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 이계선
  • 승인 2016.12.09 0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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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한 줄짜리 좁쌀 글씨로 어떤 장례식 광고가 실려 있었다.

“산초 선생의 장례식이 월요일 아침 10시에 폴링 바보 산장에서 있습니다.” -돈키호테-

“꽃씨를 뿌리며 산새, 들새, 산짐승과 어울려 지내면서 청산별곡(靑山別曲)을 써서 ‘바보 칼럼’으로 보내 주시던 산초께서 돌아가셨구나!”

바보 칼럼을 애독해온 독자들이 뉴욕 업스테이트 바보 산장으로 모여들었다. 링컨 생가를 연상케 하는 삼 칸짜리 토막집이었다. 버려진 오두막집을 관리해주는 조건으로 은퇴한 산초 부부가 공짜로 살고 있었다. 관을 앞에 놓고 돈키호테 목사가 장례식을 진행했다.

“불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人生何處來 人生何處去(인생하처래 인생하처거) 
人生一片浮雲起 人生一片浮雲滅(인생일편부운기 인생일편부운멸)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한 조각 구름처럼 떠올랐다가 한 조각 구름처럼 사라져 간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상병은 세상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고 ‘귀천’(歸天)이란 시에서 동화처럼 노래했지요. 바보들의 친구 산초 선생은 은퇴 후 산유화(山有花)가 만발한 이곳 산속에 들어와 산초(山草)가 되셨습니다. 신선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살다가 산 넘어 저 멀리 먼 나라로 가셨습니다.”

성악을 하는 이가 있어 중간중간 성가와 가곡을 불렀다. 조객들이 나와 산초를 그리워하는 조사를 했다. 울고 웃고 그리워하는 추모의 정이 가득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산초 님의 육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녹음기가 고장 났던지 진땀만 빼고 있었다.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슬그머니 관뚜껑이 열리더니 관속에 누워있던 시신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으악! 드랴큘라다.”

“아냐, 예수님처럼 산초 님이 부활하셨다!”

관속에서 나온 산초가 웃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손을 들고 “샬롬”을 외치면서.

“저의 장례식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광고에 죽었다는 말은 한 구절도 없었으니까요. 광고대로 장례식을 치렀을 뿐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의 장례식을 보고 두려웠습니다. 내가 죽었을 때 스크루지처럼 사람들이 내 시신에 침을 뱉고 욕하면 어쩌나. 그래서 미리 장례식을 치러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저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그리워하는 분들을 보고 무척 행복했습니다. 이젠 죽어도 되겠구나 싶어요”

동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삽화.

얼마 전에 쓴 꽁트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줄거리다. 살아생전 미리 장례식을 치르면 어떨까? 어떤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생각해본 힌트다.

우리 부부가 나가는 미국 교회 목사님이 돌아가셨다. 마리아 웰리암스 68세. 나보다 뚱뚱한 흑인 여인인데 대륙형 얼굴에 왕방울 눈이다. 1년 반 전에 임시 당회장 목사로 왔다. 미녀가 아니라서 내가 가까이해도 의심하는 이가 없어 좋았다. 우리 가족과 친했다. 설교하면서 우리 애들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마리아를 좋아하는 은범이는 성가대석에 앉아 알토를 했다. 지난해 성탄절 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면서 슬며시 지폐 한 장을 끼워 넣었다. 산타크로스에게 선물 받은 어린애처럼 아주 좋아했다.

“이국인에게서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라서 산타가 보내준 선물 같군요. 더구나 달러까지? 미국 교인들은 이런거 몰라요. 목사 월급 줬으니 다 됐다는 식이지요.”

항우처럼 건강해 보이던 마리아가 심장병을 앓더니 심장마비로 죽었다. 은범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혈육인 부모 형제가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가슴이 아팠다. 장례식에 참석했다. 장지로 가는 발인예배라서 간단할 줄 알았다. 세 시간이 지났는데도 끝날 줄을 모른다. 만리장성처럼 길고 지루한 추모사 때문이다. 줄줄이 추모사다. 세시간 반이 돼서 끝내려는데 할머니가 한마디 하겠다고 끼어들었다.

“할머니, 관속에 누워 있는 망인(亡人)이 너무 지루해합니다.”

“내가 하는 조사 들으면 관속에 있는 마리아 목사님이 아주 좋아하실 겁니다. 1분만, Only one Minute만 하게 해주세요.”

사람들이 깔깔 웃자 사회를 보던 흑인 목사는 “Just one Minute!”라며, 허락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10분이 넘었는데도 기를 쓰고 계속했다. 4시간 동안 영어 히어링을 연습하느라 난 지쳐버렸다.

‘에라, 할머니가 떠드는 동안 내 장례식 준비나 생각해보자’

난 할머니의 길고 긴 일 분 동안 내 장례식을 구상해봤다. 76세에 파킨슨병 5년이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 ‘천국 환송예배’ 같은 예배 병에 걸린 위선적인 장례식은 피한다. 장례는 미국 이민 길을 축하해주는 송별식이 아니다. 아프고 슬픈 이별이다.

미국 장례식 한 장면.

신자는 죽으면 청와대보다 몇만 배 호화로운 보석 궁 천국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개똥밭 같은 이 세상에서 뒹굴며 사는 게 좋다. 수만 명 모이는 어느 대형 교회 목사는 다섯 번 암 수술을 하고 매주 2번씩 일본까지 건너가서 투석했다. 그러다 갔다.

내 장례식이 궁금하다. 날 위한 장례식이지만 회갑연처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리 장례식을 치르면 어떨까? 스크루지도 아닌데.

죽으면 흙으로 빨리 돌아가게 해줘야 한다. 시신을 관속에 눕혀 놓고 4시간 동안 조사(弔辭) 잔치를 즐기는 건 망인에게 못할 짓이다. 김일성 모택동처럼 시신에 방부재를 뿌려 유리관에 눕혀놓고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만드는 건 망인에 대한 모독이다. 피라미드 속에 미라로 고스란히 눕혀 두는 것도 시신이 귀신 되게 하는 짓이다. 

시신은 얼른 썩어 흙이 되게 해줘야 한다. 그게 명당이다. 40년 후에 파보니 산사람처럼 그대로 있다면 드랴큘라 귀신이 된 게 틀림없다. 빨리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최상의 장례가 뭘까? 화장이다.

“할머니의 일분짜리 조사가 드디어 끝났네요. 장례식이 모두 끝났으니 집에 가요.”

아직도 공상을 헤매는데 아내가 깨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부탁했다.

“여보,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몰래 돌섬에 뿌려주시오.”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 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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