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구원자인가 유괴범인가?
그들은 구원자인가 유괴범인가?
  • 이유경
  • 승인 2010.02.03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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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센트럴밸리침례교회 교인들 아이티 고아 불법 입양 논란

▲ 지진으로 전대미문의 재난을 당한 아이티 어린이들을 '입양'하려던 미국인들이 아이티 당국에 체포돼 미국이 떠들썩하다. (MSNBC 화면 캡쳐)
지난달 29일, 10명의 미국인들이 아이티 당국에 체포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언론이 발칵 뒤집혔다. 2살에서 12살까지의 아이티 아동 33명을 인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몰래 빼돌리려 했다는 혐의다. 그러나 대부분이 아이다호 주의 침례교도인 이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셨고, 진실을 밝혀주실 것"이라며 오로지 아이티의 고아들을 구하려는 선의만으로 행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다호 주 메리디언에 소재한 센트럴밸리침례교회의 클린트 헨리 담임목사는 1일 성명서에서 "그들의 의도는 그저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사역을 다하려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회의 신도로 아이티에 체포된 사람들의 대표인 로라 실스비는 아이티 고아 구제 자선단체를 만든 바 있고, 센트럴밸리침례교회는 이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단체는 아이다호 주의 입양 기관으로는 물론 국무부가 인정하는 국제 입양기구로도 등록돼 있지 않다. 그러나 아이티 지진 발생 즉시, 세금이 공제되는 기부금 모금을 서둘러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헨리 목사는 이 단체에 대한 교회의 지원에 대해 "우리 교회가 도움을 베푸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의 복음을 전 세계로 전파하라고 시켰기 때문이며, 아이들도 그 대상에 속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 교인 상당수가 아이티에서 불법입양 시도 혐의로 체포된 아이다호주 센트럴밸리침례교회에 미국 주요 언론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다. (사진 제공 : <오마이뉴스> 이유경)
"난 고아가 아녜요, 부모님이 있어요"

그러나 이들에게 아동 유괴 혐의가 있다는 막스 벨레리브 아이티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이 (입양) 서류 없이 국경을 넘으려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또한 이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살아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애타게 찾기도 한다. 그들(미국인들)은 이제 자신들이 잘못을 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의 주장처럼 선의에서 한 일이라면 법원이 자비를 베풀 것이다."

현재 33명의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기관의 대변인은 이들 중 하나인 9살짜리 여아가 "난 고아가 아녜요, 부모님이 있어요"라며 "여름 캠프나 기숙학교로 가는 버스인 줄 알았어요"라고 얘기한 사실을 소개했다.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하는 로라 실스비는 그러나 입양을 위해 필요한 기본 서류들, 즉 여권과 출생증명서, 그리고 입양증명서 등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2일, 아이티 당국은 지진으로 아이티 법원 건물 대부분이 붕괴됐기 때문에 이들이 미국 법정에 서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그들이 아이티의 이민 관련법을 어겼다"면서 "일단 모든 사실이 밝혀지면 적절한 절차에 대해서 고려할 것이나, 판단은 아이티 정부의 손에 달렸다"며 자국민이 연루된 사건임에도 적극적인 개입을 피했다.

▲ 센트럴밸리침례교회의 클린트 헨리 담임목사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제공 : 이유경)
AP와 NBC 등의 보도에 따르면, 구류된 미국인들은 아이티에 대한 경험은 물론 국외에서의 자선 활동과 국제입양 활동에 대해 경험이 전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폐허가 된 지역에 단 몇 시간만을 머물며 부모를 잃은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골라 버스에 태웠다고 한다.

현재 이들은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아이들을 모집하여 버스에 태웠는지, 재난 지역의 어린이를 상대로 매매 행위를 하는 전문 업자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등을 조사받고 있다. "불법 입양과 인신매매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이 아이티 정부가 제일 걱정하는 이슈"라고 유니세프에서 밝힌 것처럼 아이티 같은 극빈국, 특히 재난 지역에는 아동 매매가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제 입양이 과연 최선책일까?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극빈 상태에서 재난을 당한 아이들을 구제할 방법으로 국제 입양이 최선책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도 논란거리다. 무엇보다 입양을 원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사실과 더불어, 아이티의 벨레리브 총리도 인정하듯 아이티의 많은 부모들이 국제입양, 특히 미국으로의 입양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AP의 보도에 따르면, 한 보호 캠프에서 인터뷰한 20명의 아이티 부모들 중 19명이 자식이 더 잘 수만 있다면 기꺼이 해외로 입양시키겠다고 대답했다. 6명의 자녀를 둔 마흔 살의 센텐 쁘띠뜨 프레라는 여성은 "이번 지진으로 부모와 남편을 잃었다"면서 "(입양을 시키면)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아이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아이티에서 국제 입양은 합법이다. 그러나 1월 22일부터는 아이티 총리의 허가 없이 어떠한 입양도 이뤄질 수 없게 됐다. 아동 성매매 및 노동 착취 문제가 극심해질 염려가 있어서다. (문제가 된 10명의 미국 교인들은 아이티 총리의 허가서도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수없이 늘어나자, 미국 일각에서는 아이티 아동의 입양 절차를 더 신속히 처리하라고 주문했다.

