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기른 양키즈선수들
수염기른 양키즈선수들
  • 이계선
  • 승인 2015.05.16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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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선 ⓒ <뉴스 M>

“아빠, 저것 좀 봐요. 안타를 치고 나간 가드너가 코밑에 수염을 길렀어요.”

“그래, 테세이라 맥케인도 코수염을 길렀구나. 7번 8번도 길렀네”

양키즈선수들의 콧수염에 법석을 떠는 우리부자를 보고 딸 은범이가 끼어들었다.

“겨우 코밑에 살짝 숨어 보이는 콧수염을 보고 그렇게 흥분해요? 양키즈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는 얼굴전체를 검은 수염으로 덮은 털보들인걸요”

“얘야, 양키즈수염이 어디 보통수염이냐? 창단이래 처음 길러보는 수염이지. 아기가 수염을 기르는 것보다 양키즈의 수염 기르기 가 더 어려웠었으니까”

양키즈에게 수염은 천지개벽에 속하는 돌연변이 사건이다. 구단역사 114년동안 27회의 월드시리즈우승을 일궈내어 양키제국을 이룩한 양키즈는 전통으로 유명하다. 양키즈에게는 두개의 전통이 있다.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수염금지다.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내려오는 스트라이프 유니폼은 양키즈의 상징이다. 유행이 지나고 패션이 바뀌어도 양키즈유니폼은 114년동안 그대로다. 회색 유니폼이 있지만 작업복처럼 어쩌다 갈아 입을뿐 야키즈정장은 스트라이프다. 스트라이프는 야구선수들이면 누구나 한번 입어보고 싶어 하는 양키즈의 자랑이다.

두 번째 양키지의 전통은 수염금지다. 털보부대 보스턴에서 턱수염을 휘날리며 방망이를 휘두르던 엘스베리도 양키즈에 와서는 수염을 깎아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홈런타자는 수염 깎기가 싫어 양키즈입단을 포기했다.

30개의 미국프로야구팀중 수염을 못기르게 하는팀은 양키즈뿐이다. 그런 양키즈가 수염을 길렀으니 나와 해범이가 놀랄수 밖에.

양키즈가 수염을 기른건 앙숙 보스톤때문이다. 털보수염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트레이드마크다. 보스턴 선수들은 안타를 터트리고 나면 반드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봐라 양키들아. 어험! 레드삭스는 수염이근사한 어른들이니라”

2013년 월드시리즈 7차전이 보스턴에서 열리고 있었다. 레드삭스선수들의 털보수염이 유난히 까마보였다. 풀레이오프 한달동안 부정 탈까봐 면도를 안 해서 더 새까마 보였다. 보스톤 관중들도 가짜 털보수염을 들고 응원했다. 여자관중까지 털보를 달고 나왔다. 마지막 9이닝에서 보스톤선수가 결승 홈런을 치고 홈인하자 동료선수들이 우루루 달려 나갔다. 홈런친 타자를 행가래치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달려들어 부둥켜앉고 얼굴을 비벼대더니 갑자기 홈런타자의 털보수염을 잡아 뽑아대는 것이었다. 관중석에서도 엉겨붙어 서로 털보수염을 뽑아대느라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월드시리즈 역사상 가장 멋진 승리세리머니였다. 그후 메이저리그 야구팀들은 팀마다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전통은 고수(固守)만이 능사가 아니다. 진화하고 발전할줄 알아야 진정한 전통유지다. 천사스포츠로 불리는 테니스는 하얀 유니폼만 입어야 했다. 선수들도 관중들도 소리를 내면 안 된다. 박수만 쳐야한다. 돌출행동으로 유명한 미국의 테니스스타 안드레이 아가시가 일을 저질렀다.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 검은 반바지에 빨간셔츠를 입고 나온 것이다. 깜짝놀란 심판이 제지하자 아가시는 몽니를 부렸다.

“그러면 나는 퇴장하여 기권패를 하겠습니다”

전세계에 생중계하는 그랜드슬렘 테니스대회 결승전이다. 망칠수는 없다. 울며 겨자먹기로 허락 할수밖에. 빨강셔츠의 아가시가 코트를 누비면서 파란테니스공을 날리는 모습은 한폭의 영화장면이었다. 아가시가 우승하자 칼라시대가 활짝 열렸다. 요즘 테니스코트는 패션쑈처럼 아름답다. 4개 메이저대회중 윔불던은 아직도 하얀테니스복을 고집하고 있지만.

프랑스오픈에서는 한술을 더 떠 관중들이 소리 지르게 유도한다.

“선수들이 기압을 넣느라 소리치고 있어요. 박수만 아니라 소리질러 응원해주세요”

양키즈는 피곤했다. 유명선수들은 너무 늙고 젊은 선수들은 무명의 신출내기들이다. 최고의 몸값을 지불하고 데려온 로드리게스 테세이라 벨트란은 너무 늙어버렸다. 보증수표였던 부동의 제1선발투수 사바티아는 5패 무승이다. 괴물투수 다나까는 팔꿈치이상으로 투구폼을 바꾼후 구위가 예전같지 않다. 젊은선수들은 아무리 이름을 외워도 기억이 안되는 무명약졸들이다.

그런데 콧수염을 달자 양키즈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돌그룹처럼 곱상하기만 하던 얼굴이 사납고 거칠어 보였다. 이미지빌딩에 성공하자 히트엔드 홈런이다. 보스턴레드삭스 볼티모어오리올스를 제치고 지구선두를 달리고 있다. 얼마전에는 디트로이트로 쳐들어가 리그최강 타이거스를 싹쓸이로 박살내고 돌아왔다. 5월 14일 현재 양키즈의 성적은 21승 12패다. 162경기중에 아직 33개를 소화했을 뿐이지만 어메이징이다. 아직은 콧수염이자만 턱수염까지 자라면 더 잘하겠지!

고향의 어린시절 삼국지를 읽으면서 난 수염을 좋아했다. 도원결의 삼형제 유비 관우 장비는 20대초반부터 수염영웅 들이었다. 유비는 황제수염을 달았다. 장비는 밤송이 고슴도치수염. 붉은 대추빛이 흐르는 관우의 팔자수염이 볼만했다. 수염이 아름다워 사람들은 관우를 미염공(美髥公)이라 불렀다.

내가 기르고 싶은 수염스타일은 귀밑에서 내려와 턱을 하얗게 뒤덮는 톨스토이수염이다. 아버지가 겨우 콧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턱수염을 기른다는 건 언감생심.

‘아버지 돌아가시면 길러야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내가 반대다. 머리를 까맣게 염색하라고 들볶아대던 아내.

“흰머리만 봐도 당신이 노인인걸 알아요. 수염까지 길러 더 늙어 보일거 없어요”

“영정사진 찍을려고 그래. 수염없는 사진보고 젊어서죽었다고 수군대면 어쩌지?”

“당신은 나보다 더 오래 살거야요. 나죽으면 그때 수염 길러 영정사진 찍어요

“참, 사람 늙기도 힘들구나!“

늙은 애비의 탄식을 듣고 있던 해범이가 옆에서 거들었다.

“아빠 걱정 말아요. 제가대신 수염을 기르고 있지 않아요?“

녀석은 스물다섯살 때부터 수염을 기르고 있다. 아직 애송이 콧수염이지만.

“양키즈선수들의 콧수염이 털보로 잘 자라야 할 텐데. 그래서 이번 가을 2015‘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고 수염을 잡아 뽑아대는 털보세리머니를 해야 할텐데"

   
▲ 사진 슬럼프에서 벗어나보려고 수염을 기른 박찬호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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