다. 강사 초청 집회가 천국으로 가는 비법을 전수하는 무슨 '쪽집게 과외'도 아니고, 교회가 특정 강사에게 명운을 건 것도 아니건만 근자에 보면 강사비에 너무 거품이 많습니다.

심한 경우 고작 '설교 한번에 삼백만 원'도 있다는데 이게 정말 말이 되는 소리인지요. 설사 단지 십만 원이라고 해도 쉽게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개교회의 전임 목사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소임일진데 왜 외부 설교마다 추가로 사례비를 받아야 하는지 교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필자의 솔직한 심정은 교통비나 식비 정도로 실제 사용한 실경비에 준해서 지급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규 소득이 적은 '비전임 목회자'나 선교사들은 다소 예외가 되어도 좋겠지요.

아무튼 제직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종의 직분'에 있는 사람들에게 사례비를 마구 퍼주는 것이 주의 일에 충성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도리어 교인들의 귀한 헌금을 투명하고 내실있게 사용하는 것이 주의 일을 바르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충성몰이' 설교

우리 주변에는 집회를 잘 인도하시는 목회자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럼에도 성도들은 이제 그 미끈한 집회와  설교에 점점 더 질려가고 있습니다. 집회는 뜨겁고 설교는 제법 고상한데 그 행실이 영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설교하고는 자신들은 교회 돈을 넉넉히 챙겨 갑니다. 거룩한 헌신을 주장하고는 자 신들은 성추행을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 바라보자고 애절하게 호소하고는 자신들은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합 니다.    

사실 건강하고 유익한 집회도 아주 많습니다. 그것을 부인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상당수의 집회들은 특정  직분자들의 사익을 위해 자주 악용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일부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듣는 성회가 교회당에 충성을 이끌어 내는 소위 '충성 유도' 집회로 변질되고 있 습니다. 주일성수 철저히 하고, 헌금 열심히 하고, 그리고 조직에 헌신하는 충성된 교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런 충성 경쟁을 더 잘 짜내는 목사일수록 특급 강사로 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부류의 강사들은 대개 '하나님의 공의'와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되어야 하는 '성도의 삶'에 대해 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 대신에 신도들의 삶을 가능한 교회당 속으로 유인하고 주로 '충성'과 '복' 을 노래합니다.

물론 교회에 충성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심각한 점은 그런 충성심을 이용하여 교회를  성장시킨 후 결국은 교회를 사유화하고 교인을 사병화하여 목회자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제 이런 사특한 목회 행태를 최근 여러 대형 교회들에서도 흔히 보고 있지 않습니까. 신도들이 목사의 사익을 위해 교묘하게 이용 당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안타깝게도 교회 생활에서 '행복한 신자'를 만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계속 적으로 빈발하는 목회 부정과 집요하고도 왜곡된 충성몰이에 피곤하고 지친 양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도  어떤 교회들은 주의 일이란 명분으로 교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집회'와 '헌금'을 독려하고 영육으로 무거 운 짐을 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들을 쉬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왜 우린 틈만 나면 이렇게 주님의 말씀과  정 반대로 살고 있는 걸까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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