하버드법대의 아동 인권 프로그램 원장인 엘리자베스 바쏘렛 교수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입양을 통한 조기 정착이 최선이며, 특히 가난한 나라의 고아들에게는 해외로의 입양만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또 "아동 학대의 가능성 때문에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제 입양을 지체시키거나 막는 것은 위선적인 행위이며, 아동 학대의 진짜 위험은 부모 없는 자녀들이 입양으로 정착되지 못할 때 발생한다"고 말했다. 또한 입양 과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아이티의 외부에서 진행해야 아이들이 불필요한 위험에 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유니세프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 아동구제 단체들은 입양을 서두르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신속한 입양 절차가 잠재적으로는 적법한 서류준비 및 심사를 소홀하게 만들어 아동 매매와 유괴, 궁극적으로는 아동 학대를 부추기는 일로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 법대의 신시아 메브라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입양 절차를 빨리 하면 안 된다. 실제로는 고아가 아닌 아이들이 입양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다. 따라서 아이티 정부는 진짜 고아가 된 것인지를 판단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입양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이번 사건처럼 합법적인 서류가 부재하고, 부모가 있는 아이조차도 고아로 간주하는 일은 그간 있었던 입양 사기 사건에서 흔했던 일이다."

입양 자체에 대한 부정론도 있다. 지진으로 부모를 잃었지만, 고모나 삼촌 등의 친척이 아이의 양육을 책임지려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브란다이스대학의 저널리즘 교수인 이제이 그레프는 재난이나 내전으로 부모가 사망했더라도 형제나 조부모, 친척들과 함께 있는 것이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는 외국인에게 입양되는 것보다 덜 충격적이라고 지적한다.

▲ 아이티 당국에 체포된 미국인이 철창안에서도 성경을 꺼내 읽고있다. (출처 : MSNBC 화면 캡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마음이지 개종이 아니다"

국제입양 문제와 더불어 일부 기독교 교인들의 '공격적'인 선교 활동도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체포된 로라 실스비는 아이티의 아이들을 "하나님의 사랑과 동정이 가장 필요한 존재"라고 했고, 이들은 웹사이트에 "도움이 절실한 곳으로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인도하셨다"며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또 센트럴밸리침례교회의 헨리 목사는 설교에서 "사탄의 비난이 우리 교인들을 향하고 있다"고 했으며, 이들의 무모한 행동이 끼친 사회적 피해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서반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지만, 선교를 위해 수백만 달러를 퍼붓는 일부 미국의 복음 교회들에게 아이티인들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아이티의 부두교 사제 모임의 대표 맥스 부브아는 "종교 재판이 있던 때에나 있을 법한 종교적 사고를 갖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지 개종이 아니다"고 한탄했다.
 
그는 또한 이번 지진이 아이티의 건국 아버지들이 악마와 계약을 맺은 결과라고 망언을 한 미국의 유명한 목사 팻 로버트슨의 구호단체 요원들을 보고, "미국의 복음주의 교인들은 그들이 가져온 조그만 빵조각으로 우리 영혼을 사려고 한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국제 입양에 대해서는 입양아와 입양 가족에게 모두 좋다는 선의의 인도주의적 행위, 또는 아동매매나 신제국주의적 아동 수집이라는 부정적 시각이 모두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처럼(일단 이 교인들의 의도는 별개로 하고) 어떤 재난 이후, 재난 지역의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시키는 것은 입양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오래된 실수라고 한다. 정부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아이티에서는 특히 아이와 부모를 영영 생이별시킬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동 매매 같은 범죄 행위와 선의의 실수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한 입양정책센터의 다이앤 쿤즈의 지적처럼 국제 입양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일 뿐이며, 국제 입양을 진행할 경우에는 반드시 아이를 보내는 나라와 받는 나라 모두의 법률 규정이 준수돼야 한다. 아이티와 미국 간에는 지진이 있기 전부터 이미 입양 부모에 대한 평가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주장과는 별개로 이번 아이다호의 침례교도들은 범법 행위에 대한 처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고아가 된 아이티의 아이들은 다른 모든 아이들과 더불어 아이티의 미래다. 아이티의 장기적 재건 전략은 이 아이들에게 조국이 밝은 미래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유경 / <오마이뉴스> 기자 회원

*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을 저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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