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크기에 매달렸던 나, 이젠 교회의 참된 본질에 매달리리라
오직 크기에 매달렸던 나, 이젠 교회의 참된 본질에 매달리리라
  • 권성권
  • 승인 2009.10.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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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신광은의 [메가처치 논박]을 읽고서

2008년 6월에 교회를 개척한 이래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엔 교회 앞에서 차를 나눈다. 새벽 기도회가 끝나면 교회 주보를 집집마다 돌린다. 밤에도 한 시간 이상 열심히 기도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자립한 교회 목사님들을 존경하게 되고, 1,000명 넘는 교인들을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들을 우러러볼 정도였다.

아마도 그것은 교회를 개척한 이상 열심히 전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일념 때문일 것이다. 땅끝까지 이르러 전도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함이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를 개척한 나로서는 교인 숫자와 교회 크기에 열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큰 교회 목사님들을 만나면 주눅 드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 세계 대형 교회 50개 중 10개 이상이 한국에 몰려 있다. 사진은 단일 교회로는 규모가 가장 큰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런데 그것이 '메가 처치'(mega church) 현상에 물든 모습이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광은의 <메가처치 논박>은 교회를 키우는 일들이 세속화한 방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이라 비판한다. 이른바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킬 교회당을 마련하고, 현대의 테크놀로지(기술)로 목회자의 인격을 가공하고, 선교 방식도 시장경제 원리를 적용하는 것들이 그렇단다.

"메가 처치 현상은 단지 수만 명이 넘는 몇몇 초대형 교회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메가 처치 현상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모든 교회는 무한 성장이 가능한 '상황' 가운데 있으며, 무한 성장이 가능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수단'을 소유하기 때문이다." (21쪽)

그렇다면 애초부터 모든 교회가 메가 처치를 꿈꾸어 왔을까? 그렇지는 않단다. 메가 처치 현상은 의도적으로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다 보니 기현상으로 나타난 일이라 한다. 대중과 고객의 출현, 도심 속 기업화 현상, 첨단 기술에 대한 의존, 시장경제의 출현 등이 뜻하지 않게 메가 처치를 북돋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교구제의 파괴를 가져 온 18세기 유럽의 대부흥 운동으로부터 더욱 촉발된다. 대중 집회의 엄청난 규모와 숫자에 압도당한 시점이 바로 그때부터 비롯된 까닭이란다. 거기에는 분명 개인의 감정에 호소하는 테크노 음악과 각종 이벤트도 동원되었는데 그것이 세속적인 방법의 일환이요, 그것은 우리나라의 여의도 광장에서 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열린 1974년의 엑스플로 대회도 다르지 않단다.

더욱이 도널드 맥가브란이라든지, 피터 와그너, 로버트 슐러와 같은 교회 성장학자들의 주창도 메가 처치 현상을 가속화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교회 성장학이 지금도 신학교 강단에서 유행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기업의 마케팅 기법이 동원되고 있고, 성장 클리닉도 판을 치고 있는 그것을, 과연 올바른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문일 것이다.

왜 그와 같은 기현상을 멈출 수 없는 걸까? 모두가 크기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교회 건물이 작은 교회보다 웅장한 건물에 압도당하는 것도, 백여 명이 전도하는 교인보다도 천여 명이 활개 치는 교인들을 더 능력 있는 교회로 여기는 것도 다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만큼 교회도 세상처럼 탐욕과 업적과 자본에 물들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메가 처치를 논박하는 걸까? 하나님의 관심은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큰 것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했을 때 그들이 가장 약한 백성들이었고, 예수님께서 관심 가졌던 하나님의 나라도 지배 세력의 큰 것에 몰입했던 게 아니라 작고 연약한 것에 더 중점을 두었던 까닭이란다.

신광은 목사가 펴낸 <메가처치논박>.
더욱이 예수님께서 보여 줬던 교회의 본질은 몸과 삶과 말을 통해서 드러났다고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사람들을 섬겼고, 자신의 가르침을 몸소 부대끼는 삶으로 보여 줬고, 그분의 말 또한 테크놀로지 기술로 가공하지 않는 진정성으로 사람들의 감동과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이 그것이다.

"뉴비긴의 말대로, 예수는 책 대신 사람을 남기셨고,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공동체를 남기셨다. 그 제자 공동체에 자신의 '몸'을 주셨고, 그들이 자신의 '삶'을 따르게 했으며, 그들에게 자신의 '말'을 맡기셨다. 제자 공동체는 예수의 몸, 삶, 말을 예수께로부터 전해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또 자신의 제자들에게 같은 식으로 예수의 몸, 삶, 말을 전했다." (314쪽)

이 책을 읽노라면 마치 한국의 대형 교회들을 싸잡아 비판하는 것 같고, 그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모든 교회들을 매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그와 같은 기현상들의 실상을 보여 주기 위함이요, 한국 교회가 예수의 몸과 삶과 말의 본질을 추구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요, 진정으로 한국 교회를 살리고픈 마음에서 쓴 것이다.

그럼 나는 어찌 해야 할까? 사실 이제껏 주님의 지상(至上) 명령을 지상(地上) 명령으로 생각하여 교회를 키우기 위한 일에만 집중해 왔다. 그렇다 보니 세상의 홍보 전략과 같은 경영 기법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오직 크기에만 안달하던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하나님나라의 실현이라는 관점으로 돌아가 예수님의 몸과 삶과 말속에 드러난 참된 교회의 본질을 추구하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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